혼자서 뭘 먹을 때 어떤 채널을 보시나요?
예능. 드라마. 스포츠. 뉴스. 정치. 경제. 부동산. 낚시. 골프. 다큐. 교육. 바둑. 종교. 투니버스.
나는 예능을 봅니다.
라면을 끓이면서 뭘 볼까. 뭘 안 봤더라. 채널을 고릅니다. 뜨거운 냄비를 들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찜한 채널을 다시 보기로 플레이한 다음 라면을 먹습니다.
왜?
그냥 편하게 생각 없이 그리고 재미있게 보려고요.
여사친한테 물으니 자기는 드라마를 주로 본답니다.
왜?
먹으면서 보면 감정이입이 잘 된답니다.
남사친한테 물으니 자기는 치맥을 먹으면서 EPL 본답니다.
왜?
그게 낙이랍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어떤 채널 같은 사람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나이도 들어서 예전처럼 전화도 많이 안 오고 톡도 잘 안 오는데 그걸 단지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 거야.라고 위안을 삼기엔 뭔가 뜨끔합니다.
난 혹시 정치 채널은 아니었을까.
난 혹시 가르치려 드는 교육 채널은 아니었을까.
난 혹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다큐는 아니었을까.
난 혹시 허풍 가득한 국방 티브이는 아니었을까.
편하지 않은 정치색 드러내서 괜한 적 만들지 말고 너무 가르치려 들지 말고 나만 관심 있는 걸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다큐도 자제하렵니다. 그리고 여성분 만났을 때 국군방송은 꺼야겠습니다.
사람들은 식사나 술을 마실 때 편한 채널을 찾고 편한 채널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나와 만나고 나와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은 나를 위해 귀한 시간 내어준 시청자, 청취자라 여겨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 방송을 해야겠습니다. 시청자가 다음에도 별생각 없이 또 보고 싶어 지는 또 통화하고 싶어 지는 채널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점심으로 짬뽕을 먹다가 혼자 다짐해 봅니다.
짬뽕을 먹으며 다짐을 하는데 티브이에 유재석이 나옵니다. 아마 라면 먹으면서 제일 많이 찾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날 보려는 시청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인생은 결국 자업자득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