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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Mar 13. 2023

우옌의 발렌타인데이

2년 전 발렌타인데이


족발은 가스에 불을 붙이고 정확히 2시간 30분 후에 뒷발을 솥에서 꺼내고 10분간 뜸을 더 들인 후에 앞발을 꺼낸다. 막 나온 족발에선 먹음직스러운 갈색빛이 반짝이면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내가 족발을 들고 나오면 손님들은 먹던 접시에 담긴 족발을 보다가 막 나온 족발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래도 막 나온 게 더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족발을 다 꺼내고 시원한 콜라를 단숨에 마셨다. 아이고 살겠다 숨 한 번 크게 몰아 쉬고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땐 코로나가 한창이라 밤 9시만 되면 거리는 온통 암흑이 되어버렸다. 그 암흑은 마치 나의 미래 같았다. 우리 옆가게 술집 사장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에 나와서 앉았다가 9시까지 한 테이블도 받지 못하고 축 처진 어깨로 '아이고 그냥 쉴 걸 희망도 없어요. 술 없으면 잠도 못 자네요. 허허허.'라고 말하며 안주로 족발을 포장해 가기도 했다. 근처 사장님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거리도 어둡고 표정들도 다들 어두운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늘 밝게 웃으며 나를 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우리 아르바이트생 우옌이었다.


"싸장님 안녕하쎄요."


우옌이 출근 인사를 하고는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었다.


"밥은 먹었어?"


난 마시던 콜라잔을 흔들며 손인사했다.


"아뇨. 우옌 다이어트..."


전혀 다이어트할 필요 없다고 내가 말하려는데 우옌이 뭔가 생각이 난 듯 잔뜩 신난 표정으로 카운터 선반 문을 열더니 까치발로 뭔가를 꺼내느라 낑낑거렸다.


"우옌 오늘부터 다이어트합니다. 그래서  먹씁니다. 이거 싸장님 드쎄요."


우옌은 내게 리본이 달린 빨간 사각 상자와 분홍색 하트모양 상자 그리고 길쭉한 원통으로 된 상자들을 들이밀었다.


"이게 다 뭐야?"


옆에 있던 직원 키득키득거렸다.


"우옌 인기 많아요. 사장님 어제 퇴근하고 가게 없을 때 남자들한테 이거 다 받은 거예요."


직원이 말했고 우옌은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는 턱을 치켜들며 잘난 체했다.


"어제가 발렌타인데이였어? 근데 여자가 남자 주는 날 아니야?"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근데 남자들이 주던데요. 우옌이 다이어트해서 안 먹는다길래 나 하나 달라니까. 사장님 먼저 주고 남은 거  준대요. 얼른 하나 고르세요. 나도 좀 먹게."


여직원이 우옌을 흘깃 노려봤다.


"싸장님 고르쎄요. 우옌이 주는 선물입니다." 


우옌은 해맑게 웃었다.


"우옌이 예뻐서 내가 이런 것도 다 얻어먹네. 아이고 고맙습니다."


나는 하나를 골랐다. 덕분에 여직원도 하나를 얻었다. 하지만 우린 나눈 것에 큰 의미가 없이 다 풀어놓고는 일하다가 입이 심심하면 한 알씩을 까먹었.


코로나 영업제한 시기라서 배달이 많았다. 사람들은 술은 먹고 싶고 장소는 없으니 모텔에서 방을 잡고 술을 많이 먹는 모양이었다. 영업제한 시간 9시가 되면 배달이 빗발쳤다. 모텔에서 들어오는 주문이 부쩍 늘었다. 요청사항을 보면 '일회용 컵 6개 부탁요' '모텔이라 젓가락 꼭 챙겨 주세요.' 같은 요청들이 많았다. 하여튼 이래나 저래나 먹을 사람은 다 먹는 눈 가리고 아웅인 정책이 아닌가 싶었다.  바쁘게 배달 주문표를 뽑고 조리를 했다.


"사장님,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


여직원이 내게 다급하게 말했다.


"저 사람이 ?"


"우옌한테 초콜릿 준 사람요."


여직원이 가리킨 사람은 족발을 픽업하러 온 배달 기사였다. 헬멧으로 얼굴은 가렸지만 옷차림과 맵시만 봐도 매일 마주치는 터라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마흔 정도 되는 기사였다.


"저 사람이야? ... 우옌한테 뭐 고마운 게 있어서 준 거 아냐?


"절대 아닌 거 같은데요. 한국말이 어눌한 거 알고부터 자꾸 옆에 가서 말 걸고 인사도 꼬박꼬박 하고 친절하게 막 그랬어요."


난 코로나로 직원을 좀 줄이고 어차피 홀에 손님도 없으니 거의 바쁜 주방 일손을 도왔다. 그래서 밖에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몰랐던 거다.


"그럼 나머지 초콜릿은 누가 준 거야?"


"또 하나는 타코야끼 사장이 줬어요."


"타코야끼?"


"왜 저기 대로변에 타코야끼 있잖아요."


"모르겠는데?"


"CU 바로 앞에 있어요."


"그럼 바우리 가게 옆이네?"


"네, 우옌이 타코야끼 사러 간 적이 있는데 그 사장이 우옌한테 서비스도 많이 챙겨 그랬어요. 근데 어느 날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그랬대요. 미쳤어. 그 후로우옌이 부담스러워서 사러 가기 싫다고 안 갔어요. 그래서 제가 몇 번 사러 갔죠. 맛은 있어요. 우옌이 안 갔더니 한 번씩 가게 앞에 와서 쓱 보고 가요. 우옌은 막 숨고요. 근데 어제는 초콜릿을 가져와서 주고 가더라니까요. 나는 안 주고요. 손님한테 감사 표시로 줄 거면 나도 줘야지 안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어? 잠깐만."


여동생이 만약 내게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일을 하다 말고 너무 궁금해서 얼른 대로변으로 가 보았다. 천천히 걸어서도 5초면 대로변이었다.


대로변에는 영업제한 시간에 걸려 못다 마신 술이 아쉬운 사람들이 택시를 잡고 있었다. 밤 12시의 풍경이 밤 9시 언저리에 펼쳐지고 있었다. CU 편의점 앞에는 직원의 말대로 타코야끼라고 주황색 천막 적힌 라보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난 지나가는 행인인척 걸으며 라보 안쪽을 보았다. 타코야끼를 사려는 사람들 사이로 50은 돼 보이는 아저씨가 타코야끼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고개를 돌리니 CU 편의점 가판에 우옌이 받았던 것과 비슷한 초콜릿 상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친구 둘과 우리 가게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나도 그날은 형과 직원들에게 일을 미루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친구가 자꾸 우옌에게 관심을 보였다.


"와 예쁘네. 너네 회식 안 ?  좀 불러라. 나도 베트남 아가씨랑 술 한 번 마셔보자. 진짜 예쁘네." 


"지랄을 해라. 미친놈아."


그러고 말았다.


그날 오기로 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 한 명이 더 있었는데 그 친구와 나는 결혼을 안 했고 같이 술을 마셨던 친구 두 명은 결혼도 했고 애도 있었다. 술을 마시다가 친구 놈이 또 우옌 얘기를 꺼냈다.


"야,  그러지 말고 우옌을 정현이라도 소개해주면 안 되냐? 정현도 결혼해야지. 우옌 정도면 예쁘지 어리지 좋잖아? 아니면 네가 하든가. 도 이제 나이도 있는데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잖아.  환갑에 운동회 가서 달리기 할래?" 


헛웃음이 났다.




우옌은 박서준을 좋아했다. 그걸 알은 나는 같이 밥을 먹다가 다시 보기로 이태원클라스를 몰래 틀었던 적이 있었. 반응이 궁금해서였다.


이태원클라스 주제곡 전주가 나오자마자 우옌은 금방 반응했다. 뜨던 수저를 멈추고 오물거리던 것도 잠시 잊은 채 티브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티브이를 등진 우옌은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손짓했다. 엉거주춤 난 내 밥그릇과 수저를 챙겨 들고 자리를 바꿔주었다. 나와 자리를 바꾼 우옌은 모니터 속 박서준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우옌 박서준이 그렇게 좋아?"


"네에. 너무 아요. 너무 잘 생겼습미다."


"우옌 내 별명이 백새로이야.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불러. 많이 닮았다고."


우옌은 갑자기 썩은 표정이 되었다가 내 말을 씹고 다시 박서준을 뚫어져라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우옌은 한국 남자하고 결혼하고 싶겠네?"


내 말이 끝나자마자 1퍼센트의 불편함이 우옌의 얼굴 여기저기를 떠도는 것이 느껴졌다.


"...... 아니요."


우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런 얘기는 조금 민감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난 눈치챘으면 멈췄어야는데 조금 민망해져서인지 말이 막 나와버렸다.


"박서준은 잘생기고 돈도 엄청 많은데도 싫어?"


말하고 나서 난 이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왜 이럴까 싶었다.


"음......"


"......"


"아마...... 엄마가 슬퍼해요."


"엄마가?"


"우옌 엄마는 우옌하고 매일 같이 있고 싶어 해요. 아빠도 우옌 많이 보고 싶어 해요. 그냥 베트남 돌아오래요. 근데 내가 졸업하고 간다 했어요. 한국 싸람과 결혼하면 아마 같이 못 살아서 엄마 아빠 슬퍼할 거예요. 우옌은 가족들 함께 베트남에서 살고 싶습미다. 한국은 외로운 나라입미다."


"아 그렇구나."


"싸장님, 우옌은 결혼하러 한국 온 거 아닙미다."


"어... 알겠어..."


우옌의 표정에 우울함이 비췄다. 우옌은 방학과 주말 그리고 휴일엔 근무가 가능했지만 학기가 시작하면 정해진 시간만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쉬는 날과 방학 때는 자진해서 일을 오래 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는 학생이었다. 우옌에게 몹시 미안했다.


나 자신에 헛웃음이 났다.




우옌은 가게에서 세 개의 초콜릿을 받았다. 하나는 마흔 배달 기사 아저씨가 준 초콜릿. 하나는 쉰 살 타코야끼 아저씨가 준 초콜릿. 하나는 마흔 정도 되는 단골 족발 포장 손님이었다고 했다. 


우옌이 스물셋 한국 여자 아르바이트생이었다면 배달 기사와 타코야끼 아저씨 그리고 단골 포장 손님이 과연 우옌에게 초콜릿을 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옌이 스물셋 한국 여자 아르바이트생이었다면 내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과연 그 딴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여직원도 예쁘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무도 초콜릿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가게가 조금 조용해졌을 때 우옌이 갑자기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싸장님, 우리 엄마입미다. 엄마."


영상통화를 하던 우옌이 자기 스마트폰을 내 얼굴 앞에 가져다 댔다. 모니터 속에는 우옌과 닮은 우옌 어머니 보며 웃고 있었다.


"안뇽하세요. 싸장님 우옌 엄마입미다."


"나이스 투 미츄! 우와 우옌 어머니 한국말 잘하시네요?"


"네, 싸장님 하고 통화해서 연습했습미다."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고무장갑 낀 손을 우옌 어머니에게 흔들었다. 그러자 우옌 어머니도 내게 손을 흔들었다.


"싸장니임, 우옌  부탁함미다. 우옌은 착한 아이입미다. 우옌 잘 부탁함미다. 싸장님임."


"유 아 쏘 뷰티풀 티쳐!"


나는 고무장갑 낀 손으로 엄지척을 했다. 우옌 엄마의 직업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싸장님, 우옌 잘 부탁합미다. 우옌은 착한 아이입미다. 잘 부탁합미다."


"우옌은 걱정 하지 마세요."


난 말하고 나니 못 알아들을 거 같았다.


"우옌! 걱정 마세요를 베트남 말로 어떻게 해?"


"능러니에"


우옌이 내게 귓속말을 했다.


"우옌 능러니에. 능러니에. 우옌 마덜 우옌 굿! 굿! 노 프라블럼 우옌 굿! 굿!"


"싸장님 고맙습미다. 고맙습미다."


"능러니에. 능러니에!"


우옌 어머니 눈시울이 붉어졌고 덩달아 우옌의 눈시울도 조금 붉어졌다. 작은 핸드폰 모니터 속에 나와 우옌 그리고 우옌 어머니는 그렇게 몇 분을 웃고 떠들다가 손을 흔들고 통화를 종료했다.


우옌은 이 세상 모든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누군 가의 귀한 딸이다. 누군 가의 소중한 여동생이고 누군 가가 몹시 보고 싶어 하는 누나이자 그리운 언니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누군 가의 어머니가 될 사람이다. 우옌에 대해 함부로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래 잘 살았다고! 살아 봐야 뭐 얼마나 잘 산다고!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초콜릿을 준 배달 기사는 유부남이었다.


며칠 뒤 하얀 눈이 많이 내린 날.


우옌과 나 그리고 직원들은 신난 강아지처럼 뛰어나가서 눈을 맞고 뭉치고 서로에게 던졌다. 코로나로 어두컴컴한 거리엔 어차피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나도 같이 찍고 싶은데 나보고 찍사를 시켰다. 난 폰을 들고 눈이 제일 많이 보이는 쪽으로 다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진 속에 우옌은 정말 밝게 웃고 있었다. 늘 저렇게 밝게 웃는 나날이 가득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헛웃음이 아닌 흐뭇한 미소로 나도 우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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