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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Mar 24. 2023

[풍선 ]

술에 취해 세면대 앞에서 비틀거리던 


깨진 유리 조각을 집었다. 떨리는 손으로 팔뚝에 유리 조각을 댔다. 살갗에 누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마르고 갈라진 입술로 나지막이 수를 .


"하나...두... 울... 셋!"


그었.


"윽!"


외마디 신음이 났다. 빨간 선이 움푹 파였고 선을 비집고 붉은 피가 피어올랐다. 고개를 들어 거울 속에 나를 보았다. 푸석하게 버짐이 핀 볼따구니 헝클어진 머리카락 깍지 않은 수염과 충혈된 눈동자 그리고 머리 위에 떠있는 풍선.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던 풍선 팔뚝에 구멍이 생기자 조금씩 홀쭉해졌다.


유리 조각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유리 조각이 세면대 위 떨어지면서 '땡그랑' 소리가 났다. 붉은 피들은 나뭇가지처럼 뻗으며 팔뚝을 타고 흘러내려 하얀 세면대와 유리 조각 위에 붉은 꽃을 피웠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축축한 욕실 타일 바닥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축축해졌고 눈가엔 축축한 눈물들 고였. 천장에 매달아 놓은 밧줄은 축축해진 나를 보고 동그랗게 웃고 있었.


머리 위에 풍선이 보이기 시작한 건 반년 전쯤이었다. 뒤척이던 잠을 포기하고 변기에 서서 세면대 거울을 는데 머리 위에 풍선떠있었다. 꿈인가 싶어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풍선은 내 머리 위에 떠있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또렷해졌다. 볼을 꼬집기도 하고 머리를 때려보기 다.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


 풍선 대체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환각증상인가? 난 드디어 망할 정신병까지 걸려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만지려 해도 손으로 휘저어 바람을 일으켜도 풍선은 잡히지도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이젠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있는 풍선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 생기 발랄한 아가씨와 휴가 나온 군인들.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과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 아무 데서나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와 구부정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도 그랬고 심지어 유모차에 앉아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가의 머리 위에도 풍선들이 떠있었다. 


모두가 풍선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놀이동산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같았다.


빨간 풍선을 머리에 달은 사람들은 고함을 질렀고 멱살을 잡고 싸웠으며 머리를 쥐어 뜯기도 했다. 홍색 풍선을 달은 사람들과 연인들은 실없이 자꾸 웃었고 발걸음이 사뿐사뿐했다. 보라색 풍선을 머리에 짊어진 학생들은 버스에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어린아이들은 노란 풍선을 달고 뛰어다녔고 파란 풍선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처진 어깨로 다니며 땅이 꺼질 듯 한숨 쉬었다. 초록색 풍선을 단 사람들이 줄지어 으쌰으쌰 연탄을 나르는 것도 본 적이 있었다.


조심해야 될 사람들은 회색 풍선을 달고 다닌다. 그들은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다. 뉴스엔 매일 그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나 더 위험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검은색 풍선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애석하지만  머리 위에도 검은색 풍선이 떠있다. 검은색 풍선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곧 죽을 사람들이다.


어릴 적부터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배웠다. 이겨야 행복해진다 했다. 이겨야 편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이겼고 입시를 이겼고 취업도 이겼다. 친구들에 비해 아파트 등급을 이겼고 차도 이겼으며 시계조차도 이겼다.


그런데 작년부터 난 이기는 게 싫어졌다.


이기러 나가기 위해 해야 하는 세수도 샤워도 면도도 하기 싫어졌다. 옷을 입는 게 싫었고 사람들과 마주하는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생각이란 걸 해야 하는 게 귀찮았고 시선에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귀찮았다. 씹는 것도 귀찮고 맛이 느껴지과정도 귀찮았다. 그냥 다 귀찮았다. 


따뜻한 담요만 필요했다.


알람소리 없이 벨소리도 없이 모니터 하나 켜지 않아도 되는 컴컴한 방에서 따뜻한 담요를 덮고 잠만 자고 싶었다. 계속 자고 싶었다. 영원히 깨지 않아도 되는 잠을 자고 싶었다.


그중에 제일 귀찮은 건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힘내라고 했다. 전혀 힘이 나지 않는데 자꾸 힘내라고 했다. 운동이라도 하라고 했다. 씻고 나가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전환이라도 하자고 했다.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어디 조용한 나라 여행이라도 하라면서 자꾸 귀찮게 굴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니 이제 그만 다 잊으라 했다.


내가 기획하고 있던 아이돌 연습생 소년이 죽었다. 내가 기획하고 있던 걸그룹 연습생 소녀도 죽었다. 그게 일 년 전이었다.


난 내가 배운 대로 내가 살아온 대로 그들에게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최고가 아니면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내 말이 씨가 됐는지 그들은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누구나 다 그 정도는 힘들어. 너만 그래? 안 힘들고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딨어.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너만 힘들어?"


그들이 가끔 힘들다고 우울하다고 하면 이렇게 말했다.


전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 잘생기고 예쁜 아이들이 우리 회사로 몰려왔다. 그들 중에서 선택받은 애들은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고 누구보다 섹시하고 요염하게 골반을 흔드는 연습을 했다. 우린 연습의 결과들을 평가하고 점수를 줬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매정한 말들로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일깨워줬다. 어떤 애는 울었고 어떤 애는 이를 갈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를 연습시키는 트레이너도 다 고용된 사람들이다. 연습생들이 사는 숙소와 그들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도 다 투자금이다. 회사는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사업가는 투자금을 수십 배로 회수해야 한다. 아무래도 난 훌륭한 사업가 멘털은 아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지퍼를 열고 싶게 만들고 지갑을 열고 싶게 만들 애들이 우린 필요했다.


죽은 소녀가 속한 그룹은 내 아이디어로 기획됐다. 두 명은 귀여운 스타일. 두 명은 섹시한 글래머. 두 명은 청순한 스타일. 두 명은 보이쉬한 스타일. 중국 시장을 겨냥한 중국인과 일본을 겨냥한 일본인 멤버도 투입했다. 남자라면 거를 타선이 없어서 결국 홈런 한방을 맞게 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죽은 소녀는 노래 담당이었다. 외모는 나머지 멤버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가창력과 실력 논란은 이 아이 하나면 충분히 잠재울 수 있었다.


외모 보완 차원으로 기획사 대표는 데뷔 전에 성형을 지시했다. 그런데 그게 결국 문제가 되었다. 자꾸 보면 귀여운 매력은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어져 버렸다. 이미 앨범 녹음과 뮤직비디오등 반 이상이 진행된 상태에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해 버린 것이었다. 회사에서 내부 회의가 진행되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같은 멤버들조차도 수군대기 시작했다. 기나긴 연습생에 종지부를 찍을 데뷔에 차질이 생길까 봐 불안해했다.


거울을 보며 매일 울던 소녀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습생 기간을 6년이나 같이 했던 아이돌 남자연습생도 한 달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엔 내 얘기도 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그리고 죄송하다고 .


호주머니 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린다.


전화기를 꺼내려다가 팔에 굳어진 피뭉치를 잠시 보다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화기를 꺼냈다. 기획사 대표였다. 


기분은 좀 어떠냐고 힘내라고 할 게 뻔했다. 내가 아직은 쓸모가 있으니 그 대단하신 분이 내게 손수 전화를 다하셨겠지.


전화기를 집어던졌다.


전화기는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다가 욕실 타일 벽에 부딪혔다. 욕실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튕겨지더니 번 더 굴러 다시 내 옆으로 왔다.


금이 간 액정 화면 속 대표는 집요하게 웅웅거렸다. 그에게 걸려 온 전화는 진동마저도 집요하구나 싶었다. 발로 전화기를 구석으로 차버렸다.


풍선은 부풀어 오르면 결국엔 터진다. 하지만 풍선에 테이프를 바르고 작은 구멍을 내면 터지지 않고 바람만 빠진다.


난 터지려 하면 급한 대로 몸에 구멍을 냈다. 그러면 난 쓰다가 버린 콘돔처럼 구석에 축 늘어져 있을 수 있었다.


살려고 그은 흔적을 사람들은 죽으려고 그었다고 오해했다. 그래서 긴팔을 입었다.


내가 내 몸에 구멍을 내며 버티는 이유는 하나다.


회사 연습실에서 검은 풍선을 매달고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 출처 블로그 polly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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