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 군부대 분리수거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랄 맞기로 유명한 김말이 상병의 전두지휘 아래 나 백김치 일병과 박카스 이병이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야! 박카스"
"이병 박카스!"
"마대 한 열개정도 가지고 와. 정확히 딱 2분 준다. 2분 안에 안 오면 백일병은 대가리 박을 준비한다. 알겠나?"
"이병 박카스. 일병 백김치. 네 알겠습니다."
둘은 동시에 복명 복창했다.
하여튼 김말이 상병은 뭐만 했다 하면 사람 괴롭힐 궁리만 하는 고참이었다. 사회였으면 나한테 말도 못 붙일 인간이 또 지랄이구나 싶었다.
"박카스 이병 차렷! 준비!"
김말이 상병이 초시계 누를 준비를 하며 말했다.
"어이!"
박카스 이병이 구보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뛰어!"
김말이 상병이 초시계를 누르며 외쳤다. 박카스 이병은 문이 개방된 경주마처럼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뭔가 어색한 뜀박질이었다. 하여튼 이등병은 걸어도 뛰어도 뭘 해도 어정쩡하고 어설펐다.
박카스 이병은 그렇게 막사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3분이 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강원도 산골 매서운 추위로 삽조차 튕겨나가는 꽁꽁 언 바닥에 대가리를 박을 생각하니 갑자기 성질이 났다.
"아니, 이 새끼가 똥을 싸나. 왜 이리 안 와? 백김치 애들 교육 똑바로 안 하지? 군생활이 널널하지? 대가리 박아. 실시!"
"실시!"
난 대가리를 박았다. 그러고도 5분이 지났는데도 박카스 이병은 나타나지 않았고 난 머리와 목 승모근은 물론이고 온몸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야, 백김치 이 새끼는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일병... 백...김치.. 으...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난 대가리를 박고 있느라 짓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모르면 뭐 군생활 끝나나?"
"아... 아닙니다. 죄송합... 니다!"
"어? 저기 오는 거 같은데 근데 저 새끼가 미쳤나 천천히 걸어오고 있네?"
김말이 상병이 화를 냈다.
"하하하! 저 또라이...... 뭐야 저건! 야! 백김치 기상! 기상!"
김말이 상병은 미친 게 확실했다. 화를 내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난 얼른 일어났다. 순간 하늘이 핑 도는 현기증이 났다. 흐릿한 시선너머로 박카스 이병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카스 이병은 혼자 낑낑거리며 마대걸래 열 자루를 들고 뒤뚱뒤뚱거렸다. 그러다가 하나를 떨어뜨려서 주우려다가 열 자루를 다 놓쳐버리며 땅바닥에 자빠졌다. 얼른 다시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다시 마대걸래를 챙겨 들었다. 내가 가서 도와주려니 김말이 상병이 날 못 가게 막고 박카스 이병을 보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박카스 이병이 마침내 도착하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군모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니, 분리수거하는데 상식적으로 마대걸레가 왜 필요하나? 어? 막사 청소도 못하게 다 같다 버리려고? 걸레에 흙 다 뭍은 거 봐라. 미치겠다. 아니, 생각을 좀 해라 생각을 마대자루를 가지고 와야 분리수거하지. 이 돌대가리야!"
김말이 상병이 버럭 소리쳤다.
"이병 박카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카스 이병이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큭큭큭큭큭"
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어? 이야, 이것들이 아주 군생활 널널하구만. 군기가 빠져가지고 이 새끼들 둘 다 엎드려뻗쳐!"
"네 알겠습니다!"
나와 박카스 이병은 얼른 꽁꽁 언 바닥에 얼른 엎드려뻗쳤다.
"하나에 나는! 둘에 왜 이럴까! 하나!"
"나는!"
"둘!"
"왜 이럴까!"
"더 크게 하나!"
"나는!"
"둘!"
"왜 이럴까!"
난 고개를 돌려 박카스 이병을 노려보았다. 잔뜩 겁을 주려했는데 개념 없는 녀석이 날 보며 씩 웃었다. 겁주려 했는데 나도 웃겨서 씩 웃어버렸다. 그렇게 강원도 외딴 산골에 우리의 얼차려 소리는 메아리로 우렁차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