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희로애락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B2B영업을 하면서 가슴속 깊이 새겨놓은 한 문장이 있다.
불만 가득한 고객에게 잘해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많이 들어본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B2B영업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몸소 겪고 체득한 가치관이다. 이것은 업무를 넘어서 내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입사 후 오리엔테이션 기간을 마치고 부서 배치를 받았다. 두 주먹에 가득 담은 열정을 쏟아내고 싶어 했던 좋은 때였다. 당시 내가 생각한 영업사원은 결국 '고객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주며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불만을 없애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난 이 믿음 때문에 1년 차가 너무 힘들었다.
관리고객을 배정받고 고객사 담당자들과 명함을 교환했다. 인사를 마치고 나니, 그들에게 나는 회사를 대표하는 고객센터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관련 크고 작은 문제나 이슈들을 내게 이야기해왔다. 난 이런 모든 문제를 '신속정확'하게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가 나올 때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더 나아가 해결방법이 없어 보이는 문제에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가능한 방법을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고객만족을 위해서!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자신 있게 대답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업무 숙련도가 부족한 내 역량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어려운 문제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문제 해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보면, 고객 담당자는 내게 다시 연락해왔다.
"아직 해결 안 되었나요?"
이때부터 고객의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내 곧 불편함을 불만이 되고, 결국 불만족이 된다.
그렇게 매일 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난 매일 자처해서 불만족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해결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지 못한 채, 무조건 빠르게 해결해준다고 대답한 것이 문제였다. 예상과는 달리, 고객 담당자들이 모든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대부분 '즉시' 해결되어야 할 심각한 문제들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고객들에게 '빨리'라는 기준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고객들에게 '만족의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바로 해결이 안 된다면, 모두 불만족한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열정만을 앞세워서 고객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후부터 난 내 대답에서 '빨리', '즉시' 등의 표현을 최대한 절제했다. 때로는 심각한 문제상황이 아니라면, 나의 업무템포에 맞추어 고객을 기다리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업무 우선순위를 지키고자 했고, 고객에게 "퇴근 전에...", "내일..." 처리한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자 고객반응도 크게 달라졌다.
고객과 약속한 시간을 지킬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고객이 기다리는 상황도 적어졌다. 또한 항상 외근 중인 내 업무 패턴을 고객도 인지하게 됐고, 오히려 고객들이 내 업무상황을 고려해서 요청해왔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바로 해결해줄 수 있을 때는 고객의 감사표현이 더욱 많아졌다.
이때 들었던 생각이 "만족은 불만족에서 나온다."였다.
처음에는 고객에게 불만족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너무 염려했었다. 또한 여기서 생각한 불만족한 상황은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라 여겼다. 그러나 실제 겪어보니, 즉시 해결됐던 문제들은 고객에게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 비쳤었다. 단 시간 내에 해결될수록 문제해결 과정의 내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에도 바로 처리가 안되면 고객은 오히려 불만을 내비쳤다. 하지만 반대로 약간의 불만족한 상황을 고객들에게 만들어주었더니, 나의 도움과 처리결과에 오히려 더욱더 고마움을 표현했던 것이다.
결국 고객이 불만족이 커질수록, 나를 통한 문제해결 만족도가 비례해서 커졌다.
고객을 대면하는 영업사원이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정말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업무에서 '나 자신'이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러기 위해선 고객의 불만족한 상황을 편하게 받아 들 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업무상황과 관계에서 '불만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그것을 고객이 어떻게 느끼게 만들고, 내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다.
때로는 고객에게 불만족한 상황을 납득시키기도 하며, 내가 줄 수 있는 만족도를 극대화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