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케스트라 공연에 입문하는 가장 좋은 방법
넷플릭스를 켰다가 예고편을 떠도는 유랑민이 되는 날이 허다하다. 오늘은 좀 새로운 걸 보고싶은데 도대체가 손이 가질 않는다. 시계를 보니 얼마 남지 않은 저녁시간에 두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은 부담스럽고 처음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을까 선뜻 보기 꺼려진다. 너무 잔잔한 건 싫고 시끄러운 것도 싫고 대체 무슨 영화를 보면 좋을까 고민하다 시간은 간다.
어느덧 30분이 넘어가자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기란 어려워진다. 나는 익숙한 영화를 틀어두고 핸드폰을 만지거나 기억에 남는 특정 부분으로 넘어가 장면들을 잘라본다. 혹은 소리를 음소거하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가만히 틀어놓거나 화면 밝기를 낮춰두고 음악과 소리만을 듣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는 습관이 있다.
누군가의 추천이나 동행 없이는 새로운 영화를 탐닉하기가 종종 부담스러워 봤던 영화를 다시 틀고 이처럼 일부의 구성요소만 떼어두고 즐기기도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영화를 다양하게 쪼개서 보는 것을 선호하는 취향이라고 불러도 될까.
영화음악은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영화의 특정 부분에 등장해서 적절한 메시지와 분위기를 전달하고 장면을 더 멋지게 만들어주는 음악들을 사랑한다. 그런 음악들은 대체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음악은 대부분 자체의 완성도도 높아 영화와 떼어놓고 봐도 매력적이다.
2021년 10월에 첫 선을 보인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는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놓치기 아쉬운 행사다. 관람객들에게 많은 사랑과 호평을 받으며 2022년 4월과 2024년 1월에도 공연했으며 올해도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지난 17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 들어서자 지휘자 김재원이 지휘하는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인터스텔라, 다크나이트, 캐리비안의 해적, 탑건: 매버린, 글레디에이터 등 다양한 리스트의 영화음악으로 관객을 찾았다. 전부 작곡가 한스 짐머의 음악이었다.
한스짐머는 영화 ‘인터스텔라’, ‘인셉션’, ‘캐리비안의 해적’ 등 수많은 사랑을 받는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다. 헐리우드 히트 메이커라는 별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예술가다.
이번 공연에서는 클래식, 대중음악, 전자음악 등 영화와 음악의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 한스 짐머의 음악을 70인조 풀 편성 오케스트라 연주로 만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악기들 뿐만 아니라 일렉기타와 베이스기타 드럼 등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조금은 파격적인 형식이지만 악기 구성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스짐머의 영화음악이 주는 감동을 그대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느껴져 마음이 더욱 좋았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재해석함과 동시에 악기의 제약을 두지 않고 원작의 테마를 전달해 남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곡과 연주 자체로도 훌륭했지만 음악을 들을 때마다 즐겨보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더욱 좋았다. 아는 음악이 나올 때면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영화의 서사를 다시 되짚어보며 음악을 감상했다. 그러니 지겨울 틈이 없었다.
지금껏 여러 글과 지면을 통해 이야기했듯이 오케스트라나 우수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현장에서 듣는 것은 음원이나 영상으로 음악을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공연 등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면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매번 다수의 호응과 사랑을 받는 만큼, 앞으로도 좋은 음악적 경험을 유지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의 입문 역할로 계속 자리를 지켜주길 기대한다.
아트인사이트 전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