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서른은 어떤 모습인가요-틱틱붐

by 김인규





아이유의 노래 <라일락>은 이십대를 보내주고 서른을 맞이하는 노래라고 한다. ‘어느 작별이 이보다 완벽할까’라는 말로 지나온 시간을 떠나올 수 있는 홀가분함이 부럽다. 그래서 노래를 듣다말고 나도 종종 아직 조금 남은 내 이십대가 어떤 모습으로 정리되면 좋을까 고민한다.




뮤지컬 <틱틱붐>의 주인공인 존(조나단 라선)도 그런 고민을 한다. 서른을 눈앞에 둔 생일, 아직 이룬 건 없고 성공은 멀어만 보이는데 소호 허름한 집에서 5년에 가망없는 락 뮤지컬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 속에는 틱, 틱, 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바늘이 흘러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폭탄이 타들어가는 듯하기도 한 소리.




자신의 등불 삼았던 유명한 창작자들이 이미 성공해 자신의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었던 나이보다 많고, 부모님이 이미 결혼하고 자리 잡은 나이보다 많은 서른을 아무 성과 없이 맞이하는 일이 달가울 리 없다. 게다가 절친한 친구는 어마어마한 연봉에 맨하탄 한복판에 집과 차를 산다.




친구의 권유로 도전해본 회사 일은 도저히 성미에 안 맞고 곁을 지켜주던 연인도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데 정체된 상태로 시간만 보내는 일은 고통스럽다. 뭔가 새로운 길을 열어줄 듯하던 뮤지컬 쇼케이스는 호평을 받지만 컨셉이 독특한 나머지 제작에 참여하려는 업계 사람은 없다.




부모님은 ‘나 죽기 전에 취업하는 모습 좀 보여달라’며 매번 성화인데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는 업계 사람들의 호평은 결국 지난 5년간의 삶이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한다는 통보와도 같다. 그동안 준비한 뮤지컬을 발표하는 날만을 기다렸는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고 삶은 또 한 번 유예될 뿐이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조나단 라선은 결국 브로드웨이의 걸작으로 불리는 뮤지컬 <렌트>를 써낸다.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비록 생전에 그 빛을 보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전세계에서 막을 올릴만큼 훌륭한 뮤지컬을 써낸 인물로 역사에 남는다.




작품 내에서는 주인공이 특정한 계기를 통해 서른을 받아들이고 이후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고 동경했던 유명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 순서에 있다. 조나단 라선은 성공하고서야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서른을 받아들인 후에야 자신이 바랐던 것들이 그의 인생에 찾아온다.







인생의 비밀도 어쩌면 여기 숨어있지 않을까. 만족할만한 삶이 주어져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때 선물처럼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 틱틱, 붐은 그동안 쌓여온 불안이 터져나오는 소리기도 하지만 준비해온 잠재력과 가능성이 폭발하는 소리기도 하다. 틱, 틱, 하고 들려오는 소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어떤 삶이 펼쳐지질지도 변하는거 아닐까.




시간이 갈수록 조급해지는 마음을 해결하는 건 참 어렵다. 남들은 멋진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제자리걸음 같을 때 자격지심 없이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보다보면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정해놓은 나이나 기준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뒤에 어떤 삶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뻔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작품 속 이야기들에 기대 지나온 시간을 긍정하고 다가올 일들을 기대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서른이 찾아오면 그때는 그다지 멋지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말로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틱, 틱, 들려오던 불안함은 나를 재촉하는 소리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가능성들이 터져나오는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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