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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규 Nov 18. 2019

오리배에서 보트피플로
: 펠리컨을 진찰하다

작품: <아, 하세요 펠리컨> - 박민규

1. 오리배에서 보트피플까지


 박민규 작가의 소설에서 특징적인 점은 현실과 뒤섞인 환상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박민규 작가는  인물 주변에 사물을 배치한 후에 환상을 뒤섞고 그 사물을 전치시켜 이야기를 전달한다. 임팩트를 주는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환상의 요소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은 분명 인물에 있다. 작가가 세밀하게 설정해 창조해낸 인물과 그를 둘러싼 상황들이 작가의 주제의식을 말한다. 그리고 그 주제의식이 오리배를 보트피플이 있는 곳까지 데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민규 작가가 설정한 특징적이면서도 명료한 인물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2. 고장 난 두더지 기계 


 “아무튼 이 나라는 고장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심각하다. 누구나 살기 힘든 건 알겠는데, 꼭 머리를 내미는 한 마리가 있다. 그리고 그 한 마리가 일흔세 번의 망치질을 독식한다.”  (p.128) 

 "내일은 두더지 기계를 고쳐볼까 해요. 두더지 저거? 네. 냅둬라. 저건 그냥 버리자. (p.136) 


‘나’는 일흔세 곳이나 이력서를 넣었지만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하고 변두리에 있는 유원지에서 오리배를 관리하는 알바를 한다. 비록 전문대 졸업이지만 동아리 회장을 했었고, 영어 실력도 준수하며, 무엇보다 뭐든 할 수 있는 정신자세가 되어있다. 사장도 마찬가지다. 외국인과 제법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도 가능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원래 이런 걸 할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고장 난 이 세상에서는 한 마리의 두더지만 머리를 내밀 수 있다. 나와 사장의 삶은 일흔세 곳의 회사에 서류를 넣어도 합격할 수 없고 140:1의 경쟁률을 뚫고 머리를 내밀 수도 없으므로, 이런 걸 해야만 하는 것이다.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어 보트가 있는 곳까지 등이 떠밀린 난민(보트피플)들처럼 그들은 오리배가 있는 곳까지 떠밀린다. 오리배와 보트피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속성은 ‘배’ 하나뿐이다. 그럼에도 그 둘이 연결될 수 있는 건 오리배가 있는 곳까지 떠밀려야 했던 이 시대의 보트피플인 사장과 ‘나’가 오리배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3. 오리배 세계 시민연합


 보트피플의 전제는 ‘어느 곳을 가도 지금 있는 곳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혹은 그것조차 알 수 없지만, 생존을 위해 당장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호세 씨의 삶이 그랬다. <그린 빅 푹>의 노동자였지만 공장이 문을 닫아 시위도 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리배는 생존의 문제이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즐겁지 않아서 타는 것이다' (p.135)


 오리배는 즐거워서가 아니라 즐겁지 않아서 타는 것이다. 대형 유람선이나 크루즈를 탈 수는 없지만, 한 마리의 두더지만 머리를 내밀 수 있는 잔혹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도피하기 위해 무언가를 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타고 싶지 않지만 타야 한다. 타야만 한다. 그러므로 연천 유원지에 찾아와 오리배를 타는 모두가 사실은 이 시대의 보트피플이다.

 일흔세 번이나 떨어지며 연천 유원지까지 흘러들어온 주인공은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살기 위해 펠리컨이 되어야 했던 사장의 오리배를 바라보며 ‘아, 하세요.’ 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의사가 진찰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보트, 혹은 오리배를 타고 이리저리 떠돌며 일을 해야 하는 이 시대의 보트피플, 오리배로는 모자라 펠리컨을 타고 다녀야만 하는 그들을 향해 박민규는 진찰하는 것이다. <아, 하세요> 


끊임없는 경쟁에 지쳤다면 오늘 이 소설은 어떨까. 

확신할 수 있는건, 박민규의 소설은 재미있다. 



* 해당 작품은 박민규의 단편집 <카스테라>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표지에 삐둘어진선 님의 그림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될 시 삭제, 변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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