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dan한 B Mar 26. 2024

2024년 봄

3월 21일의 일기_날 닮은 너

옥신각신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너와, 너는 나와 줄타기를 한다.

 

밖에서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 서로 얼굴을 마주한 순간엔 반가운 마음으로, 딸각하고 안절벨트를 풀고 와락 안겨오는 너를 안고선 행복한 마음으로, 반찬투정에 칭얼거림으로 너의 감정을 표현할 땐 인내심으로, 목욕탕에서 예의 없는 행동으로 낯부끄럽게 굴 땐 화가 난 마음으로.

실시간으로 바뀌는 감정의 선이 어지럽게 엉켜, 그 시작도 알 수 없을 만큼 덕지덕지 붙어버리면 '이 구역 미친년'으로 변신.


하지만, "엄마 나 삼춘긴가봐, 자꾸만 짜증이 나" 하고 다가오는 너를 보면, 나는 순식간에 이 작은 아이에게 품었던 짜증이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안아줘야지, 내가 너를 달래줘야지. 나도 내 감정에 못 이겨 괴로운데 너는 오죽하겠어' 하면서. 


***


목욕탕에서 추우니 물에 들어가라는 제안을 10번쯤 무시하고, 이제 그만 나가자는 부름을 4번쯤 묵살했을 때, 나는 '혼자 정리하고 여유롭게 머리를 말리고 집으로 가버리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세 나를 따라 나오는 너를 또 그냥 둘 수가 없어, 몸을 헹구고 몸에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라고 했는데.


세상에나 너 정말 내 딸이 맞구나. 


나는 서른 중반 가까이 얼굴에 뭘 바를 때, 손가락 1-2개만 사용했다. 손에 덕지덕지 제품이 묻는 게 싫었고, 굳이 손바닥 한가득 묻혀 바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물론 지금은 귀찮기도 하고 손에도 수분과 영양이 필요하단 생각에 대충 짜고 대충 문질러 바른다. 근데.. 만 4세 쪼꼬미가 검지 손가락 끝으로 자기 볼에 로션을 문지른다. 세상에나 너 정말 내 딸이 맞구나. 코도 이마도 턱도 발라야 한다고 한참 알려주다 보니, 몸에 물기가 다 말랐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너와 나의 전쟁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지만, 

그래서 오늘도 줄타기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했지만,

손가락 끝에 묻힌 로션만큼

네가 묶어준  내 머리카락만큼

또 행복한 기억이 쌓였다. 


소소한 행복을 잊지 않기 위한 기록 하나, 끝.


매거진의 이전글 2024년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