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순 Dec 21. 2020

가짜사나이

Fake Ticket

뉴욕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았기에 주말마다 맨하탄에 나가 그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뉴욕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형이 내게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겠다며 나를 맨하탄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고 있던 그때,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가 제레미 린의 뉴욕 닉스와 붙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상에 코비 브라이언트라니. 심지어 당시 하버드 출신 아시아계 농구선수로 가장 핫 했던 “Linsanity” 제레미 린과의 경기. 꼭 보고 싶었다. 


서둘러 예매를 하려 했지만 이미 매진. 우리는 경기 당일 암표를 구해보기로 했다. 사실 뉴욕 닉스의 경기는 LA 레이커스와의 경기가 아니어도 항상 매진이었다.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뉴욕팀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항상 NBA 구단 가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형과 닉스의 홈구장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 앞으로 향했다. 역시나 암표상들이 여기저기서 표를 팔고 있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전경, 출처 pixabay>


“하우 머치?” 

“파이브 헌드레드 벅스” 


가장 저렴한 표가 50만 원이 넘는다. 학생이었던 우리에겐 너무 큰 금액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근처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1 쿼터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재밌으면 표를 구입하기로. 게다가 경기가 시작한 후면 가격도 떨어질 테니 말이다. 


“투 라거 플리스” 


tv앞 바에 자리를 잡고 경기를 보는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불꽃 튀는 경기였다. 외로워 보이던 아시아 선수는 경기가 시작되자 세계 최고의 스타를 상대로 엄청난 경기력을 뽐내고 있었고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경기에 빠져들어갔다. 


“형 가요. 티켓 사야겠다” 

“그래! 이건 무조건 봐야겠다” 


암표상에게 가니 여전히 티켓을 팔고 있었고 가격은 백 불이 떨어져 있었다. 특유의 붙임성으로 학생임을 강조하며 흥정한 끝에 나온 결론. 


“투 티켓, 파이브 헌드레드, 딜?” 

“유 갓 미. 유 럭키 맨” 


그렇게 손에 넣게 된 뉴욕닉스 VS LA 레이커스 경기 티켓,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지고 있다


ATM기에서 500불을 뽑아 건네고, 우리 손에 쥐어진 티켓을 보며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검표원을 지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함성소리가 들렸다. 


“형 대박이다. 우리가 코비의 경기를 보다니!”


흥분도 잠시. 지하철 개찰구 같은 두 번째 게이트에 표를 넣고 지나가려는데 투박한 경고음이 울렸다. 


“삐-“ 


검표기 옆에 서있던 직원이 시크하게 말했다. 


“Try again” 

“삐-“ 


이번에도 시크한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 안타까움을 담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한마디를 더했다. 


“This is a fake ticket” 


나도 모르게 영어로 욕이 나왔다. 찰나의 순간 나에게 행운이라며 선심 쓰듯 티켓을 건네던 암표상의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검은색 피부에, 검은색 옷, 검은색 비니, 심지어 검은색 신발. 뉴욕에서 그를 찾는 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 한 미션이었다. 


경기장 밖에는 우리 같은 희생양(?) 들이 즐비했다. 유럽에서 온 한 아저씨는 티켓 두 장에 1,000불을 주고 샀다며 경찰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제시받았던 그 가격에 흥정도 없이 샀나보다. 동유럽 특유의 악센트에 억울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암표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펍으로 돌아갈 돈도 없었기에. 그 뒤에도 그 티켓은 한국에 돌아오는 그날까지 버릴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 가짜는 절대 사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작가의 이전글 주식에 빠진 병정개미, 정상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