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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Apr 30. 2018

10.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

예기치 못한 병을 얻다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생을 낳으면 다양한 언어 자극도 되고, 사회성도 좋아지지 않겠냐는 조언을 한다. 그럴 때마다 '제가 좀 아파서요' 라고 얼렁뚱땅 대답을 하지만 유치원 도움반에서도 유일한 외동이었고, 또래에 대한 무관심은 그대로인데 점점 내 나이는 들어가니 동생을 낳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깊어져 갔다. 어느 날, 의사에게 묻기도 했다.


“선생님, 동생이 있으면 준영이한테 도움이 될까요?
“부모님한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정상 발달을 하는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느끼면 아픈 아이를 키우는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고 자존감도 회복되고요”


아이한테 도움이 된다면, 내 몸이 너덜너덜해지더라도 낳아볼까 싶었다. 어쩌면 그 빌미로 나도 한 번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남의 아이가 조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쫑알대는 것도 이토록 신기하고 예쁜데, 내 아이라면 매일매일 얼마나 설렐까? 새록새록 늘어가는 언어 표현과 점점 정교해지는 몸짓에 천재라며 기특해하겠지.

하지만 나를 위해서라면 됐다. 준영이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까. 아니 실은 두려우니까


 우리 집 둘째 아들은 세상에 조금 일찍 나와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자궁경부무력증’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자궁경관무력증 - 임신 중기나 말기의 초에 진통이 없이 자궁 경부가 부드러워지면서 얇아지고 열려서 유산 또는 조산되는 희귀한 질환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슬픈 병명- 요즘 시대에 불임은 종종 들어봤어도 임신기간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병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전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평범하게 출산을 하기 어려운 일종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의사는 건조하게 말했다.

“첫째를 정상 분만하고, 둘째를 조기 출산하는 것이 이 병의 아주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다음에 잘 준비해서 미리 수술받고 다시 낳으면 됩니다”

 첫째를 정상분만했으면 둘째를 정상 분만하는 게 전형적인 게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기력이 없었다. 이미 내 아들은 울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 떠났고 내 곁에 없었다.


 임신부가 이 진단을 받을 확률은 굉장히 낮고, 아이가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을 확률도 낮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상황이 한 사람에게 겹쳐서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확률인데, 내가 바로 그 사람이 된 것이다.

“엄마 소리 한번 듣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어”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오는 것과 같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것 같았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아이들이 모두 새롭고 귀해보였고 내게도 다시 귀한 만남이 빨리 오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 아물고 흐릿해질 거라 생각했던 그 날의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올라서 다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당장 응급수술을 하지 않으면 자연 출산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시작했다. 늦가을, 수술실 안이 너무 춥고 무서워서 하염없이 떨고 울면서 수술을 받는 도중, 너무 늦게 발견해서 안 되겠다며 30분 만에 끝나버렸다. 아이를 살리려던 수술이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번에는 포기하자고 말하며 유도분만제를 놓았다.

 주사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까지 내 배를 힘껏 차며 놀던 아이의 움직임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내 자식이 내 안에서 짧은 생을 다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참담함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다.

  생명이 꺼진 채 태어난 아이는 황급히 간호사가 데리고 갔고, 나는 정상분만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전신마취를 하고 ‘소파수술’울 받았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다음날 바로 퇴원을 하라고 했다. 하루 만에 두 번의 수술과 출산을 겪은 나는 다른 평범한 산모들과 달리 그렇게 쫓기듯 퇴원을 해야만 했다.

 아이를 정상적으로 분만하지 못한 나는 산부인과에서 축복받지 못한 산모였고, 그들은 내 마음이 얼마나 다쳤는지 따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떠나고 헛헛한 출산휴가(임신기간이 22주 이상 27주 이내인 경우 60일까지 부여됨)를 받았을 때만 해도 나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서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 아들이 곧 환생을 해서 내게 올 텐데 건강해야겠다며 벌떡 일어나 유명 한의원을 찾아가 한약을 지어먹는다든가 하는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을 했다. 마치 현실적인 정신으로는 버틸 자신이 없는 사람처럼...

 출산, 유산, 사산, 조산 중 가장 산후조리가 필요 없는 경우는 아이를 정상적으로 분만한 출산이라고 한다. 임신을 하고 출산하는 것은 인체의 생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지만 나머지의 경우는 정상적인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적/육체적인 후속 조치를 필요로 하고, 산모의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한참 동안 내 건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장애진단을 받은 준영이의 치료로 정신없는 시간을 살아야 했다. 어쩌면 모든 정신을 한 곳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거나 예비 장애인

선천적으로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경우보다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비율이 훨씬 더 많다.  예기치 않은 우연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삶의 무게를 견디고 견디다 마음의 병을 얻게 되기도 한다. 운이 좋아서 모든 경우의 수를 건너뛴다고 해도, 누구나 늙는 것만은 피해갈 수 없다. 항상 청춘일 것만 같던 몸과 마음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해, 걷고 듣고 보는 것에 대한 감각과 근육이 둔해져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모두에게 온다. 까랑까랑한 소리로 나를 혼내던 친정엄마가 내 말을 잘 이해 못할 때, 친정아빠의 산소에 다녀오면서 내 걸음보다 한참 뒤처질 때 곱던 나의 엄마에게도 이제 그 순간이 왔음을 느낀다. 그 순간이 조금 더 일찍오거나 늦게 찾아올 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던 사람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결국은 온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너무 깊은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이나 위안부 할머니처럼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이제 좀 그만하라’거나 ‘이미 다 지난 옛일을 가지고 왜 그러냐’ 하는 것은 틀렸다. 상처는 이겨내고 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불쑥불쑥 떠오른 아픈 기억에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저 ‘그래 많이 힘들구나’ 하고 가만히 들어주면 된다는 것을.

 장농속에 포장 그대로 고이 남겨져 있는 아기이불을 볼 때마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곳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할거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더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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