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업주 정주영 자서전을 읽고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현대'라는 회사. 현재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현대백화점 등 다양한 회사로 쪼개져 있지만 예전엔 다 하나의 '현대' 그룹이였고 지금이야 대한민국 no1 그룹은 '삼성'이지만, 과거엔 '현대'였다.
내 어릴적 기억의 '현대'그룹을 떠올려보자. 우리 집의 첫 차는 현대 자동차의 소나타였고, 외삼춘은 현대아파트에 살았다. 정주영 회장이 소떼 10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지나가는 것을 TV로 보았고, 그걸 계기로 금강산 관광사업이 만들어져 중학교 때 친구들 몇 명이 다녀왔었다. 현대/삼성가의 창업 스토리를 드라마로 만든 '영웅시대'를 꽤 재밌게 본 기억이 있고, 대학교 막학기 취준 때 현기차와 현대중공업은 꼭 가고 싶은 회사였다. 우리 삶에 '현대' 그룹의 흔적은 진하게 남겨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가들의 책을 찾아서 보는 편인데도 현대/삼성 창업주의 책을 본적은 없었고(삼성은 신입사원 때 주입식 교육을 받긴 했으나..) 이번 기회에 아주 재밌게 읽었고 안 봤으면 아쉬울 뻔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요즘 가장 고리타분 하다고 평가 받는 부지런함 & 성실함을 가장 큰 무기로 삼아 한결 같은 꾸준함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어릴적 가출을 수차례 하며 더 큰 세상을 꿈꾸던 소년은 그 누구보다 성실함으로 쌀가게 4~5년 근무하였고, 주인의 신뢰를 얻어 22살에 가게를 물려받았다. 신용이 가장 큰 재산이라 생각한 정주영은 누구보다 근면성실하였고, 어떤 사업을 맡든지간에 가장 밑바닥의 기본적이고 디테일한 부분에 집중하고 놓치지 않았다. (내 철저한 확인과 무서운 훈련, 끈질긴 독려가 오늘의 현대를 만들었다고 믿는다(p97)
또한, 빈대한테도 배우는 불치하문의 자세로 사업과 삶을 마주하고 임자 해봤어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어떤 일도 되는 방법을 찾아 왔다. 양변기를 본적도 써본적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알아보고 설치하고, 부산 유엔군 묘지 단장해야 하는데 잔디 없어서 보리 깔아버렸다. 소양강 댐, 경부고속도로, 조선소, 중동 진출, 자동차 사업, 새만금 간척 사업, 88 올림픽 유치 등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여 정치인들과 지식들은 대체로 반대하였지만,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며 결과적으로 모두 기념비적인 성공을 만들어내었다.
소학교까지 밖에 졸업하지 않았지만, 그가 일과 사업에 투입한 시간과 열정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워라벨을 강조하고 효율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최근의 분위기에는 맞지 않지만, 일론 머스크도 주당 100시간이상씩 일하고 테슬라 초기 땐 공장에서 노숙했었으며, 요즘 중국 IT는 996(9시부터 9시까지...6일 동안) 근무가 돌아간다고 하는데 정주영도 공사판에서 텐트치고 일한다고 하였으니 여러모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당연하게 항상 대성공만을 할수는 없는 법이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단 타석에 많이 서야 한다. 어떤 사업이 잘 될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또 다른 기회를 위해 다양한 도전을 계속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정주영은 삼진 먹더라도 다시 정신 차리고 타석에 올라가는 회복탄력성이 말도 안되게 좋았다.
20대 초에 모은 돈 + 돈 빌려 세웠던 자동차 수리 공장이 몽땅 불탔으나, 50명을 굶길 수 없기에 다시 시작해서 3년만에 큰 돈을 모아 빚도 다 갚았는데 일본 태평양전쟁으로 기업 정비령이 나와 강제합병 당하고 회사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그 이후 광석을 제련소로 운반하는 일을 3년 하고 그만두고, 서울에서 일감이 괜찮았던 미군 시설 공사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36살에 현대건설로 새출발하였으나 곧 6.25터졌다. 미군 쫓아다니면서 미군부대 공사로 자리를 잡았는데 고령교 복구 공사에서 부실한 장비 + 물가 120배 상승 + 공기 2개월 지연 등으로 큰 손해를 보고, 해당 손실을 매꾸는데 20년 걸렸다. 얼마나 기구한 청년시절인가. 요즘 같았으면 유퀴즈에 나올법한 짠한 이야기다.
밝기만 하고 기쁨만 넘치는 인생은 드라마가 되지 못한다. 스타의 인생에는 비극도 있는 법. 정주영은 92년 1월 현대 명예회장직 내려두고 통일국민당 창당하며 정치에 뛰어 들었는데 14대 대선에서 패배하였고 문민정부 시절에 정주영 본인 및 가족들은 꽤나 고생(압구정 현대 특혜 분양 사건, 비자금, 정치자금, 선거자금 이슈 등)하였다. 왕자의 난으로 그룹은 해체되었고, 대한민국의 1인자가 되고 싶었던 그가 못 이룬 꿈은 그의 오른팔인 MB가 이루었다.
이번 여유로운 추석 연휴에 유투브 과거 영상부터 다큐멘터리도 같이 보며 대한민국 고속 성장기를 리딩했던 산 증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이나모리 가즈오, 손정의, 워렌버핏 등 해외 경영자들이 많이 부각되는 요즘 시대에 한국에서 더 많은 스타 경영자가 나오길 바라고 더 많은 창업가가 시장에 쏟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