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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붕 Aug 14. 2021

중국 자유여행 프롤로그

만리장성만큼 높은 한자의 장벽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들어본 적 있는 '니하오', '쎼쎼' 단 두 글자만 알고 캐리어 세 개와 함께 중국에 도착한 그날은 나의 첫 중국행이었다. '중국은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여행지 아니냐'며 '언젠가 더 나이 들면 가겠지'라고 항상 여행 선택지에서 밀렸던 중국을 삼십 대에 일하러 오게 될 줄이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온 몸으로 느껴지는 뭉근한 공기는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을 더 엉겨 붙게 만들었고, 주위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한자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들쑥날쑥한 성조의 중국어는 정말 중국에 왔음을 실감하게 함과 동시에 마치 문맹이 된 듯한 기분에 빠지게 했다.


낯선 곳에 와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해도 위는 점차 배고프다며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하여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KFC로 향했는데, 적어도 이곳이라면 영어가 통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영어로 메뉴판을 달라던 나와, 중국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하는 중국인 직원. 우리는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의 대화를 달렸고 결국 만국 공용인 바디랭귀지를 동원하고 나서야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어를 못하면 밥 사 먹는 것도, 택시를 타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도착하자마자 자각해야만 했다.


'글자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다니, 대체 몇 천 개 글자를 어떻게 외워? 세상에 이렇게 무식한 글자가 어디 있어!'라며 한자를 까내리던 나도 '생존'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죽어라 외우는 수밖에.


초등학교 때 3000자를 학습한다고 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대체 몇 개를 외워야 하나요. (출처: 바이두 검색)


그 누구보다 여행을 좋아해서 당장이라도 시간 날 때마다 뛰쳐나가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중국에서의 나 홀로 자유여행을 감히 용기 내어 시도하기까지 '최소 일 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의지할 사람도 그 무엇도 없었기에 오롯이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면 의사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중국어를 이용하여 문장 형태로 나의 생각을 나타내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무런 한자 기초가 없는 백지상태에서 주경야독까지 해야 하니 남들보다 시간이 배로 걸릴 수밖에 없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중국 여행' 관련 검색을 해보면,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어를 배우러 온 어학연수생이거나 현지 장기 거주자, 혹은 한국에서 여행사 투어로 온 사람. 전자는 자유여행, 후자는 패키지여행인 셈이다. 그래서 자유여행 후기를 읽다 보면 대체로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나온다. 이 말인즉, 중국 자유여행의 가장 큰 장벽은 '중국어'라는 것.


윈난성 리장 호도협을 여행하다가 자유여행을 온 한국인 모녀를 만난 적이 있다. 보통 중국에서 자유여행을 하는 외국인은 어느 정도 중국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 마디도 못하는 두 모녀는 오로지 '파파고'에 의지한 채 중국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따님은 나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인도 자유 여행도 갔다 왔는데요, 체감 여행 난이도는 중국이 더 높은 것 같아요. 인도는 그래도 영어는 통했거든요. 너무 힘들어요."

나에게도 한 줄기 빛 같았던 파파고. 사진이 없는 식당 메뉴판이나 어마어마한 양의 중국어 글씨에 부딪힐 때 이미지 검색이 편리하다.




다른 나라보다 '언어'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옥룡설산 한복판에서 말 한마디 못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내 모습이 한심해서 구석으로 가 혼자 엉엉 운 적도 있고, 말을 못 알아들어 이상한 곳으로 가거나 실수한 적도 부지기수다. 이로 인한 시간적 손해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행여 금전적 손해 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까지 생겨버리면 그 때의 속상함과 자책감이란. 최근 여행에서는 말을 못 알아들어 호텔에서 아침에 급하게 쫓겨나는 일까지 발생하고야 말았다. (코로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결론은 역시 '사람'이었다.



종이에 한자를 적어 내 손에 꼭 쥐어주던 분, 못 알아듣는 나를 위해 번역기를 사용해서 한글로 보여주던 분, 의사소통이 안 되면 언제든지 통역을 도와주겠다며 위챗 연락처를 알려주던 분, 무슨 일이 생겨 혼자 해결하기 힘들면 꼭 연락하라던 분. 길 위에서 때때로 만났던 애정 어린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어려움의 매 순간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에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그다음 여행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을 위한 짐을 싼다.




*중국에서 자유여행을 다니며 생겼던 에피소드와 주말마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다니는 등산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공부한 끝에 HSK 5급을 취득했지만 여전히 현지인과의 대화는 너무나 큰 장벽임을 느낍니다. 그래도 열심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 중이니, 언젠가 바위가 조금씩 허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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