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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붕 Aug 21. 2021

반갑지만 낯선 한글을 만나다

[동북지역 여행]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조선족.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동북지역 지린성에 위치한 연변조선족자치주(주도州都는 연길)와 동북 3성(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지린성)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조선족'이라는 세 글자는 위와 같은 사전적 의미 외에도 그들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단어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중국인, 교포, 동포' 등. 이는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여러 외교 현안들, 코로나 등과 맞물려 반중 감정이 높아진 상태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거긴 좀 무섭지 않아?"

"무조건 조심해."


다음 여행지는 조선족자치주 연길이라는 소식을 가족 및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자 가장 처음 들은 말이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거길 왜 가냐는 핀잔 섞인 걱정과 함께.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편견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에 이들의 걱정도 무리는 아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었던 이유는 중국 속 한글을 쓰는 곳의 모습과, 조선족이자 재중동포인 그들의 문화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매체를 통해 어렴풋이 보고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는 모두 간접적일 수밖에 없기에 직접 느끼고 싶었다.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연길로 넘어갔다. 백두산 여행의 중심지 이도백하 역시 조선족자치주에 속하지만,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조선족자치주라는 것을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기껏해야 한식당 간판이나 관광지에서 설명 정도가 어쩌다 한글로 적혀있을 뿐.


 '연길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도백하에서 연길까지는 약 한 시간 반~두 시간 정도로 제법 가까워서인지 버스 안은 연길을 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길거리의 간판, 도로 교통표지판에 점점 한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창 밖을 구경하는 사이, 버스는 점차 시내로 들어서고 한글로 또렷하게 적힌 연길역 간판은 조선족자치주 주도州都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게 했다.

버스 타고 이도백하에서 연길 이동 중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식당의 풍경. 점차 보이는 한글들이 연길에 가까워짐을 느끼게 한다.,


버스의 종착지였던 연길 역.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州都답게 중국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한글이 병기되어있다.


중국은 규정 상 소수민족자치주에서는 반드시 해당 민족의 언어를 병기해야 하기 때문에 연길 시내로 들어오는 순간 교통표지판이며 온갖 간판에 빼곡하게 적힌 한글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중국어로 말은 할 수 있지만 모르는 글자가 아직 많은 나는 이곳에서만큼은 '칸부동'(看不懂,보고도 알지 못한다, 즉 글자 뜻을 모른다는 뜻)의 설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심지어 시내버스 정차 안내 방송도 한국어-중국어 순서로 나온다.


중국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한글을 보고 듣는  처음이라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거리를 구경하며 '켄터키'라고 쓰인 KFC 밥을 먹으러 갔다. ' 거리 글자의 절반이 한글이고 심지어 버스에서도 한글이 나오는데, 혹시 여기에선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은 매장에 들어섬과 동시에 어김없이 무너졌다. 중국어를 못하면 주문도, 의사소통도  되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KFC뿐만 아니라 이후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도, 냉면집에서도, 스타벅스에서도, 한국 음식점에서도, 간판이 가득한 연변대학교 정문 건너편 '대학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사람들 대화  한국어(조선어) 거의 들을  없었다.

한글 간판이 가득한 연변대학교 정문 건너편 대학성의 야경. 그러나 한국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제야 불현듯 동티베트 지역을 여행했을 때가 떠올랐다: 샹그릴라를 비롯한 티베트 문화권으로 들어가면 조선족자치주처럼 한자와 티베트어가 병기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티베트어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그곳과 비교하니 이곳의 상황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곳 관광지에서 만난 대다수는 한족이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실거주자, 유명 관광지에서 큰돈을 버는 사람들 또한 한족이 대다수였으며 이 비율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일이 조선족자치주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찾아보니 연변조선족자치주 전체에서 거주하는 조선족의 비율은 36.7% 정도로 그다지 높지 않다. 중국 정부의 융합 정책에 따라 대입 시험 시 소수민족 가산점도 점차 없어지는 추세이며, 많은 조선족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다른 소수민족 지역 중 하나인 내몽고도 마찬가지로, 작년에 몽골어 교육 비중을 축소함에 따라 시민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젊은 조선족의 비율 또한 늘어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조선족 또한 역사 속의 기록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 날, 길을 걷다 정말 낯설게 다가오는 한글이 눈에 띄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중국꿈을 이룩하고 손에 손잡고 문명도시를 건설합시다]

[同心共筑中国梦,携手共建文明城】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답게 곳곳에 선전 문구가 적혀있으며 심지어 종종 핸드폰 문자메시지로도 날아오곤 한다. 한자로 접했을 땐 '여긴 중국이니까'하며 그러려니 했던 내용들이 시내 한복판에 한글로 떡하니 적혀있는 걸 보니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표적 통치 이념인 '중국몽'
중국 안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들. 한자로만 보던 단어를 한글로 적어놓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 묘한 기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한창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 운 좋게 학교에서 지원받아 북한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금강산을 오르면서 곳곳에 보였던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주로 공산당 정신 같은 것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미국 동포나 재일 동포, 고려인  대다수 해외 동포들의 국적도 미국, 일본  해당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재중 동포가 '우리는 중국인이다'라고 했을  거북한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경우가 많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공산주의 정치체제 특성상, 어릴 때부터 사상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그들은 비록 한국어를 구사할  있지만(요즘은 한국어를 모르는 조선족도 많지만) 생각의 차이는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와 상반되는 정치 체제로 인해 다른 해외 동포들과 비교했을   차이가   수밖에 없고, 나는  '차이' 연길에 와서  글자들을 보고나서야 몸소 낀 것이다.




연길에 오니 중국의 그 어느 지역보다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연길 냉면과 꿔바로우의 조합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주변에서 걱정했던 치안 또한 여느 다른 중국 관광지나 도심처럼 좋은 편이었으며, 한글 덕분에 다른 그 어떤 곳보다 쉽고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근교 여행을 위해 찾아본 여러 자료에서 보게 된 '조선족 애국 시인'라고 적힌 윤동주 시인의 생가,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한복과 이를 형상화한 이미지들, 메뉴판에 조선족 전통 음식이라고 적혀있는 우리 음식들을 보면서 '동북공정'이 스치고 지나간 건 나의 지나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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