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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붕 Sep 01. 2021

중국 현지 여행사를 이용한 주말 등산


지난 주말 등산 단체 사진. 드론을 가져오신 분이 있어서 덕분에 멋진 사진이 찍혔다.


평일 퇴근 후에는 휴식과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주말 중 하루는 가급적 등산을 가려고 노력한다. 운동도 하고, 도심에서 만나기 힘든 짙은 녹음과 싱그러운 새소리도 실컷 즐기고, 등산하다가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니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작년부터 꾸준히 중국 현지 여행사의 주말 등산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데 장점이 꽤 많다. (찾아보니 한국은 '안내산악회'가 이와 비슷하다)


현지 여행사 이용 등산 시 장점

- 등산 전문 가이드(한 팀의 규모 따라 대략 2~3명의 가이드가 동행)와 동행하므로 안전함
-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이 없고(옆동네 가까운 산까지 최소 편도 3-4시간 소요), 등산 전후로 버스에서 휴식하며 체력 보충
- 규모가 큰 여행사는 가이드 개인이 받는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가이드 평가 별점 모두 공개) 서비스가 매우 좋음
- 일회성 모임이므로 동호회같이 지속적 관계 형성이 부담스러운 경우 적합함
- 산 타면서 중국어 말하기, 듣기 공부는 덤
- 비교적 저렴한 가격(싼 곳은 한화 만 오천 원 전후, 비싸야 삼만 원 이내)


어플이나 위챗 wechat을 통해 쉽게 예약할 수 있는데, 매주 등산, 클라이밍, 자전거 타기, 패들보드 등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 요즘엔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지 높은 난이도의 등산보다는 가볍게 등산 후 함께 저녁밥을 먹고 돌아오는 활동이 제법 많아졌다. 난이도 있는 산 등반을 좋아하는 나로선 쉬운 코스가 늘어난 만큼 어려운 코스가 줄어든 것이 조금 아쉽지만 날씨와 맛집 투어라는 요즘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번 주 예정인 활동들. 가볍게 걷는 활동부터 꽤 난이도 높은 등산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


최소 인원수를 넘겨야 성사가 되는데 보통 목요일 저녁쯤이면 판가름이 난다. 성사 후 그룹 위챗 방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출발 전 각종 안내 및 참가자들끼리 채팅이 진행되면서 등산에 대한 설렘이 시작된다. 


기다리던 주말 아침이 되면 여러 여행사들의 주요 집합지인 이 지하철역은 출발하기위해 모인 사람들로 매우 혼잡스러워진다. 일 년 전, 처음으로 혼자 참가하기 위해 이 역에 도착했을 땐 신청한 여행사와 가이드를 찾지 못해 헤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곤 했었지만 이젠 이 광경이 제법 익숙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신청한 활동의 가이드를 찾아 등록을 해야 한다. 각 여행사별로 나름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이 도착해서 버스에 탑승하면 목적지로 출발하는데, 이때 가이드가 (외국인인 내가 듣기에) 속사포 랩과 같은 중국어로 그날의 대략적인 일정과 루트의 포인트 등을 설명해준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휴게소를 들른 이후, 본격적으로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를 진행한다.

가이드의 자기소개 중. 아주 가끔 이런 이벤트(노래왕)도 한다.


처음 참가했던 날, '자기소개'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설마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앞자리부터 한 명도 빠짐없이 버스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하는 것을 보곤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는 그 순간은 정말이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우리말로 자기소개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잘하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소개를 해야 하다니! 순간 어떤 내용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머릿속으로 '처음엔 니하오, 그다음엔 나는 한국인입니다, 나는 등산을 좋아합니다'와 같은 문장들을 순서에 따라 이리저리 구상하다 보니 마이크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외국인이 현지 여행사를 통해 등산에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 외국인 처음 만났어!'라며 신기해하고, 들쑥날쑥 제멋대로인 성조나 발음도 다들 외국인이니까 그러려니 하며 이해한다. 그래서 자기소개를 할 때에도 다들 '중국어 잘한다'며 기운을 북돋아주지만, 무대 울렁증이 있는 나에겐 이 '자기소개'가 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최대의 난제 중 하나다. 


자기소개를 할 때 노래와 같은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면 선물(등산 버프)도 받을 수 있다. 의외로 지원자가 많고 열심히 부르는 걸 보니, 여행사 전세 버스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만국 공통인가 보다. 참가자뿐만 아니라 인기 많은(평점 높은) 가이드들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안면을 트고 명랑한 분위기에 빠져들다 보면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등산 전 준비 운동은 필수

한국은 동네 뒷산도 길과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있지만 중국은 국가급 관광지 아니고서는 산에 이정표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이드를 잘 따라서 올라야 한다. 예전에 동행 가이드 수가 적은 저렴한 이용사를 따라갔다가 길을 잃었던 경험을 한 번 한 뒤로는 가격은 조금 비쌀지라도 조금 더 안전한(동행 가이드 수가 많은) 여행사를 선택한다.


등산로 또한 대체적으로 잘 정비되어있지 않고, 가끔 어떤 산들은 한국 기준으로 야산 수준일 때도 있어 장갑과 스틱, 잘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화는 필수다. 한국은 동네 뒷산도 히말라야 가는 복장으로 온다며 온 국민의 과도한 등산복 사랑을 비꼬는 말도 있지만, 중국은 반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입고 신고 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와서 죽죽 미끄러지거나 엉덩이로 슬라이딩하면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종종 봐서 그런지 다들 안전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장비는 챙겼으면 좋겠다.

지난 주 등산 시 사진. 제법 미끄럽고 경사져서 내려올 때 애먹었던 구간이다.


힘들게 올라가면 등산의 하이라이트, 점심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정상 등반보다도 입과 배가 행복해지는 점심시간이 가장 좋다. 어쩌다 가끔 이것저것 많이 챙겨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간단하게 자신 먹을 것과 함께 나눌 과일 정도를 싸오는데, 정말 많은 중국 사람들이 캔으로 된 죽(팔보죽, 여러 잡곡죽)을 사 와서 먹는다. 당과 탄수화물을 야무지게 챙겨 먹는 나로서는 뒤돌아서면 소화되는 죽을 먹고 어떻게 나머지 절반의 일정을 걷는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 어떤 걸 가지고 올라가야 조금 더 맛있고 시원하게 먹을까 고민하면서 네이버 등산 카페를 뒤져 정보를 얻곤 하는데, 경험에서 우러난 갖가지 아이디어(컵과일, 각종 음식 얼려가기 등)나 음식 챙겨가는 스케일을 보면 아직 음식에 대해서는 한국이 더 진심인 것 같다. 


점심시간의 꽃은 바로 가이드가 배낭에 이고 지고 올라온 '수박'이다. 처음에 가이드의 배낭을 보면서 저 큰 배낭에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했는데 바로 '과일'이었다. 어떤 가이드는 수박을, 어떤 가이드는 과일을 여러 종류로 가지고 와서 나누어준다. 내가 마실 물 무게만으로도 어깨가 얼얼한데 저 큰 수박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가이드가 대단하고, 산에서 먹는 천상의 수박 맛을 느낌과 동시에 절로 미안해지곤 한다.


이 여행사 가이드들의 전매특허(?) 수박 자르기. 이렇게 자르면 많은 사람들이 한 조각씩 나눠먹기에 딱 좋다.


식사를 한 뒤 정상 등반을 하고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긴 하루의 일정이 끝난다. 도착 시각은 장소와 당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밤 8~9시, 늦을 땐 밤 11시, 심지어 새벽 1시 넘어서 도착한 적도 있다. 집에 돌아오면 샤워, 배낭 정리, 빨래 등 산더미같은 일에 다음 날 출근이라는 부담까지 살짝 얹히긴 하지만 성취감 때문인지 이런 것들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진 않는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여러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있었다. 하산 시 제대로 걷는 방법을 몰라 결국 산에서 무릎이 나가서 절뚝절뚝 죽을힘을 다 해 내려오기도 하고, 어느 추운 겨울날 1박 2일 산행 중 산장에서 자는데 전기장판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얼어 죽을까 봐 남자 친구와 생존을 위해서 꼭 껴안고 잔 적도 있다. 더운데 물이 없어 입 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갈 때 얻어마신 얼린 콜라는 나의 인생 콜라로 등극했으며(그 뒤로 한 동안 냉동실엔 얼린 콜라가 가득했다), 추운 날 라면과 함께 마셨던 소주는 그렇게 달 수 없었다. 


어느 날 목적지를 향해 가던 버스 안에서, 여행사의 가이드가 회사명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32号(호)‘라는 회사명은 '다들 하루하루 바쁘게 살지만, 한 달 31일 중 하루는 시간을 내어 특별한 날인 '32일'을 보내자'는 의미라고. 


다음 주에는 또 어떤 해프닝이 있는 32일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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