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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붕 Sep 26. 2021

단동, 압록강과 신의주

[동북지역 여행] 랴오닝성 단동시

사람은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서 처음엔 관심이 없다가도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아서, 왜 하면 안 되는지 구구절절 이유를 들어가며 설명해도 꼭 한 학급의 몇 명은 하지 말라는 행동을 기어이 하고야 만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북한 근처까지 가보고 싶었다. 한국의 판문점같이 삼엄한 보안과 경계를 선 군인들의 모습이 아닌, 다른 나라와 북한 접경 지역의 모습과 그들의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우리 민족과 수많은 세월을 함께 한 압록강이 있는 곳, 강 건너 북한 땅 신의주를 볼 수 있는 곳, '단동'으로 향했다.

단동역을 나오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모택동 동상

단동역에 도착하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와 함께 거대한 크기의 모택동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 규모도 작고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한여름 오후의 단동역 주변은 제법 한가했다. 예약해둔 호텔에 체크인을 한 뒤 짐을 던져놓고 곧장 압록강변으로 향했다. 무더운 오후의 더위가 온몸을 감쌌지만 역사책에서만 보던 압록강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흥분과 강 건너편의 신의주를 보고 싶은 호기심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처음 마주친 압록강의 인상은 '고요함'이었다. 나에게 '북한'과의 국경이란 총을 든 군인들과 촘촘하고 삼엄한 경계 태세의 이미지인데, 이곳은 국경 지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평온 그 자체였다.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신의주도 언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각종 기사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북한 소식은 남일이라는듯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였을까. 강변엔 물건을 파는 상인들만 가끔 보일 뿐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잘 정비된 강변 산책로를 따라 쭉 걸어 올라가다 보니 압록강 유람선 부두에 다다랐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30분 정도 둘러보는 짧은 일정으로, 가격은 저렴하지 않았으나 언제 다시 올까 싶어 티켓을 구입하고 다른 중국인들과 함께 배에 올라탔다. 배가 출발하기 전, 안내원의 ‘망원경 대여 10元’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망원경을 빌렸다. 배에서 망원경을 빌린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고작 두 세명뿐. 중국인 입장에서는 강 건너편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있고, 혹여 망원경으로 자세히 봐도 어떤 글자인지 모를 테니 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산한 오후의 압록강변. 맞은편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북한 음식 식당을 많이 볼 수 있다.
압록강 유람선과, 유람선 안에서 10元 내고 빌린 망원경

힘찬 모터 가동 소리와 함께 배는 강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망원경을 통해 본 강 건너편 신의주는 한국의 평범한 시골 마을 같았다. 인기척을 찾기는 매우 힘들었지만 길을 걸어가던 남자 한 명이 가까스로 망원경에 포착되었다.


배가 강변을 느리게 왕복하는 동안 '일심단결', '주체 조선의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 장군 만세'와 같은 '너무나도 북한스러운' 선전 문구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이내 두터운 이질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한민족이고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고 학창 시절 내내 배웠으나 몇십 년간 굳혀진 사상과 관념의 차이를 저 문구들이 여과 없이 드러내 보여주었고 이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게 갑판 위에서 '드디어 보고 싶은 북한을 봤다'라는 반가움보다는 '먹먹함'을 느끼며 길지 않은 유람선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강변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점점 넘어가고, 뿌연 황톳빛 강물은 그새 노을과 구름의 보랏빛으로 함께 물들어갔다. 단동과 신의주의 하늘, 압록강이 한데 어우러진 전경에 눈을 빼앗겨 가던 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압록강변의 해 질 녘

얼마 지나지 않아 짙은 암흑이 찾아오고, 두 개의 압록강 철교와 강변에 화려한 조명이 들어왔다. 지나치게 알록달록한 나머지 자칫 촌스럽기까지 한 조명이 한낮의 태양을 대신해 단동 시내를 밝게 비추는데 반해 건너편 신의주는 머리카락이라도 보일세라 꼭꼭 숨어 자취를 감춰버렸다.


뉴스에서 보던 '북한의 전력난'과 함께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한반도 위성사진이 떠올랐다. 해가 지고 나면 조명으로 환한 남한과 불 켜진 곳이 거의 없던 북한의 대조적인 위성사진.


낮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강 건너편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둠 속에 모습을 꽁꽁 숨겨버린 신의주와 온갖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는 단동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밤이었다.

화려한 조명을 뽐내는 압록강의 두 철교. 오른쪽은 6.25 전쟁 때 파괴된 단교, 왼쪽은 중국과 북한을 잇는 ‘조중우의교朝中友谊桥‘다.

밤의 압록강변은 한산했던 한낮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선선한 저녁 날씨에 수많은 시민들이 강변으로 쏟아져 나와 산책을 하고, 노점상들도 저녁 장사를 위해 길을 따라 좌판을 펼치고 물건을 하나둘 펼치기 시작했다. 나도 인파에 묻혀 낮에 걸었던 강변을 다시 걸었다. 온갖 물건들과 간식을 파는 노점상들 속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게 있었으니, 바로 낮에 그냥 지나쳤던 '여행사 일일 투어 홍보판'이었다.

압록강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북한 지폐, 우표'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과 여행사에서 판매중인 북한 접경지역 일일 투어.

낮에는 그냥 지나쳤던 여행사 홍보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중조(중국과 조선, 중국에서는 북한을 조선이라고 부른다) 국경호화일일여행'을 1인 98元(약 18,000원)에 판매 중이었다. 여행사 직원은 길을 가다 멈추고 광고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투어를 판매할 기세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쉼 없이 설명하는 직원에게 가고 싶지만 못 가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나 한국인이야, 그래서 못 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이 "왜? 지금까지 다른 외국인들, 러시아인이나 일본인들도 다 문제없었어. 그러니까 너도 갈 수 있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나 당당하게 아무 문제없다고 대답하는 직원의 말을 듣고 순간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네가 방금 설명할 때, 북한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니? 내일 투어 정확히 어느 나라 땅으로 가는 건데?"

"북한."

"그러니까 나는 못 간다고. 남한 사람은 북한에 못 가. 나도 가고는 싶지."

"중국이 다 개발한 거야. 땅만 북한 땅일 뿐이고 다 중국에서 만든 거라 아무 문제없어. 진짜 갈 수 있다니까?!"


듣자 하니 중국과 북한 국경지역 일대를 둘러보고, 중국이 개발한 북한의 한 섬에 가는 것 같았다.(내가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으나, 그는 끊임없이 북한을 강조했다) 순간 남북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중국어 실력이 아쉽다가, 이내 길에서 잠깐 만난 여행사 직원에게 그런 것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어 얼른 자리를 뜨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못 가. 그리고 무섭단 말이야. 너 만약 내가 거기까지 갔다가 한국인인 거 들키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럴 일 없다니까. 걱정하지 마."

"고민 좀 해볼게."

"그럼 내 명함 줄게. 혹시 가고 싶으면 여기 번호로 연락해."


아무리 호기심 넘치고 하고 싶은 건 뭐라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지만 아무 문제없다는 중국인 여행사 직원의 말만 믿고 덜컥 북한 국경에 가는 모험을 할 순 없었다. 명함을 받고 돌아서면서 머릿속으로 '국가보안법'과 선양 여행부터 시작된 부모님의 걱정이 떠올랐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내내 시간과 돈이 되어도 갈 수 없는 나의 처지에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다른 외국인은 모두 갈 수 있으나 오로지 한국인만 갈 수 없는 투어였다.



이튿날 점심. 북한 국경 투어는 못 가지만 음식은 꼭 먹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어제 호텔로 들어오면서 봐 둔 '류경 식당'으로 향했다. 단동에는 많은 북한 음식점이 있는데, 그중 '류경 식당'과 '고려 식당'은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식당 중 류경 식당이 규모도 훨씬 크고 가격도 더 비싸다. 고급식당이라서 그랬을까. 열 명 남짓되는 여 종업원들이 입구에 나란히 서서 들어오는 손님을 일제히 맞이하는 서비스는 입장부터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주문한 냉면을 서빙해오자마자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내 앞에서 직접 섞어주는 특급 서비스는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으며, 지속적으로 손님을 관찰하며 부르는 즉시 달려올 기세인 종업원의 눈빛은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어 냉면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집어삼키고 젓가락을 놓자마자 식당에서 나왔다.


단동에서 삼일째 되는 날, 마지막 점심으로 선택한 고려 식당은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았지만 부담스러운 서비스가 없어 먹는 내내 마음은 훨씬 편했다. '냉면은 역시 남한의 물냉'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평양냉면 대신 선택한 '강냉이 온면'은 훨씬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언제 다시 가서 먹을 수 있을까.

서로 마주보고 위치한 류경식당과 고려식당
고려 식당에서 먹은 강냉이 온면. 평양냉면보다 훨씬 맛있었다.

선양의 북한 음식점에서, 백두산 천지에서, 단동의 압록강변에서, 이후 향한 투먼의 두만강변에서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가고 싶은 마음을 간접 경험으로 대신하며 달랬다. 언젠가 한국인도 갈 수 있는 북한 국경 투어도 나오고, 북한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래서 '옛날엔 북한에 직접 갈 수 없어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지'라고 하며 즐겁게 '라떼는 말이야-'하고 경험의 운을 띄울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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