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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NI May 30. 2018

일기같아 슬펐던 지영이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1-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읽은 소설이었다. [82년생 김지영].


대학 진학 이후, 나는 자기계발서에 푹 빠져 지냈다. 여기저기서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몇 번 들었지만,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의 말 한마디에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서점에서 당장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큰 후회를 했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 P가 있다. 서른이 되던 올해, 우리는 이전에 나누지 못했던 ‘여성인권,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전, 곧 결혼하는 소중한 또 다른 친구 K의 결혼을 앞두고 우리 셋은 밤새 모여 수다를 떨었다. 그 때 친구의 한 마디로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꼭 읽으리라 다짐하게 됐다.




내 아내가 생각이 나, 읽는 내내 슬펐던 책


친구 P는 [82년생 김지영]을 읽고난 후, 책을 회사 책상에 꽂아두었다고 했다. 한 회사동료분이 "괜찮다면, 내가 그 책을 빌려가 읽어도 될까요?"라고 물었고, 며칠 후 정중하게 친구에게 한번 더 "책을 다 읽었는데, 우리 아내도 읽고싶다고 합니다. 2-3일 뒤에 돌려줘도 괜찮을까요?"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책을 돌려받던 날 친구는 그 동료분께 "책을 읽으신 소감은 어떠세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은 ‘책을 읽는 동안, 내 아내가 생각이 나서 슬펐다.’라고 대답하셨다고. 


( 평소 친구 Y는 책을 빌려가셨던 그 동료분을 평소에도 존경한다고 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드러냈던 분이라 말했다. “결혼하면서 받은 선물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좋으셨어요?”라는 질문에 “우리 아내죠.”라고 얘기하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분이랄까. )


어쨌든, 나는 그 말 한마디에 '왜 그런 감정을 느끼셨을까, 나는 그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일까, 내 남자친구는 어떤 소감을 표현해줄까' 궁금해졌다. 다음날 곧바로 서점을 향했고, 책을 산 그날 밤 한 권을 끝까지 다 읽고나서야 잠이들 수 있었다.




지영이는 나였고,
소설의 얼굴을 잠시 빌린 일기였다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감정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미치도록 내 이야기 같아 씁쓸하고, 애잔했다. 분노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고 먹먹했다. 


지영이와 나의 형제자매가 같아 더욱 공감이 되었다. 김지영의 형제자매는 3남매, 딸 둘에 아들 하나였다. 나도 3남매이다. 내가 첫째 딸, 그리고 여동생 한 명과 남동생 한 명.


나는 90년생 백마띠이다. '백마띠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며, 어렸을 적부터 꽤 들어봤던 것 같다. 덧붙여,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도 함께 해주시곤 했다. 말 중에서 가장 예쁜 말이 백마인데, 어른들은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주인공인 지영이는 둘째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대한민국 여자'였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책의 첫 시작부터 만날 수 있었던 '일하는' 며느리, 아이들 고모가 오는 날에는 자기 부모님도 '만날 수 없는' 누군가의 딸. 


지영이의 성장과정에서 겪게되는 아들에 대한 편애. 육아와 휴직. 몰카. 등등.


책을 읽으며 슬펐던 것은, 82년생 지영이나 90년생의 나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90년생인 내가 성장한 지금은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대로 조금 더 변했다는 것이 아닐까.


나에겐 너무나 내 이야기 같았던 이 책이 남자친구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고, 책을 빌려 조금이라도 내가 살아왔던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랬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보름 쯤 뒤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자친구의 한 줄 평은 이러했다.

"자기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 그리고, 보이면서도 못 본체하고 편하게 살아왔었어."



** 그 날, 우리가 몇 시간에 걸쳐 나누었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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