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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무슨별 Aug 29. 2023

볼리비아 라파스 케이블카 꼭 낮밤으로 두 번 타세요!


*영상으로 미리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kgXsEXLl-BY&t=7s


혼자서 여행 다니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여행도 참 잘 다녔었는데 딱 한 번 배탈이 심하게 났던 것 이외에는 아파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 여행의 쓰러짐 이슈는 스스로에게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언제나 건강하기만 할거라는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일깨워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내면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 몰라도, 물리적인 신체 나이는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쉬어가는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했다.


우선은 뭐라도 먹어야 했기에 어제 잠깐 환전하러 나갔다 사온 청사과, 요거트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사와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체리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평소에는 아침밥 대신 잠을 선택하고 점심, 저녁 두끼를 먹는 편인데 여행이다보니 아침부터 체력 충전이 필요하여 여행하는 내내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먹었다.


어쩐지 매일 비슷한 구성의 아침메뉴. 여행 중에는 꼭 아침을 챙겨먹는다.


그리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것이었다. 숙소 카운터 직원분께 위치와 타는 방법 등 대략적인 안내를 듣고 가장 가까운 케이블카 역으로 걸어갔다. 오렌지색 노선이었는데 숙소보다도 더 위로 올라가야 했어서 몇 발짝 안 가도 차오르는 숨을 달래며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케이블카 역에서 한바퀴를 쭉 돌 수 있는 티켓을 구매했고 단돈 11볼이었다! 한화로 2,100원 정도였는데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루트를 이 금액으로!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주 가성비가 좋은 관광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파스라는 도시 자체가 움푹 파인 큰 볼(그릇)처럼 생겼다보니, 케이블카라는 이동 수단이 최적의 교통편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높은 곳은 해발 4천 미터에 이르는 고산 지역이다보니, 그 풍경은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케이블카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체력적으로는 최악이었지만 여러 케이블카 노선을 다니며 그 특유의 각도마다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는 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레이(회색)노선에서 보였던 라파스 뷰. 위에서부터 쭉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참 멋있었다.


처음 탑승한 빨간색 노선은 위로 쭉쭉 올라가는 뷰였다. 뒤 돌아보면 반대로 훅 내려다보이는 뷰였고, 앞뒤가 달라서 흥미롭게 풍경을 감상했다.


때로는 올라가는 케이블카에 탑승하여 앞뒤로 보이는 서로 다른 풍경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가로로 길게 늘어지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을 감상할 때는 마치 느린 동화책이 스르륵 옆으로 지나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같은 공간도 보는 각도나 상황에 따라 이렇게나 달리 보일 수 있구나를 느겼던 것 같다. 그렇게 새로운 영감을 가득 채우고 나니, 어느샌가 한바퀴를 쭉 돌아 원래의 케이블카 역으로 도착해 있었다.


말이 필요 없는 파노라믹 뷰! 살짝 숨차고 어지러워서 걸터앉아 쉬다가 뒤돌아보니 이런 멋진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오늘의 유일한 계획이었던 케이블카 한 바퀴 순회하기를 마치고, 내렸던 오렌지색 케이블카 라인에 있던 마트다운 마트에 들러 바나나, 과자, 물, 음료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구매했다. 라파스는 동네 슈퍼처럼 가게 혹은 길거리에 작은 상점들이 많았는데,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는 마트의 형상을 한 곳은 처음이라서 라파스에서의 첫 마트 투어라고 의미부여하며 즐거운 쇼핑 시간을 보냈다.(그곳 사람들의 삶이 엿보여서 여행지마다 마트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장 봐온 물건을들 숙소에 떨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시내에 가보기로 했다. 시내라고 한다면 샌프란시스코 성당이 있는 곳이 가장 번화한 곳으로, 그 윗쪽으로는 투어사도 많고 마녀시장이 있어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숙소 앞에서 San francisco 라고 적힌 콜렉티보를 잡아타서 이동했는데, 분명 목적지에 가는 지 물어보고 탑승했는데도 중간에 갑자기 다른 루트로 가길래 재빨리 내렸다. 다행히 아주 멀지 않은 곳에서 내려서 도보로 번화한 중심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콜렉티보는 역이나 정류장 개념이 잘 없고 알아서 잡아 타고, 알아서 얘기하고 내리는 시스템이다보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마녀시장 올라가는 길목에서 한 컷! 제법 기운차린 정상인의 모습이어서 기록차 찍었던 것 같다.


라파스 하면 마녀시장! 알록달록한 물건들과 공중에 매달려있는 우산이 인상적이었다.


투어사가 몰려있는 거리에서 두 세 곳 정도 방문하여 내일 하룻동안 할만한 투어가 어떤 게 있을지 알아보았고, 달의 계곡이 유명한 곳이었다보니 이걸 포함해서 갈 수 있는 하루짜리 투어를 비교해 보았다. 투어사에 가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달의 계곡 외에도 라파스에서 우유니 투어도 갈 수 있고 정글 투어나 바이크 투어 등 장기 투어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탐이 나는 투어가 여럿 있었지만 예기치 못한 컨디션 이슈로 하루 이상을 통째로 날려버렸다보니 할 수 있는 게 달의 계곡 + 차깔따야 산 투어 뿐이었다. 이 산이 어떤 산인지 잘 몰랐고 당시에는 발음도 어려워서 겨우 산이라는 것 정도만 알아들었는데, 이 때는 그곳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왜 무시무시한 곳인지는 다음편에서 자세히..!)


여하튼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예약할 투어 상품을 마음 속에 두고 우선 밥부터 먹으러 왔다. 현장에서 바로 예약하기 보다는 시간을 갖고 그 투어를 꼭 해야하는지, 더 나은 옵션이 있는지 여유를 갖고 선택하고 싶어서 늦은 점심식사 겸 저녁을 먼저 청했다. 남미사랑 카톡방에서 추천받은 Febrero Cafe에 왔는데 말이 카페지 한식을 파는 한식당이었다.


덮밥, 삼겹살, 라면, 김밥, 샌드위치 등 전형적인 한국식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나의 코를 강렬하게 타격해버린 라면과 곁들임용으로 김밥을 시켰다. 그곳에서 맡은 조리중인 라면이 냄새는 가히 천상의 맛을 연상케 했기에 안 시킬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두 메뉴가 나왔는데 정말 음식으로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먹는 순간 머리가 짜릿하게 울리면서 갑가지 온 몸의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다. 라면을 특별히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영혼까지 충전되는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과장 같아 보이지만 그때는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Febrero cafe 의 라면과 김밥. 특히 라면이 진짜 미쳤다... 인생라면 등극했던 이곳의 라면 매우 추천합니다.


그렇게 행복한 식사 시간을 갖고, 아까 점 찍어둔 Diana Tour 투어사에 가서 생각해뒀던 달의 계곡 + 차깔따야산 투어를 예약했다. 이곳이 다른 투어사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티켓이 포함되어 있어서 여러모로 장점이 많아보여서 선택했다. 여행 중 투어는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최소 두 곳 이상은 확인해보고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언제 어디서 더 좋은 옵션을 만나게 될 지 모르니 말이다. (이 또한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달의 계곡은 사실 콜렉티보를 이용하면 훨씬 저렴하게 갈 수 있다. 해설이 굳이 필요 없다면 이 방법도 고려하면 좋을듯 하다)


생각보다 별 거 없던 샌프란시스코 성당(안에는 안 들어가봐서 모름). 혼잡한 도로를 앞에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길목이었다.


그렇게 오늘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보니 어느덧 까만 밤이 되었다. 대단히 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여행 중의 시간은 유독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정신 차리고 보니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때부터 약간의 고민이 시작됐다. 저녁 케이블카가 또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이걸 나가야할 지 말아야할 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컨디션으로 보자면 나가지 않고 쉬는 게 맞았지만,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밤이나 다름 없어서 밤 케이블카를 타려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니고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케이블카 공화국(?)인 라파스에 왔으니 결국 밤 케이블카도 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케이블카 말고도 유명한 공원 전망대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포기하더라도 케이블카를 사수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번의 난관에 봉착했다. 분명 숙소 직원은 밤 10시인가 11시까지 운영하니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을거라 했는데, 케이블카 역에서 한 바퀴를 쭉 도는 노선 티켓을 사고 나서 운영시간을 물으니 저녁 9시까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티켓을 구매한 시간은 저녁 8:45분이었고 ‘왜 방금 티켓을 산 사람에게 그런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냐, 환불하고 싶다’ 라고 말하니 설명 한 마디 없이 그저 환불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이미 환불은 안된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타고 내려오자는 생각이었다. 일단 덮어두고 첫 케이블카를 탔는데 운 좋게도 옆자리 앉은 학생이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저녁 9시가 끝은 아니고 10시에 종료되긴 하는데, 보통 한 바퀴를 쭉 도는데 여유롭게 한시간 반은 잡아야하다보니 이대로 루트를 도는 건 너무 위험하다며 돌아가기를 권유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낯선 땅에서 목숨을 담보로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하는 수 없이 타고 왔던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이번엔 티켓이 찍히지 않아서 입장이 되지 않아 직원분께 여쭤보니, 내가 산 티켓은 한 방향으로 쭉 도는 거라 다시 되돌아가려면 티켓을 새로 구매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 티켓 값은 최대치로 냈는데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야경 감상도 못하는 상황이 되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타고 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에 떨면서도 그 와중에 열심히 야경 사진도 찍고 감상했더랬다.


조언을 줬던 학생 ‘미구엘'이라는 친구가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노선 3개 정도만 타고 도심 한 가운데 내려서 콜렉티보나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루트로 최종 계획을 세웠다. 말해준대로만 된다면 10시 이내에 안전하게 계획된 노선 일부만 타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또한 복불복이긴 했지만 미구엘이라는 친구를 믿어보고 싶었다.


미구엘 덕분에 사방의 여러 각도에서 본 다채로운 라파스 야경을 눈에 담아올 수 있었다. 고마워 미구엘!


K-pop 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김치를 꼭 먹어보고 싶다던 미구엘. 그는 믿을 곳 하나 없는 라파스 시내에서 위기에 봉착한 나를 극적으로 구해준 은인이었다. 덕분에 불안해 하면서도 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라파스의 아름다운 야경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고, 숙소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 같다. 안 될 것 같고 위험한 순간에서도 어떻게든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살게 만드는 경험치와 내공으로 쌓인다는 것. 혼자서라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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