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듯 말듯 희망고문하다 결국 먹구름만 잔뜩 보고왔지만 그래도 좋았던!
*영상으로 미리보기!
https://youtu.be/CmgYp1kK-3Q?si=pbq8y3p45KWnvD8J
우유니에서의 2일차 아침이 밝았다. 느긋하게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의 일정 또한 매우 심플했다. 어제의 얘기치 못하게 대성공한 데이투어의 기운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선셋 + 스타라이트 투어를 예약했다. 늦은 오후부터 해지는 것(일몰)을 감상하고 이어서 밤까지 별빛을 감상하는 코스였다. 오후 4시 30분 부터 밤 10시까지 진행하는 투어로, 150볼리비아노(한화 약 2.9만원)여서 투어 치고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했다.
투어 전까지 시간이 꽤 있어서 여유롭게 해야할 일들을 했다. 우선은 느긋하게 숙소에서 조식을 먹으며 같은 숙소에 묵는 외국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 프랑스 커플은 9개월 동안 여행할 예정이고 지금이 3개월째라고 했다. 우유니에 오기 전 아타카마 사막투어를 했는데 비가 심각하게 쏟아져서, 베테랑 가이드 조차도 길을 잃는 바람에 먹구름만 잔뜩 보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여행은 날씨와 운이 참 중요하구나 싶었고, 새삼 어제의 기적적으로 맑아진 날씨에 다시 한번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쉬엄쉬엄 느긋하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와서 제일 먼저 환전을 했다. Banco Fie 라는 은행 근처에 cambio(환전소)가 2-3개 정도 위치해 있었는데, 가장 먼저 보였던 곳에서 환전을 했더랬다. 한참을 찾다가 겨우 발견해서 환전소가 잘 없나보다 싶어서 바로 환전을 했는데 그 뒤로 줄지어 여러 환전소가 있었다. 혹시 우유니 시내에서 환전하실 분들이 있다면, 근방 10미터 이내에 여러 환전소가 있으니 미리 가격을 슬쩍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 (바로 환전하느라 비교해보진 못했으나, 여러 가게가 붙어있으니 환율 적용은 크게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다)
다음으로는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시장을 구경했다. 완전 동네 시장이었는데 규모는 아담해도 과일부터 고기, 꽃, 야채 등 있어야할 것들은 다 있었다. 대체적으로 식료품 시장이었는데 입구쪽에 위치한 꽃 가게의 꽃들은 신선하니 너무 예뻤고, 여러 야채들을 묶음으로 팔거나 샐러드/반찬 등 간단한 요리도 팔고 있었다. 우유니에 오래 머물렀다면 이런 시장에서 재료 간단히 사다가 요리해먹어도 좋겠다 싶었지만 2박 정도로 짧게 묵는 일정이라 구경만 하고 나왔다.
이어서 오늘의 가장 중요한 미션인 내일 코차밤바로 이동할 버스 티켓을 샀다. 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버스 티켓 회사가 2-3개 정도 있었는데 같은 버스편이더라도 회사마다 가격이 20~30볼 정도 차이가 나서, 가장 저렴하고 괜찮은 곳에서 버스표를 구매했다. 저녁 9시에 출발하는 cama(버스 종류 중 가장 좋은 좌석)가 100볼(한화 약 2만원)이었다. 야간 버스라서 이번에도 역시 자면서 먼 거리를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이정도면 역시나 저렴한 편이라는 생각이었다.(볼리비다는 남미 국가 중에서도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할 일을 모두 마치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이른 저녁을 세시반 쯤 먹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챙겨온 미역국, 볶음 김치, 햇반, 볶은 고추장, 김으로 든든하게 밥을 먹었고 네시반쯤 투어사에 도착했다. 역시나 하루종일 먹구름과 비소식이 있었으나,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보니 운명은 하늘에 맡겨야겠다 생각하고 마음을 비웠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조금 안 되어서 소금 사막에 도착했을 때의 날씨는 나쁘지 않았는데, 한쪽은 구름 없이 맑았고 다른 한 쪽을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먹구름이 점점 몰려오는 형태라, 구름 없는 쪽으로 피해도 결국엔 구름이 따라잡아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하늘과 별을 거의 못볼 것 같다고 했다. 어느정도는 예상한 시나리오였으나 시간 임박하여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니 알았더라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맑은 부분을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름이 없는 곳은 정말 어제와 다름 없이 환상적인 풍경 그 자체였다.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이라 그런지 고요한듯하면서도 강렬한 빛이 살아있는 그 공기와 온도가 좋았다. 먹구름이 밀려와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것 조차도 영화 속 잘 연출된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구름 & 하늘 감상 타임)
해가 지평선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비가 계속 와서 잔잔한 물에 잠긴 우유니 소금사막은 온통 데칼코마니 그 자체였고, 바람이 불어 물에 파장을 만들지 않으면 하늘과 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할 수 있는 건 멍때리면서 저 멀리서부터 크게 몰려오는 먹구름을 감상하고 온전히 느끼는 것 뿐이었다. 거대한 대자연 앞에 인간은 한낱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라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먹구름도 말리지 못한 나의 사진 찍기 열정~~~)
그리고 또 밀려오는 먹구름..
그렇게 약 1시간을 멍때리고 사진찍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나니, 진짜로 온 세상이 먹구름에 뒤덮였다. 온통 회색으로 뒤덮인 곳에서 비바람이 옅게 몰아치는 광경은 처음이라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고립된 지역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마치 잘 짜여진 인형의 왕국이 있는데 그 중 한 부분에 개미처럼 작은 존재인 나를 덩그러니 떨궈놓은 기분이랄까. 묘한 기분이었다.
사방이 전부 먹구름과 비바람으로 뒤덮이고나니,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조차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우유니에 하룻동안 고립되었다가 발견된 프랑스 여행자 뉴스가 떠올랐다. 진짜 혼자오면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름다움이 공포로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순간 아찔함을 잠시 상상했다가 다시 현실로 왔다. 이제는 정말 희뿌연 연기 안에 완전하게 갇히게 되었다. 얇은 빗줄기가 끊임 없이 내렸고 바람은 여느때처럼 휘휘 불어댔다. 가끔씩 구름이 얇아지는 틈 사이로 약간의 빛이 보일 때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찍어야지 하고 폰을 꺼내는 사이 금방 사라져버리는 그 빛이 아쉬웠지만 별 수 없었다.
언제 또 이렇게 우유니 비구름에 완벽하게 갇혀보겠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완전히 캄캄한 밤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느라 목이 빠질 정도로 아파야하는데 올려다볼 별빛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다. 어차피 별 보기는 글렀으니 어둠속에서 불빛으로 글씨라도 쓰자 싶어서 야무지게 불빛과 카메라 노출을 활용하여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진을 다 찍었더랬다.
그래도 언젠가 빼꼼히 틈사이로 별이든 달이든 잠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주어진 시간동안 끝까지 있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같이 갔던 동행 중 한분이 배가 아프셔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다. 아쉽지만 환자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꾀병이었던 것 같기도한데 그렇다 한들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최선을 다해 즐겼던 하루를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고자 투어에서 만난 동생과 함께 로컬 고깃집에서 맥주 한잔 적셨다.
닭고기, 초리초(소세지), 라마 고기 이렇게 3가지를 시켜서 나눠먹었는데 모두 성공적이었다. 라마 고기는 좀 많이 질겨서 아쉬웠지만 질기지 않은 부위는 맛이 좋았다. 우유니 투어사에서 추천을 받은 곳이라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는데, 분명 현지 맛집이라 가격도 저렴하다고 했으나 우리가 지불한 금액은 결코 저렴하지는 않았다. 부풀려서 받는 것 같았는데 기분 좋게 먹고 나왔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자 싶어서 그냥 요구하는 액수만큼 지불하고 나왔다.(평소같으면 따졌을테지만, 이 날 만큼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어제처럼의 극적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투어로 만난 동행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비오는 우유니를 원 없이 만끽했다.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는 곳은 우유니가 아니더라도 또 있으니까. 언젠가 다음 번에는 몽골이든 아이슬란드든, 두 눈으로 하늘을 꽉 채운 별을 꼭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피곤한 몸을 잠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