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1km의 철길을 퍼붓는 빗길 속에서 걸어본 적 있나요?
*영상으로 미리보기
https://youtu.be/ilRwBFVfxEg?si=CEcVsd1dPzvVq5eW
[마추픽추 1박 2일 중 첫날 일정 미리보기]
6:20 마추픽추행 봉고차 출발
8:00 첫번째 휴식 - 귀여운 아기 강아지와 힐링타임
10:50 두번째 휴식 - 요거트 먹으며 정신 깨우기
14:10 버스 이동 종료. 점심 식사
14:50 비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추픽추를 향해 무작정 숲/산길 걷기 시작
17:50 아구아스 깔리안데스 입구 도착
18:00 어디로 가야할지 정보가 없어 헤매이다 극적으로 가이드 상봉 및 숙소 도착
19:10 휴식 및 재정비 후 저녁식사
20:00 식사 후 동네 구경
21:00 숙소 귀가 및 재정비
21:30 취침
드디어 마추픽추를 향해 가는 날이 밝았다. 1박 2일 코스라서 가는 날은 종일 이동하고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마추픽추에 올라가는 일정이었다. 기차로 오간다면 하루만에도 가능한 일정이었지만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용이 두 배 이상 들기도 하고, 일정이 급할 건 없어서 숙박을 포함한 코스를 선택했었다. 역시나 투어답게 이른 아침부터 출발하는 스케줄이었지만 남미에서는 특히나 더 흔한 일이라 크게 힘들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짐도 기존 묵었던 숙소에 맡길 수 있었고 하룻 동안 딱 필요한 물건만 가져가면 되다보니 부담이 없었는데 다만 한 가지 걱정됐던 건 지독한 멀미였다.
약속된 버스 탑승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봉고차 한 대로 이동하는 거였고, 생각보다 작은 차로 이동하는 거라 멀미로 인한 걱정이 앞을 가렸었다. 하지만 역시 몸이 너무 피곤해서인지 처음 출발했을 땐 바로 기절했기 때문에 다행히 시작부터는 무리가 없었다. 오전 8시쯤 첫번째 휴식 지점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는 간단한 간식거리 구매와 화장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직은 배가 고프지 않아서 화장실만 다녀왔고 그곳엔 태어난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강아지가 있어서 쉬는 동안 아기 강아지와 힐링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약 20분 정도 휴식 후 2시간 반 정도를 또 열심히 꼬불꼬불한 산길을 이동했고, 두번재 휴식이 10:50 쯤 찾아왔다. 햄버거나 감자튀김 등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곳이었지만 역시나 크게 밥 생각이 없었던지라 식사는 패스하고 챙겨갔던 요거트 등 간식만 조금 먹었다. 잠깐의 휴식 후 또 다시 이동이 시작됐는데 이번엔 3시간을 내리 달렸다. 이때는 빈속이라 그런지 멀미가 있었는데 다행히도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차 안에서 있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남미 여행을 하며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오후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버스로 이동하는 일정은 모두 종료가 되었고, 그곳에 위치한 유일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닭 육수 맛이 나는 맑은 스프와 어설픈 돈까스가 생각나는 돼지고기 튀김, 감자튀김 조금과 샐러드 조금이었다. 첫 끼니였기 때문에 맛있게 잘 먹었고 약간의 휴식 후 본격적으로 이동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행객 두 분은, 앞으로 쉽지 않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각오를 해야할 것이라고 언지를 주었다. (날이 매우 좋지 않아서 마추픽추에서도 구름 낀 산만 보다가 내려왔으며, 돌아오는 길도 빗길에 너무 험난해서 여러모로 너무 힘들었고 허망하다는 말을 전했었다)
가이드는 지금부터는 알아서 잘 찾아서 가면 된다고 했다. 뭘 어떻게 잘 찾아가라는건지 영문을 모르겠었는데, 길은 하나이니 앞에 보이는 길따라 쭉쭉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거기서부터는 가이드도 없이 알아서 가야했고, 아구아스 깔리안떼스 마을에 도착하면 그곳의 광장에 담당자가 나를 픽업 올거라고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가 잔뜩 낀 날씨였는데 이때부터는 정말 막막했던 것 같다. 얼마나 가야하는지, 정확히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몇 시간씩 걷다 보면 마을이 나올 거고 마을에 도착하면 담당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전부였다. 정확히 얼마나, 어디로 가야하고 누굴 만나야 하는지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계속 똑같았다. 의미 없는 대화를 반복하다보니 더 이상 답이 없겠다 싶었고, 그래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버스를 같이 탄 일행들과 함께 출발했다.
처음엔 숲길 모험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라 묘하게 기대가 됐는데, 2-3km 정도 걷고 나서부터는 이게 진짜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인터넷도 터지지 않아 얼마나 왔고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가장 큰 길, 맞을거라고 추측하는 길로 하염 없이 걸을 뿐이었다.
그래도 동행하는 다른 여행객이 있었기에 조금은 힘을 낼 수 있었다. 쿠스코에서부터 룸메이트로 만났던 오스트리아 친구 ‘제니', 봉고차에서 만난 이태리 친구, 오스트리아 커플 친구 이렇게 5명이 함께 힘내서 걸었다. 걸으면서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남미 여행은 어떻게 했는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마다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좋았던 것 같다.
자갈 밭 위로 놓인 철길을 따라 하염없이,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알지 못한채 그저 조금만 더 걷다보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처음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묘한 설렘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는 비에 젖어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걷는 이 상황 자체에 화도 나고 어이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래도 반 이상은 왔으려나 싶었을 때에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주변 풍경도 더 감상하고 이 순간을 즐겨보자! 라는 마음으로 조금은 내려 놓기도 했다. 언제 또 내가 이런 경험을 해볼까, 알았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중간에 세찬 물길 위로 철길만 간신히 놓아진 길 혹은 다리 위를 지나갈 때는 정말 이러다 발이 미끄러져서 물에 휩쓸려 가는 건 아닌지 끔찍한 상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빗길을 헤쳐가며 쉬지 않고 걸었고, 세 시간이 꼬박 지난 뒤에야 드디어 아구아스 깔리안떼스 라고 하는 마추픽추의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난관이 시작됐다. 정확히 어디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였다. 사실 출발할 때부터 우려됐던 부분인데 가이드는 가면 다 만나게 될거라면서 일단 가라는 말만했으니 해답을 얻을 수 없었던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남미의 투어 시스템은 이렇게나 무책임하고 아무런 체계가 없는 점 꼭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렇게 낯선 남미 땅에서 마추픽추를 만나기 전 마치 방탈출 하는 것처럼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일단 광장에 가면 된다고 했으니 오프라인 지도에서 그마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일단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동행했던 이태리 친구가 나와 같은 코스를 예약해서 여기서 홀로 미아가 되지는 않겠지 생각했다.(이 친구 폰은 인터넷 연결이 되어서 다행히 지도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홀로 잘 찾아갈 수 있었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상황이었다)
일단 무작정 갔던 광장에서 두리번 거리며 누군가 나를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 있으니, 어느 현지인 분이 내 이름을 매우 어색하게 부르면서 본인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그렇게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고 그때부터는 진짜 나 살았구나..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
조금 걸어가니 숙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방 컨디션은 매우 습하고 청결 상태가 애매하긴 했으나 별 수 없었다. 잠시 쉬다가 나와서 지정해준 식당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오는 길에 동네를 가볍게 둘러보고는 작은 슈퍼에서 주전부리 몇 개 구매하여 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누웠을 때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궂은 날씨에 아침 일찍부터 에너지를 많이 써서 지쳐있었기에, 부디 다음 날은 조금이라도 날이 개기를 바라며 평소보다 이르게 잠을 청하며 마무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