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이 글은 2020. 5. 27. 작성된 글입니다.
얼마 전 <닥터 앤 닥터 육아일기>라는 웹툰을 보다가 미혼부의 출생신고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미혼부가 자신의 친생자에 대하여 출생신고를 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관련 규정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요지는 아래와 같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에 따르면,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엄마 이름, 주민번호, 등록기준지를 모두 알지 못해야 하고, 왜 알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유서를 따로 작성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유전자 확인 검사서가 있다 하더라도, 출산 당시 아이의 엄마가 유부녀가 아님을 공증하는 서면 또는 2명 이상의 인우인 보증서를 제출하여야 한다는 것.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웹툰을 보다가, 정말로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지 궁금해져서 관련 규정을 찾아보았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신고의무자)
①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②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신고를 하여야 할 사람이 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 각 호의 순위에 따라 신고를 하여야 한다.
1. 동거하는 친족 2. 분만에 관여한 의사ㆍ조산사 또는 그 밖의 사람
④ 신고의무자가 제44조제1항에 따른 기간 내에 신고를 하지 아니하여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의 신고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해서 아이의 엄마, 아이와 동거하는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사, 조산사는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데, 아이의 아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관계등록법 제4장 제2절 출생신고 부분에는 미혼부에 관해서 일절 언급이 없다. (미혼부가 "아이와 동거하는 친족"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겠다. 대법원 예규인 출생신고에 관한 사무처리지침 제1조는 동거하는 친족에 대하여 "출생 당시에 출생자와 동거하는 친족"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원칙적으로 혼인 외 출생자의 아버지의 경우 출생자와 친족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인지가 있어야 친족 관계가 인정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는 바와 같다.)
미혼부는 가족관계등록법 제4장 제3절 인지 부분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제57조(친생자출생의 신고에 의한 인지) ① 부가 혼인 외의 자녀에 대하여 친생자출생의 신고를 한 때에는 그 신고는 인지의 효력이 있다. <개정 2015. 5. 18.>
② 모의 성명ㆍ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할 수 있다. <신설 2015. 5. 18.>
③ 가정법원은 제2항에 따른 확인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 국가경찰관서 및 행정기관이나 그 밖의 단체 또는 개인에게 필요한 사항을 보고하게 하거나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신설 2015. 5. 18.>
위 규정에 따르면, 미혼부가 아이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아이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만약 미혼부가 아이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중 하나라도 아는 경우에는? 대법원 예규까지 찾아보았지만 그 경우에 대한 규정은 찾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아이 엄마를 찾아 아이 엄마에게 출생신고를 하라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든 미혼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아이의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참고로, 미혼부가 아이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방법원에 따라 이를 '전부 알 수 없는 경우'로 엄격히 적용하기도 하고, '일부를 알 수 없는 경우'로 비교적 유연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법률 규정을 문언적으로 해석할 때 이는 '전부 알 수 없는 경우'로 해석된다고 보이고, 일관된 기준 없이 법원마다 기준이 달라지는 것도 문제이다.)
미혼부가 아이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모르는 경우에 해당하여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에 대하여, 대법원 예규인 출생신고에 관한 사무처리지침 제8조는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8조 (부의 혼인외의 자에 대한 출생신고시 주의사항)
① 부가 혼인외 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때에는 모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게 하여야 한다. 다만, 시(구)ㆍ읍ㆍ면ㆍ동ㆍ재외공관의 장이 전산정보처리조직에 의하여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혼인외 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가 있는 경우에 그 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어 있는지가 분명하지 아니하거나 등록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모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증명하는 공증서면 또는 2명 이상의 인우인의 보증서를 제출케 하여야 한다.
위 규정 제8조 제1항은, 미혼부가 아이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몰라서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하는데 모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제2항은, 아이 엄마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어 있는지 분명하지 아니하거나 등록되어 있지 않은 경우 아이 엄마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증명하는 서면을 제출하라고 한다. (참고로 인우인이란 친구나 친척, 이웃 등 본인과 가가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서, 인우인 확인서란 당사자 본인에 관한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우인이 작성하는 문서를 의미한다.)
아이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모르는데 아이 엄마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이 엄마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또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쯤되면 아이에 대해 출생신고를 한 미혼부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미혼부의 출생신고에 대하여 이렇게 까다롭게 규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되기 이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인간의 가족관계는 부양, 상속 등 개인의 법률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관계의 출발점이 되는 친생자 관계를 정확하게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되기 이전, 친생자 관계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여자의 출산이었다. 남자의 경우 아이를 출산한 여자와의 혼인관계를 통하여 아이와 친생자 관계가 '추정'되고, 혼인관계가 없을 경우 아이에 대한 남자의 '인지'가 있어야 친생자 관계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의 호주제가 오랜 시간 공고하게 유지되었던 것은 또 다른 코메디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예전 우리 민법 제811조는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고 하여 여자에 대한 재혼금지기간을 두고 있기도 하였다. 혼인관계를 종료한 후 바로 재혼을 하게 될 경우, 재혼 이후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추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2005년 민법 개정으로 삭제되었다.)
즉, 친생자 관계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여자의 출산이었고, 대부분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출산한 여자와의 혼인관계를 통하여 친생자 관계를 형성할 뿐이었기 때문에, 혼인관계가 없는 아버지가 아이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때 아버지와 아이 사이에 친생자 관계가 인정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복잡한 절차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유전자 검사가 매우 정확하고 보편화된 2020년이라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 혈연 관계를 따지는 것이 한 아이의 출생신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이제는 유전자 검사의 발전으로 위와 같이 복잡한 절차들을 둘 당위성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를 함에 있어 아이의 아버지는 설 자리가 없다.
출생신고는 부모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있어 모든 권리의 출발점이 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 병원에 가거나 학교에 가는 것,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들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연합의 '시민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및 아동권리협약은 인간의 기본권리로 출생신고를 명시해두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혼부의 출생신고 인용률은 2019년 기준 71.6%이다. 여전히 30%에 달하는 미혼부의 아이들은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인 것이다.
이후의 이야기
2020. 6. 8. 대법원은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 대하여 국가가 출생신고를 받아주지않거나 그 절차가 복잡하여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려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발생한다면 이는 그 아동으로부터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0. 6. 8.자 2020스575 결정).
그러면서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에서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① 문언 그대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모의 인적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를 알 수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② 모의 소재불명, 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③ 모가 외국인으로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 등을 포함한다고 판단하였다.
위 판결로 인하여 미혼부가 출생신고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대폭 확대될 것이다.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인정한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입법자들에 의해 가족관계등록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미혼부는 여전히 출생신고의무자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미혼모의 출생신고보다 훨씬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부분은 여전히 입법자들의 과제로 남아있다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허민숙, 미혼부의 자녀출생신고 관련 개선과제, 국회입법조사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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