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노래, 오래된 친구
내게 드라마와 노래는 언제나 친구였다.
기쁠 때는 함께 웃게 했고, 슬플 때는 나 대신 울어주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화면과 선율이 대신 끌어내 주었기에, 나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된 지금,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글은 또 다른 친구처럼 내 마음을 비추고,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풀어낼 수 있는 창이 되어주었다.
비난의 시선과 멈추지 않는 발걸음
인간관계는 늘 잔혹했다.
나는 자주 "또라이 중 또라이"라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걸 시작하려 할 때마다 비난과 조롱이 따라왔고, 수많은 시선이 나를 막아섰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바로 나 이기 때문이다.
안 할 이유가 없었고, 세상에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쳐야만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증명하는 삶, 도장깨기 같은 하루
돌아보면 내 삶은 늘 증명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하루를 버텼다.
그래서 매일은 도장깨기 같았다.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또 다른 문턱이 기다렸고, 나는 그것을 넘어야 했다.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한 걸음이 내겐 존재를 확인하는 싸움이었다.
도장깨기를 끝냈을 때 찾아오는 짧은 해방감, “오늘도 해냈다”는 안도는 다음 날을 살아낼 힘이 되었다.
내 삶은 거대한 승리가 아니라, 작은 해방감을 쌓아가는 여정이었다.
나를 지켜준 진짜 친구들
다행히도, 그 과정에서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만나면 늘 싸우기만 했던 친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없으면 안 될 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
그 아이는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가장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또 고등학교 시절 함께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이 있다.
세상이 나를 비난할 때, 그 친구들은 내 글을 읽고 응원의 말을 건네주었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내 글을, 그들은 끝까지 읽어주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
그 따뜻한 응원은 내가 글을 이어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문장과 말들이 건네준 위로
어느 날, 펜싱 선수 도경동님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내가 꿈을 이루면 난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그 문장은 이유 없이 하루를 견디던 나에게 새로운 이유가 되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불빛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깨달음은 깊은 위로이자 다시 나아갈 힘이 되었다.
사촌오빠의 말도 잊히지 않는다.
“B와 D 사이에는 C가 있어. B는 탄생, D는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C는 Choice, 즉 선택이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결국 네 삶을 만든다.”
탄생과 죽음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그 사이의 선택은 내 몫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선택한다.
포기하지 않는 선택, 하루를 버티는 선택, 나 자신을 증명하는 선택을.
작은 해방감, 그리고 함께 걷는 길
스무 살의 나는 거창한 이유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대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내는 도장깨기 같은 삶 속에서 나만의 발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언젠가 이 발자국들이 모여 또 다른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세상은 내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해야만 비켜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증명한다.
드라마와 노래가 내게 그랬듯, 언젠가 내가 남긴 문장이 누군가의 외로운 밤을 지켜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내일도, 나는 또 하나의 도장을 깨러 나아간다. 작은 두려움이 있더라도, 문턱을 넘어선 뒤 찾아올 해방감을 믿으며. 그 길 위에서, 나를 응원해 준 친구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음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