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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Jun 18. 2022

주역 [主役]

사람이 변한다는 말을 가지고들 그렇다 그렇지 않다 왈가왈부하곤 한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애초에 구제하지 못할 여생의 탈바꿈이라든지, 모진 인격이 전생을 버리고 성인으로 거듭난다는 전기처럼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변화라면 나는 사람이 변한다는 말에 긍정하겠다. 일말의 가능성을 두고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변화시킬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나처럼 긍정할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이적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 한 저 말은 진실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고 단정짓는 것을 꼭 부정적이라고 하진 않겠다. 그 누군가는 독불장군 같은 사람을 경험했고 그에게 지쳤고 신물이 난 나머지 포기해버렸을 수도 있다.


사람이 변하기 위해선 조금의 수용성과 조금의 주체성이 필요하다. 일단 자신의 상태와 평판을 수긍하고 들을 필요가 있다. 사람이라는 기계는 전원을 켤 때 혼자서는 시동을 걸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타인의 이야기를 수용한다고 해도 그걸로 끝은 아니다. 말을 듣고 행했으나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동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주체성이다. 시작은 여럿이어도 끝은 결국 혼자 걸어야 한다. 홀로서기라는 말은 참 경이로운 말이다. 나에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더 친숙할 따름이다.


수용성이 부족한 사람은 철문과 같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시동을 걸려면 혼자는 안 된다. 아무리 아낌없이 노력을 내어주는 사람이 곁에 수발해도 정작 바뀌어야 할 본인이 거부한다면 시작도 못해보고 회의를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성이 부족한 사람은 어떨까? 그에게 문을 여는 것은 수월하다. 그렇게 첫 단추를 꿰면 모든 게 순조로울 것만 같다. 그러나 결국 삼일을 못 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무기력을 맛본다. 주체성은 곧 수용성의 그릇이 되는 것이다. 흘려듣고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지속적인 실천이란 참으로 뛰어난 재능이자 값진 기량이다.


위 두 사례는 어디까지나 붙잡아주고 조언해주고 성장과 변화에 일조하는 조력자가 있을 때를 전제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보석 같은 인물이다. 그런 성자가 더 이상 인간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져버린다는 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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