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원천이자 스승인 아이들, 그 중에 마음에 남은 아이들의 얼굴을 되살려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자 한다. 이 글은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본 대부분의 글 속에서 아이들은 교육의 주체이지만 수동적이거나 소외되어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표현할 기회가 드물거나 어린애 취급하며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비록 아이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한때는 아이었던 어른들의 눈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1편은 어른인 교사의 눈으로 본 아이에 관한 이야기이고, 2편은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의 눈으로 본 이야기다.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고심한 끝에 이러한 형식을 빌었다.
1
리은이는 고양이가 그려진 노란 장화를 좋아한다. 유치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장화신은 고양이’를 듣고 좋아하게 되었단다. 한 번은 한여름 푹푹 찌는 날에도 장화를 신고 와서 물어봤다.
“리은아, 장화 신고 다니면 덥고 불편하지 않아?”
“아니요.”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어 장화를 신으면 좋은 점에 대해 열띠게 설명했다.
아침에 학교 올 때 장화를 신으면 이슬이 묻어도 상관없다. 시골길은 시도 때도 없이 개구리나 뱀이 나타나는데 장화를 신으면 덜 위험하다. 놀이터에서 놀 때 모래가 들어갈 일이 없고, 학교 채소밭에도 맘대로 들어갈 수 있다.
들어보니 어른인 내가 보기 불편할 뿐 리은이에게는 장점이 아주 많았다. 리은이를 둘러싼 자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그럴 것이라 판단한 내가 틀렸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정작 그 잔소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어른인 자신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장화신은 고양이 읽어봤어요?”
“응. 하지만 결말이 마음에 안 들어.”
재미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그랬을까? 리은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리은이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채 초등학교에 들어왔다. 처음 리은이가 한글 미해득이라는 걸 알고 좀 의아했다. 리은이처럼 가나다라도 모르고 들어온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스스로 한글을 알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너댓 살만 돼도 학습지를 하게하고 한글을 가르치는 유치원을 보낸다. 심지어는 한글을 채 익히기도 전에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글을 빨리 많이 알수록 대학입시에 유리하고 나중에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해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라는 교육부 공문이 왔다. 조기 교육의 과열로 인한 부작용 해소와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당연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였다. 농촌이나 다문화가정처럼 학교 의존도가 높은 지역을 빼고는 그 말을 믿고 기다릴 학부모가 몇이나 될까?
리은이는 생활 능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오리와 토끼도 키울 줄 알고 어떻게 해야 방울토마토가 잘 자라는지도 알았다. 친구가 힘들 때 위로를 건넬 줄도 알고 엄마 대신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믿음직스런 누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은이는 다른 아이처럼 한글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업 시간에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언제부터 1학년이 글을 못 읽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었을까?
예전에 우리들은 한글을 모르고 학교에 입학했다. 아무도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지 않았고 주눅이 들지도 않았다. 당연히 학교에 들어가면 배우게 되고 실제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줄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지금과는 다르게 우리에게는 속도가 좀 느려도 기다려 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나는 리은이가 한글을 배우는데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사실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떻게 한글을 가르쳐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 없었다. 큰아이는 어느 날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더니 궁금해서 글을 깨우쳤고 둘째 아이는 누나가 책 읽을 때 어깨너머로 배웠다. 학교에서도 딱히 기초학력에 대한 연수를 받거나 업무를 담당한 적이 없었다.
한글은 한자처럼 상형문자가 아니라 ‘음가’로 가르쳐야 한다고들 한다. 리은이한테 적용해 모음인‘아야어여…….’부터 익힌 다음 ‘ㄱ, ㄴ, ㄷ’을 조합해 소리를 내게 했다. 하지만 김, 님, 딤을 수백 번 읽어도 ‘김’을 따로 떼어내 읽으라고 하면 어려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리은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가르쳤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야어여나 그림 카드, 모음 자음을 손으로 조립하는 방법 말고 리은이가 좋아하는 장화신은 고양이도 좋고 자기가 키우는 토끼, 오리, 오이 같은 것들 말이다.
학기 초가 되면 모든 아이들이 기초학력진단 평가를 실시한다. 그 결과에 따라 보충 지도가 이루어지고 일정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학습 장애 요인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한다. 그 결과 리은이는 시각적인 집중력이 약해서 한글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림카드를 보여주고 손으로 글자를 조립해도 진전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예전 내가 초, 중학교 다닐 때 가정방문이 있었다. 통신수단이나 교통이 불편한 까닭에 선생님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부모가 바라는 점은 없는지 들어보고 지도에 참고하자는 취지였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학부모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점차 사라졌다.
우리 어머니는 선생님이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는 형편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고 마땅히 대접할 게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기대되었다. 집에 오신 선생님은 한눈에 우리 형편을 알아보고 많은 용기와 격려를 해주셨다. 또 다른 선생님은 운동회를 앞두고 체육복을 사주셨다. 나 혼자 교복을 입고 운동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것이다. 선생님이 내게 주신 것처럼 나도 나와 비슷한 아이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꼭 가정방문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에 대해 알아볼 기회는 많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아이들과 운동장을 산책해도 된다. 둘만이 있는 호젓한 자리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고 오늘 아침은 뭘 먹었는지, 오늘은 어디를 갈 것인지, 그러다 보면 저절로 그 집 분위기와 모습이 그려진다.
리은이 부모는 유원지에서 매운탕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계시지만 농사일이 바빠 돌봐줄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 즐길 거리를 찾아다니고 문제에 부딪히면 스스로 해결해 나갔다.
리은이 엄마는 밤늦게 돌아왔다. 그때마다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는 행사로 술을 마셨다.
“아유, 힘들어 죽겠다. 술이라도 안 마시면 어떻게 사냐. 캭!”
리은이가 엄마 흉내를 내는 바람에 한참을 웃었다. 그 상황을 힘들어하지 않고 유머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웃프기도 했다.
종종‘작가와의 만남’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작가가 되려면 어려서부터 책을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하느냐고. 대략 난감한 질문에 어물쩍 넘어갈 때도 있지만 솔직하게 교과서 외에는 읽어보지 못했다고 하기도 한다. 사실은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어서 못 읽었다. 요즘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때는 그랬다. 대신 자연이라는 훌륭한 도서관에서 많이 뛰놀고 보고 겪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경험이 작가 되는데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말을 하자 한 아이가 마음이 놓이는지 활짝 웃었다.
리은이는 그 시기 아니면 놓치게 되는 많은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남보다 조금 글을 늦게 깨우친다고 인생이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니다.
2학기 들어 리은이에게 그림일기를 써보자고 했다. 힘들면 한 줄만 써도 되고 아니면 그림만 그려도 된다고 했다.
오늘은 할머니랑 바테 가서 고구마을 캐다
리은이의 고구마는 그냥 고구마가 아니었다. 한여름 뙤약볕과 서리를 품고 맺은 붉고 튼실한 뿌리였다. 리은이도 수많은 연습과 노력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니 한 줄이라고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운동장에 나문입이 떠러졌다. 떠러질 때 아파겟따
아이들은 어른처럼 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 편의 시가 되고 찡한 울림을 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학년이 올라가고 아는 단어가 많아지고 맞춤법이 정확해질수록 글은 매끄러워지지만 감동은 줄어든다. 서툴지만 자기만의 고유한 표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리은이는 자라서 부모님 매운탕 집을 물려받을 수도 있고 장래 희망인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 리은이가 무던히 애쓴 지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자신만이 갖고 있는 반짝거리는 감성으로 멋진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2
선생님, 저 리은이예요.
오늘은 우리 가족 모두 외식을 하고 왔어요. 삼겹살도 구워 먹고 음료수도 마셨어요. 어디로 갔냐면요, 선생님이랑 같이 간판 보고 글자 공부했던 학교 앞 ‘월곡식당’이에요. 그 옆에‘풍년방앗간’도 있지요.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생각이 나요. 다른 친구들은 자기 이름을 척척 잘 쓰는데 저만 못쓰고 있었잖아요? 그때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이 빨리 나갔을 뿐이야.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으니까 걱정 마.”해서 마음이 놓였어요.
하지만 글자는 금방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혼자 문제를 풀고 있을 때 저는‘아야어여’를 배워야 했어요. 방과 후에도 다른 친구들은 돌봄 교실에 가서 노는데 저만 교실에 남아 공부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민호는 나보다 키도 작고 그림도 못 그려요. 나보다 달리기도 잘 못 하고 넘어지기만 해도 울어요. 그런데 내가 글자를 모른다고 놀려대고 약을 올렸어요. 민호가 그러는데 어른들은 달리기를 잘하는 것보다 공부 잘하는 걸 더 좋아한대요. 우리 집은 안 그러는데.
엄마는 공부보다 몸이 건강하고 씩씩한 게 더 중요하다고 해요. 공부보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혼자서도 잘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해요.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제가 공부하기 싫어서 배 아프다고 엄살을 부린 적 있어요. 자꾸 그러니까 꾀병을 부린 줄 알고 선생님이 말했어요.
“리은아,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지 않아? 다른 애들은 선생님을 차지하고 싶어도 못 해서 부러워하는데…….”
선생님 말씀이 맞지만 아닐 때도 있어요. 만날 같은 글자를 읽을 때나 어제 배운 글자를 까먹었을 때죠. 그래도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지금 좀 어려워도 참아야 해요. 힘들지만 참고 꾸준히 노력하면 좋아져요.
선생님이랑 학교에 딸린 텃밭에 갔을 때가 생각나요. 오이, 고추, 상추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글자를 익혔어요. 채소문구점에서 공부하니까 쉽고 재미도 있었어요.
지금도 받침이 있는 글자는 헷갈려요. 하지만 언젠가는 저도 막힘없이 쓰는 날이 올 거예요. 월곡식당, 풍년방앗간, 밝은동물병원, 통닭생각, 감동명물불볼락탕같이 어려운 글자도 틀리지 않고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다시 편지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