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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꿈 Nov 26. 2022

이곳에 머물며

내가 사랑하는 이 공간


이 공간, 저 공간: 공간에 놓이면

  공간이 가진 힘이 있다. 이 공간에 가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탁 풀려 편안함을 느끼다 저 공간에 가면 자신감이 샘솟고 활력이 넘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축 늘어지고 싶은 곳이 있는 반면, 뭔가 나서서 시작해보고 싶은 곳이 있다. 공간은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어느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사람의 모습이 달라진다. 나도 그렇다. 특정 장소에서 나의 모습이 다르다. 결국은 나인 걸 그 얼마나 다르다고. 분명 장소 따라 나도 다르다. 들어서기만 해도 안심되는 공간이 있는 반면, 기분 좋은 낯섦이 아니라 어딘가 맞지 않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곳이 있다. 나를 끌어당기는 곳과 밀어내 점점 멀어지는 곳. 공간에 대해 사유해보자.


에드워드 호퍼, 『카페테리아의 햇빛』, 1958년


이 그림을 보면

  어떤 그림인가? 도시의 한 카페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보인다. 큰 통창을 통해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따뜻한 분위기는 아니다. 창밖의 모습이 회색빛이라 그런가? 전체적으로 이 공간을 감도는 푸르스름한 빛 때문인가? 한쪽으로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맞은편 높은 건물에 막혀서일까? 반대쪽 테이블들은 그림자가 드리워 창밖처럼 어둡다. 색에도 온도가 있다. 이 그림은 대체로 탁해 어딘가 차갑다. 도회적, 모던함, 서늘함이 떠오른다.


  두 남녀는 무얼 하고 있나? 여자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앞에 놓인 찻잔을 내려다보는 걸까? 자기 손을 보고 있는 걸까? 남자는 몸을 창 쪽으로 돌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다. 어딘가 쓸쓸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다. 원했던 업체와의 미팅은 성사되지 않고 혼자 남아 낙담한 표정일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한 표정일까? 옆 테이블에 떨어져 앉은 두 남녀는 전혀 모르는 사이일 것 같다. 둘 다 도대체 어디를 보는 건지 시선이 명확하지 않다. 애매한 시선과 알 수 없는 표정, 아예 관련 없는 두 사람이 단지 한 공간에 있는 것뿐일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너무나 이질적이다. 둘 다 무슨 일로 이 카페를 찾았을까? 지금이었다면 다들 휴대폰을 만지기 바빴을 텐데 과연 무슨 생각 중일까? 우연히 같은 공간에 속한 저 두 사람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그림을 보며, 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뉴욕이 대도시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도시의 생활을 그렸다고 한다.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풍요로웠던 미국 사회의 이면, 현대인의 절절한 고독과 소외를 표현했다. 경제 호황 고성장 시대, 고립과 공허함이 짙어진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의 그림처럼 사실 우린 모두 외롭고 쓸쓸한 존재일 뿐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진으로 찍은 듯 사실적이다. 정말 있을 법한 실제 모습이라 사진으로 착각할 법하다. 진짜보다 진짜 같은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뉴욕의 거리를 거닐고 또 거닐었겠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그 안에서 고독을 느꼈나 보다. 도시인의 고독이 그의 화폭에 담겼다. 그의 그림에 담긴 공간은 수직적이다. 직선들이 나열되어 차가운 도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외로움, 쓸쓸함, 고독, 소외감, 공허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매일 집, 직장만 왕복한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어딘가를 찾기도 한다. 어딜 찾아갈까? 친구와 지인과 식당, 카페, 술집, 영화관을 찾는다. 그것마저 반복이다. 그러다 한 번씩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공허해진 나를 다시 채워 넣기 위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바쁘게 정신없이 살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빠진 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의 그림에 담겼다. 그저 카페에서의 두 남녀의 모습이 담긴 사실적인 그림이지만 어딘가 상상의 여지를 주는 그림이다. 나는 주로 어떤 공간에 머물까? 내 마음의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이 공간을 좋아해

  나는 대학생 때도 과제, 시험공부를 하러 꼭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 주말 중 하루는 혼자만 있고 싶어 꼭 찾는 곳이 있었다. 이것저것 넣은 가방 하나만 메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단골 카페에 갔다. 생활 공간에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카페였다. 그래야 누군가 갑작스레 마주칠 걱정 없이 편안히 있을 수 있으니. 카페에 가면 맘 편히 과제하고 공부하고 쉬기도 했다. 공부는 여기서 해야 잘됐다. 어느덧 본가와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지금, 나는 가끔 외롭고 집이 그립다. 아직도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단지 며칠 머무는 곳 같고 내 집은 기차를 타고서 도착하는 그곳 같다. 본가 기차역에 도착하기만 해도 그곳 공기만 마셔도 마음이 놓인다.



이 공간, 내가 사랑하는 이유

  그렇게 낯설고 아직 정이 안 붙은 이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한 군데 생겼다. 집 근처 카페다. 항상 내가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카페를 찾았던 것 같다. 여기는 계속 찾게 된다. 벌써 몇 번을 갔는지 모르겠다. 무슨 이유로?


  첫째, 음료수와 디저트가 맛있다.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나는 카페에서 마실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가 참 맛있는 곳이다. 밀크티가 메뉴에 없는 곳도, 펄 추가가 안 되는 곳도 많다. 여기는 밀크티에 펄을 추가해서 먹으면 부드럽게 달콤하고 펄은 쫄깃해 끝맛까지 깔끔하다. 카페에서 음료만 먹은 적이 사실 없다. 달달한 케이크는 꼭 먹어줘야 하는 나에게 디저트가 맛있는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여긴 케이크 종류도 많지만, 특히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 맛집이다. 여기 잘한다. 그 뒤로 몇 번이나 갔는데도 이때까지 거쳤던 수많은 카페들 중 단연 최고였다.


  둘째, 어떤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편안하다. 일단 이곳은 참 좋은데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항상 갈 때마다 내가 앉는 곳이 있는데 누가 먼저 앉아있어 앉지 못한 적이 한두 번뿐이다. 밖 테라스와 두 개 층으로 되어 있는 이곳은 꽤 크다. 나는 개인적으로 복층 카페를 좋아한다. 한 층이면 사람이 많아지면 쉽게 시끄러워지기도 하고 카페 사장님과 시선이 마주칠까 부담되기도 한다. 여기는 복층에 천장 바로 아래부터 바닥까지 널찍한 통유리라 바깥까지 연결된 것처럼 탁 트여 좋다. 카페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이곳의 한적한 분위기가 좋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곳이 아니라 나만 아는 곳 같은 느낌도 좋다. 나만의 아지트랄까? 복작복작한 카페는 갑갑해서 가기 싫은 나에게 이곳이 딱 좋다.


  셋째, 통유리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포근하다.  카페는 복층 모두 통유리 외관이다. 나른한 오후,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온다. 너무 눈부신  아니야? 그럼 적당히 커튼을 내리면 된다. 가만히 앉아 소파에 기대어 햇볕을 쬐고 싶은 날에는 더없이 좋다. 시간 가는  모르고 따스한 햇볕 쬐며 책도 읽고 내일을 준비하기도 하고 인터넷 보고 웃다가 미뤄둔 일을 하기도 한다.   가면 3시간은 있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 가면 쫓기는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즐긴다.  입만 먹어도 기분 좋아지는 달달함과 함께.


  그냥 집에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다. 물론 누워있기는 집이 최고지만 집에만 있으면 또 밖을 나가고 싶다. 아무거나 걸쳐 입고 가볍게 나가 배회하다 또 발길이 닿은 곳이 이곳이다. 어? 여기 지난주에도 왔는데. 그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또 여기네. 밖에 나가고 싶은데 딱히 새롭게 가고 싶은 곳은 없고 또 찾은 곳은 여기다. 집에서 하면 어딘가 답답하고 의자도 불편하다. 방 안의 조명도 적당하지 않다. 이젠 대체 공간을 찾았다. 여러모로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 행복하다. 집중해서 글을 쓰고 싶은 날엔 이곳을 찾는다. 어디 좋은 한 문장 없을까? 마지막 문장을 고민하는 지금 또 이곳에 가고 싶다. 여유롭게 나를 들여다보고 글 쓰고 싶은 날, 이곳에 머물러야지.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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