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예고 없이 내 인생에 허리케인이 몰려왔다.
30대와 아직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의 40대는 어쩌면 조금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평온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 조금 충격적인 일이 겪으면서 한동안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서 신경정신과를 찾기도 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작은 일들이지만 그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꼬일 대로 꼬여서 회사를 다니는 것이 괴롭게 되었다. 그래, 이럴 바엔 꼬인 부분을 자르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감정적 번아웃으로 인해 나는 '쉼'을 갈구하고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피처가 필요했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할까?
만약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 전에 같이 하고 싶었던 게 순례길 걷기였다. 아, 이 찬스를 이렇게 써야 하다니! 싶었지만 예산으로 보나 일정으로 보나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이만한 곳이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길지도 불확실하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다른 루트로 가거나 또 가도 된다. (실제로 여러 루트가 있고 같은 루트도 여러 번 걷는 사람들도 꽤 있다.)
원래도 여행은 그냥 가서 생각하자 주의이기도 하고 퇴사, 갑작스러운 이사와 함께 겹치면서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다음 일할 곳, 다음 살 곳도 정하지 않은 채로 네이버를 검색해서 소위 '순례길 필수품'이라는 것들만 겨우 챙겨서 인천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가구, 가전과 짐들은 이사업체 보관소로, 그리고 다녀와서 한동안 쓸 물건들 개중에 귀중품들은 부모님 댁으로, 식물은 나눔 하거나 큰 나무는 화훼단지로 보내졌다. 모든 게 안정적이었던 내 삶이 갑자기 거친 파도 위를 떠도는 돛단배가 되었다.
떠나기 전, 그렇게 나는 내 정신을 스스로 빼놓으면서 불안감으로부터 회피했다. 지금 당장 할 일들을 만들어서 끝없는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치열한 취업경쟁에서 잠시 휴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내린 내가 용기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괜찮아 보이려고 싶었다. 순례길은 나에게 완벽한 선택지였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생의 중반즈음에서 만난 Camino de Santi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