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곤 옥상 1

by starry night



1

누구에게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에 남아 있는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도 콜카타를 다녀와서 나는 같은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숙소를 나서 무슬림들이 사는 골목길과 그들이 아침마다 몸을 씻는 공동 수돗가를 지나 마더 하우스에 다다르는 꿈이었다. 숙소의 옥상에서는 밤마다 여행자들의 술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 또한 꿈에 나오곤 했다. 새벽 다시 반 마더 하우스로 향하는 길과 늦은 밤 술판이라는 성과 속의 조합을 꿈에서 알현한 나는 결국 콜카타를 다시 찾게 되었다.


콜카타 서더 스트리트의 파라곤 호텔.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째 마더 하우스의 자원 봉사자로 일하는 여행자들이 주로 머물던 저렴한 숙소였다. 어둠이 깔려 서더 스트리트의 가난을 덮고 나면 파라곤의 옥상은 인도인 듯 인도 아닌 몽환적 분위기 속에 히피 여행자들의 해방구로 변신하곤 했다. 맥주병과 과일 안주 사이에서 취한 사람들, 저글링을 하는 사람,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병을 손에 쥔 채 춤을 추는 사람, 노랫가락을 구성지게 뽑는 사람. 마침 파라곤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M과 S, 그리고 A 언니와 J 언니 등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온 여성 여행자들이 여럿 있었다. 장기 여행자들이니만큼 비슷한 불화와 가출(?)의 경로를 거쳐 떠나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몇 달 전 방콕에서 집에 전화했을 때도 아빠가 삐져서 전화도 안 받으시더니 며칠 전 전화했을 때도 여전히 삐져 계시더라, 어디쯤 가면 화가 풀려 전화를 받으실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온화한 표정 뒤에는 집 떠나면 고생을 자처한 자의 강인함이 서려 있었다. 여행자들 중에는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싼 값에 항공권을 끊어 콜카타에 왔다가 마더하우스에서 봉사를 하게 되면서 일정을 늘이고 늘이다 못해 결국 돌아갈 비행기표를 찢어버리고(실제로 찢진 않았지만 표를 날리는 것을 다들 찢는다고 표현했다) 체류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로만칼라만큼이나 앞치마가 잘 어울렸던 우리들의 베드로 신부님도 있었다.


2

어느 밤, 옥상 사람들이 취기로 달아올랐을 무렵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온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십 대 배낭 여행자들이었던 우리는 그를 성규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는 화가 난 것 같았다. 콜카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하듯 그들의 가난에 카메라를 갖다 대어 얻은 그림이 과연 객관적이고 윤리적인 것인지 성규 아저씨는 묻고 있었다. 그 무렵 그는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설립한 마더하우스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몇 년 전 시설 중 한 곳인 깔리 가트에서 죽음에 가까이 다다른 행려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었다. 성규 아저씨의 그 질문이 후일 내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걸 2003년의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한낮 서더 스트리트에 내리 꽂히던 햇빛만큼이나 열띠었던 그날의 논쟁을 이끌었던 아저씨의 질문은 파라곤 옥상을 떠올릴 때마다 내 안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그 무엇이었다. 그날의 질문은 성규 아저씨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고, 또한 인도 빈민들의 가난마저 신비주의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버리는 여행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훗날 그는 강연 자리에서 2002년 파라곤의 옥상에서 오갔던 논쟁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보통 극영화 감독은 고통의 지휘자라고 합니다. 근데 다큐멘터리 감독은 고통의 지휘자면서 동시에 고통의 체험자여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인도에서 발견해 내기 시작한 거예요.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그들의 고통을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고, 그들이 겪고 있는 인생의 문제들을 […] 소통이 되는 겁니다. 낭만적인 시각을 갖고서 […] 포장하지 않고 좀 더 들여다보는 시선을 갖게 되고 훈련을 하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 인간이 재미가 없어요. 그냥 아름다우면 아름답다고 봐야 되는데 왜 그 아름다움 뒤의 다른 얘기들을 파헤치냐는 거죠. […] 고통을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들어가서 그 고통에 대해서 체험하고 그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소통할 때 작품이 나옵니다.*


여행 중에 관찰한 것을 체험하고 동화한 뒤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행위와 작품 속에서 기필코 되살려나가야만 하는 자.** 성규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통의 지휘자이자 체험자로 살면서 그는 여러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아저씨는 방송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피디였는데, 그의 영상은 지상파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방영되곤 했다. 콜카타에서 헤어진 후로 그는 몽골의 설원과 네팔의 무스탕 왕국 등 비포장도로조차 닦여 있지 않은 험지를 다니며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영화관 상영을 목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와 극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중에 〈오래된 인력거〉(2010)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비하르를 떠나 대도시 콜카타로 떠밀리듯 흘러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인 샬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그가 거리에서 맨몸으로 부딪혀가며 단짝인 인력거만큼이나 오랜 노동의 세월 속에 마모된 인생의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게 품고 있는 꿈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도로에서 택시 사이를 비집고 인력거를 끄는 샬림을 비춘다. 그런데 샬림의 무릎 높이에서 클로즈업한 카메라도 같이 뛴다. 손님을 태우고 70도에 육박하는 지열로 달아오른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그 발과 함께 카메라도 달린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고통의 체험자’라고 했던 성규 아저씨의 말이 와닿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류학자가 현장연구를 할 때 추구하는 참여관찰자로서의 정체성과 같은 의미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십여 년 전 파라곤 옥상에서 아저씨가 던졌던 질문이 시간을 뛰어넘어 내게로 오고 있었다. 타자의 신산한 세상살이에 담긴 고통과 희망을 바라보는 감독이 발 딛고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그가 영화의 주인공들을 화면 안팎에서 어떻게 대해 왔으며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저씨는 콜카타의 인력거꾼 샬림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인류학자였고, 샬림과 그의 동료들이 보여준 눈물과 웃음에 담긴 에피소드를 노련한 솜씨로 엮고 꿰어 그 일상의 이면에 자리한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로까지 관객을 이끌 줄 아는 감독이었다.


<오래된 인력거>에 담긴 그의 인류학적 시선이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이성규 감독은 촬영자나 여행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넌지시 말을 건다. 나는 인도를 두 차례 여행하면서 모두 콜카타에 머물렀고, 두 번째 그곳에서 머물렀을 때는 우기였다. 자원봉사자 겸 여행자였던 내게 비는 근심거리였다. 거리가 물에 잠기면 돌아다니기 불편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서더 스트리트가 집이나 마찬가지인 노숙자들과 빈민들은 머물 곳을 잃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물이 빠져나간 자리엔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과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번지게 될 것이었다. 영화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를 보며 샬림은 이렇게 말한다.


“비가 세차게 쏟아져요. 이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해요.”


인력거 바퀴에 빗물이 맺히는 장면을 비추던 카메라는 이내 관객을 종아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 서더 스트리트로 데려간다. 인간이 내다 버린 온갖 쓰레기와 동물의 분비물이 뒤섞여 있는 빗물. 사람들은 그 물속에 발 담그기를 꺼리고 차오른 물에 갇혀 차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다. 거리에 뛰어들어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샬림은 민첩한 동작으로 손님을 인력거에 태운다. 영화는 비를 관조하며 감상에 젖는 낭만적인 여행자의 시선도 아닌, 비가 만들어낼 온갖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의 시선도 아닌, 오늘의 밥벌이와 내일의 꿈을 위해 기꺼이 저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고 뛰어들어야만 하는 인력거꾼의 관점으로 비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2편으로 이어짐)


*강연의 시대. 2022, 오래된 인력거. https://www.youtube.com/watch?v=i0tqvXpnfdk 45분 5초 ~ 47분 29초.

** 니체가 말했던 여행자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사람이다. 안철택. 2017. 니체의 여행 – 니체의 주요 여행지를 통해 본 그의 삶과 철학. 독일문학 141. 176-177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