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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날이 Sep 15. 2022

오픈 월드와 리얼리즘에 대하여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따라

1. 들어가며: 비디오 게임과 알렉산더 갤러웨이의 게임 이론


E-Sports를 공식 스포츠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대표적으로 비디오 게임을 단순히 놀이의 영역이 아닌 체스, 바둑과 같은 멘탈 스포츠의 영역으로 보기 위한 최근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였다. 이 문제는 국내에서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E-Sports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며 떠오르게 되었다가,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정식종목이 되며 더욱 불거졌다. 이 문제에 대해 양쪽의 입장을 거칠게 입장해보자면, 사적인 게임 회사에서 만들어진 상품이기 때문에 공정한 경기가 될 수 없다는 입장과 최근의 비디오 게임 산업의 성장과 E-Sports에서 경쟁하는 수많은 선수들의 존재로 인해 비디오 게임을 단순한 사기업의 상품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동시에 비디오 게임을 문화예술의 영역인가에 대한 질문은 최근 몇 년 동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는 영화의 탄생 이후 벌어졌던 영화의 예술 논쟁과 유사한 동시에 그 논쟁이 지녔던 미학적, 정치적 문제들은 완전히 탈각되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게임을 문화예술의 영역으로 어느 정도 인정하며 글을 진행해보고자 한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해보기 전에, 우선 게임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해야한다. 알렉산더 갤러웨이는 대표적으로 영화 및 미디어 연구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문화예술 영역의 새로운 지배종으로 인정하고 분석하는 연구자이다. 그의 게임에 대한 서적 Gaming: Essays on Algorithmic Culture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많은 입장들을 빌려와 게임을 영화 이후 새로운 문화적 지배종으로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갤러웨이는 제임슨의 영화적 리얼리즘 분석을 통해 게임의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게임 리얼리즘의 정치적 지위는 어떻게 되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갤러웨이가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서 주목하는 요소는 움직임actions이다. "사진이 이미지고, 영화가 무빙-이미지이라면, 게임은 움직임action이다."(p.2) 즉, 갤러웨이에 말을 따라, 움직임이 없다면, 게임은 "추상적인 규칙 북", "정적인 컴퓨터 코드"에 불과하다.(p.2) 이 움직임을 다시 둘로 나누면, 기계적 작동machine actions과 작동자의 행위operator actions이다. 기계 액션이 게임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 액션이라면, 작동자 액션은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수행하는 작동이다. 갤러웨이는 여기에 문학과 영화이론에서 빌려와, 디제틱 공간과 비-디제틱 공간을 추가한 네 가지 영역을 통해 게임을 이야기한다.


갤러웨이는 이 게임의 움직임이 비디오 게임을 "리얼리즘의 세번째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이야기한다.(p.84) 겔러웨이에 따르면, 문학이 서사라는 요소를 통해 리얼리즘의 첫번째 순간을 맞이했고, 사진과 영화가 이미지라는 요소를 통해 두번째 순간을 맞이했다면, 게임은 움직임을 통해 그 세번째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게임의 리얼리즘은 "매체의 물질적 기질을 재방문하고 게이머의 사회적 현실social reality에 존재하는 구체적 활동과의 일치에 도달하는 과정"이다.(p.84) 이는 게임을 단순히 현실과 닮은 게임 속 이미지들로만 게임의 리얼리즘을 이야기하는 것을 지양하고, 게이머의 행위라는 움직임을 통해 사회적 현실이 게임 속 환경으로 옮겨지고, 게임 속 환경이 게이머의 사회적 현실로 통역되야만 게임의 리얼리즘이 획득할 수 있다는 갤러웨이의 핵심적 주제이다.(갤러웨이는 이를 일치 요구congruency requirement라고 명명한다.p.78.) 이를 통해 갤러웨이는 락스타 게임즈의 <State of Emergency>, 이토이 예술 그룹의 <Toywar>와 같은 게임들이 게임의 리얼리즘을 최초로 발전시킨 작품들이라고 분석하며, 이외에 1인칭 슈팅 게임들FPS중 일치 요구가 충족되는 게임이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분석한다.


2010년대 이후로 최근의 게임산업을 지배하고 있으며 흔히 게임 중 가장 현실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가장 대표적인 게임의 형식은 "오픈 월드"이다.(물론, 오픈 월드라는 개념은 아직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개념으로 이를 장르로 볼 수 있는지, 혹은 형식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오픈 월드란 게임의 탄생 이후로 정해진 공간 안에서 잘 짜여진 서사 혹은 일부의 조작을 통해서만 진행되던 게임과는 다르게, 광할한 크기의 맵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율적인 스토리 진행이 가능하게 해주는 새로운 형식이다. 그렇기에 오픈 월드라는 게임적 형식의 척도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자유롭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지이다. <GTA 5>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같은 게임 이후로 오픈 월드는 비디오 게임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었으며, 많은 게임 회사들이 자신들의 게임이 얼마나 자유도가 높은 게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홍보 마케팅을 위한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정해진 서사와 규칙을 따라 진행하는 기존의 게임들과 달리 "자유"를 게임의 가장 큰 가치로 두면서 마치 현실 세계와 같은 디테일들이 가득한 거대한 맵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픈 월드의 최종적 목표이다. 즉, 게이머의 자유로운 조작과 게임 내에서의 자유로운 플레이가 오픈 월드 게임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픈 월드라는 새로운 게임의 형식은 게임의 리얼리즘을 최종적으로 성취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갤러웨이가 게임의 리얼리즘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하는 "일치 요구"가 오픈 월드라는 형식에서도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전통적인 게임의 형식에서 최근 오픈 월드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분석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2.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역사: 고정적 형식에서 오픈 월드로


1996년 일본에서 출시된 <포켓몬스터>는 닌텐도 게임보이용으로 개발되어 지금까지도 일본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인기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RPG 장르의 비디오 게임 중 하나이다. <포켓몬스터>는 게임을 기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1997년에 최초로 방영되면서 단순히 게임 산업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문화 컨텐츠로 자리잡게 되었고, 덕분에 게임도 뒤늦게 주목을 받으며 1996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시리즈가 개발되어 출시되고 있는 대표적인 게임 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포켓몬스터>의 개발사 게임 프리크는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에서 흑백의 도트 그래픽으로 시작해 비디오 게임의 발전을 따라 점점 더 사실적인 색감, 사실적인 모델링을 시리즈에 접목시켰다. 게임 프리크는 <포켓몬스터 XY>에서의 조악한 3D 모델링을 넘어서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에 이르러 오픈 월드라는 형식이 가능할 만큼의 거대한 3D 맵을 만들어내며 시리즈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게임의 그래픽이나 귀여운 포켓몬은 아니다. 물론 그 귀여운 포켓몬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성공이 게임의 인기에 한 몫 했지만 말이다. 그래픽은 오히려 시리즈의 팬들이 비판하는 시리즈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포켓몬스터>라는 시리즈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게임의 형식이다. 최근의 세 버전들에서 조금씩 변화를 하고 있지만, 이 시리즈는 가장 첫 번째 버전인 <레드/그린>부터 존재해오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있다. 각각 다른 타입의 8개의 체육관과 사천왕 및 챔피언과의 포켓몬 리그이다.(<썬/문>과 <울트라썬/울트라문>에서는 섬의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지만 여전히 체육관의 역할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세대는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과의 전투를 핵심 서사로 만들어내는데 기본적 토대가 되며, 게임의 시작부터 완결까지 구체적인 서사적 흐름을 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각각의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유사한 형식을 토대로 서사적 발전 및 변주를 통해 진행되어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간단한 형식을 통한 서사는 96년부터 지금까지 <포켓몬스터> 게임이 모든 세대에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이유이며, 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의 스토리가 사랑받는 이유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다른 게임들보다 현격히 뒤떨어지는 <포켓몬스터> 그래픽과 오픈 월드라는 새로운 게임 형식의 득세는 팬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스템을 요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팬들의 요구에 대한 게임 프리크의 답변이 바로 오픈 월드라는 새로운 형식이었다. 2022년에 발매된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서 오픈 월드라는 형식의 시작을 알리는 게임이었다.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 역시도 RPG 게임답게 미션들을 진행해나가며 주인공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만, 오픈 월드라는 새로운 형식답게 이전 시리즈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전 시리즈들은 마치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고향에서부터 여행을 떠나 8개의 체육관들과 포켓몬 리그를 거쳐  명의 주체로서 성장하는 것을 메인 서사로 하고 있다면, <포켓몬스터DP 디아루가/펄기아> 배경신오지방의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에서는 이전작과 다르게 하나의 타입으로 대표되는 체육관들과 포켓몬 리그가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에서는 마지막 반전이 있기 전까지 세계를 위협하고 주인공을 성장하게 해주는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다.   없는 이유로 과거로 넘어  주인공이 모종의 이유로 배경이 되는 히스이 지방을 탐험하며 폭주한 포켓몬들을 진정시키는 미션을 진행하며, 방대한 맵에 등장하는 모든 포켓몬을 만나는 것이 주요 서사로 하고 있다.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에는 메인 미션 이외에도 다양한 세부 미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단순히 미션만을 따라서 스토리를 진행하기보다는 자유롭게 각각의 맵들을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를 뒤이어 2022년 11월에 출시 될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도 오픈 월드 형식으로 출시되며, 순서에 상관 없이 체육관들에 도전할 수 있고 모든 지역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챔피언 로드, 레전드 루트, 스타더스트★스트리트라는 세 가지 스토리를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포켓몬스터>는 선형적인 서사의 RPG 시리즈에서 자유로우며 비선형적인 RPG 시리즈로의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오픈 월드: 포스트모던 비디오 게임


게임의 오픈 월드 형식에 대한 인기는 이는 인터넷의 발전 이후의 가상 공간에 대한 변화에서 기인한다 볼 수 있다. 인터넷 유저들은 각각 다양한 이유로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익명성이라는 특징으로 하여금 현실과는 완전히 구분된 가상 세계라는 새로운 공간을 향유한다. 가상 세계를 인터넷 이전에 존재하는 가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예술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는 모더니즘에서 이야기되던 현실과 예술의 분리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기 위해 현실과 예술의 분리를 추구했다면, 인터넷의 현실과 가상의 분리는 가상의 새로운 상품화에 가깝다. 즉, 모더니즘의 현실과 예술의 분리는 리얼리즘 예술의 몰입이 자본주의라는 현실을 잊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면, 인터넷의 현실과 가상의 분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주의"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의 현실과 가상의 분리는 모더니즘 예술에 존재했던 혁명적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물화된 분리라고 볼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의 오픈 월드는 이러한 인터넷의 냉소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픈 월드는 현실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이는 오픈 월드를 가능하게 하는 그래픽이 현실 대상들과 시각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GTA 5>는 로스 앤젤레스에 영감을 받은 로스 산토스를 배경으로 하며, 실제의 자동차, 건물들 뿐만 아니라 각종의 동물 및 식물들까지 구현해 놓아 실제 세계와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맵의 크기가 얼마나 방대한지에 따라 오픈 월드의 척도가 결정된다. 즉, 마치 현실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오픈 월드라는 새로운 형식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르게 해석하면, 리얼리즘의 완성이라고 보이기도 하다.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와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의 오픈월드 역시도 더 현실적인 게임을 요구하는 팬들의 성화에 대한 게임 프리크의 대답이었다. 물론,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 덕분에 완전히 현실적으로 보일 수 없지만, <포켓몬스터> 팬들은 지속적으로 현실에 볼 수 있을 법한 자연을 오픈 월드로 만들어주는 것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와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의 오픈 월드는 리얼리즘의 시각적 유사성에 대한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알렉산더 갤러웨이는 게임의 리얼리즘의 필수조건인 "일치 요구"를 설정하기 위해 프레드릭 제임슨의 리얼리즘 분석을 빌려온 바 있다. 제임슨은 [이탈리아의 존재]라는 글에서 리얼리즘을 "현실의 재현"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한 바 있다. 즉, 제임슨에 따르면 리얼리즘은 현실과 재현이라는 상호 모순적이며, 불안정한 관계의 두 측면이 동시에 존재할때만 진화하고 유지될 수 있다. 갤러웨이는 이러한 제임슨의 리얼리즘 분석을 그대로 게임에 접목시켜, 대부분의 비디오 게임이 주목하는 리얼리즘은 그래픽의 현실감 느껴지는 현실성realisticness과 같은 재현에만 몰두하고 있는 리얼리즘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갤러웨이는 조금 더 상위의 리얼리즘, 즉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이 요구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오픈 월드는 오히려 현실감 있는 재현에만 몰두된 비디오 게임의 최상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오픈 월드는 게이머의 사회적 현실과는 완전히 무관한 시각적 유사성만이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오픈 월드는 동시대의 리얼리즘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오픈 월드는 비디오 게임의 포스트모던 형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오픈 월드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메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서사가 아니라, 물화된 기표들과 작은 미션들이다. 즉, 비디오 게임의 가장 포스트모던한 버전이 바로 오픈 월드이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들로 인해 가장 현실적인 것과는 멀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리얼리즘에 가까운 비디오 게임 시리즈 중 하나였다. 90년대 출시된 <레드/그린> 버전부터 <소드/실드>까지 게임 프리크는 매력적인 서사와 주인공의 성장에 중점을 두며 <포켓몬스터>의 세계관을 정립해나갔다. 이런 점에서 시리즈의 완성은 세계관의 신화를 완성시킨 <포켓몬스터DP 디아루가/펄기아>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태초의 창시자를 그린 <포켓몬스터DP 디아루가/펄기아>는 시리즈의 완결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뒤이어 제작된 <블랙/화이트>, <X/Y>, <썬/문>, <소드/실드>는 완성된 서사를 뒤이어 나온 변주들이었다. 그러나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리얼리즘 게임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은 서사만이 아니었다. 각각의 시리즈들은 주인공이 맞서 싸우는 악의 조직을 통해 자본주의 그 자체를 그려내고 있었다. <레드/그린>이나 <디아루가/펄기아>는 대기업화 된 기업의 변화를 로켓단과 갤럭시단이라는 빌런을 통해 그려냈으며. <루비/사파이어>는 땅과 물의 사유화를, <블랙/화이트>의 플라스마단이나 <썬/문>의 에테르재단은 동물의 사물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점은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매력적인 서사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실의 문제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게임의 교육적 역할이 가능한 비디오 게임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게이머들은 각각의 시리즈들의 주인공들을 조작하며 악의 조직을 무지름으로써, 사회적 현실과 비디오 게임을 봉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와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는 기존 시리즈가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던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기 보다는 게임 프리크가 만든 방대한 공간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러한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캐릭터의 성장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이 만들어낸 스펙터클을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한 게임의 결말부에 정체가 밝혀지는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의 악당은 구체적인 동기 없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창조를 자신의 목표로한다. 이런 점에서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의 악당은 어떠한 혁명적 가치도 없이 새로운 가상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임 회사들과 그러한 공간을 요구하는 게이머드의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게이머들은 자유로운 공간에서의 움직임을 통해 악당을 무찌를 수 있지만, 거기에는 어떠한 봉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 프리크가 만들어낸 그 새로운 형식 속에는 아무런 이유없이 부유하는 기표들만 존재할 뿐이며, 디지털 사물들이 가득채워져있는 그 방대한 공간에는 사회적 현실이 비집고 들어올 필요가 없다. 



4. 나가며: 인식적 지도 그리기를 위하여


프레드릭 제임슨이 비디오를 분석했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 역시 해석이 불가능한 매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비디오 게임을 무시하기에는 비디오 게임이 동시대의 가장 큰 대중매체이자 문화산업이 되었다. 비디오 게임이 문화산업이라면, 우리는 비디오 게임이 자본주의와 함께 상호관계적이며, 인식적 지도 그리기가 가능한 새로운 매체가 될지 모른다는 가정 하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소 둔탁하고 유치해보이는 이 글은 이를 위함이었다. 알베르토 토스카노와 제프 킨클은 Cartographies of the Absolute에서 인식적 지도 그리기 미학이 “후기 자본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우리의 시대에 사회적 공간과 계급 관계를 묘사하는 매우 야망적인(그렇지만 제임슨이 말한 것처럼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을 위한 문화적 그리고 재현적 실천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Alberto Toscano & Jeff Kinkle, Cartographies of the Absolute, Zero Books, 2015, p.7.,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리얼리즘의 재창안]], 56페이지에서 재인용) 비디오 게임기의 소형화와 함께 제작되어 지금까지 시리즈가 이어온 <포켓몬스터>는 이를 위한 맥락화가 가능한 게임 중 하나이다. 이렇게 비디오 게임에서 리얼리즘을 혹은 리얼리즘의 불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비디오 게임을 예술문화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비디오 게임을 해석해보기 위한 시도였음에 분명하다. 물론 비디오 게임의 오픈 월드라는 새로운 시도는 사물과 공간에 대한 완전한 자본주의적 포섭을 보여주고 있음에 분명하지만,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를 더 이상 애들 놀이 취급하며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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