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같은 하늘

by 김세은

나의 이력을 작성할 때면 종교란에 주저 없이

‘기독교’라고 적는다.

하지만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정말 기독교인인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그 질문 앞에서는 언제나 망설여진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가 어떻게 다른가? 궁금했던 적은 있었지만,

그 궁금증은 늘 일상에 밀려 묻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클릭한 오디오북 하나가

내 안에 오래 묵혀 두었던 질문을 다시 끌어올렸다.


세 종교는 모두 하나의 신을 믿는다.

그런데 왜 서로 다른 길 위에서 서로를 향해 서있을까!


그 시작은 약 4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작은

도시 ‘우르’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

전통적으로 이스마엘은 아랍 민족의 조상으로,

이삭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이어진다고 전해진다.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형제의 이야기는

시간을 건너와 종교와 민족의 이야기로 확장되었고,

그 해석의 차이는 때로는 깊은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지식’으로 이해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가족의 갈등처럼 시작된 이야기가

십자군 전쟁과 유대인 박해, 그리고 중동의

분쟁으로 이어지며,

오늘날까지도 끝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종교는 참 많이 닮아 있다.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과 모세,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경전 속에는 비슷한 서사가 흐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갈라놓았을까.


결국 핵심은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있었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로 믿고,

유대교는 아직 메시아를 기다리며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로 존중하지만

신의 아들로 보지는 않는다.


같은 이야기를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해석 위에 각자의 종교가 세워진 것이다.


경전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

유대교는 율법을, 기독교는 사랑을, 이슬람은 순종과 정의를 강조한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비유처럼,

같은 원본을 내려받고도

편집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된 것처럼 말이다.


성스럽고도 슬픈 도시, 예루살렘.

그 땅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비극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쩌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적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


율법과 사랑, 그리고 정의가

서로를 배척하는 이유가 아니라

함께 인간을 지탱하는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면

우리가 마주한 갈등도 조금은 다른 모습이 되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며

내 안의 작은 불씨 하나는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완전한 믿음을 말할 수는 없다.

흔들림 없는 신앙을 확신할 용기도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어떤 이름으로 신을 부르든,

어떤 방식으로 믿음을 표현하든,

끝내 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은

조금 더 바르게, 조금 더 선하게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서로 다른 종교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는

가장 단순한 진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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