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을 고수하며 버티기
‘쾅. 쾅. 쾅.’
교장은 책상을 치며 고함을 질렀다.
“학교가 없으면 우리도 없는 겁니다.”
이에 질세라 나도 똑같이 받아쳤다.
“우리가 없으면 학교도 없는 거죠.”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가 생긴 건 2017년 5월이었다. 명문 사학으로 나가기 위한 나름의 야심 찬 포석으로 기숙사 운영을 시작했기에 학교 관리자들은 기숙사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당시 교장은 기숙사 학생들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매일 남교사 한 명을 기숙사 당직 근무에 배치시켰다. 학교 특성상 남교사의 수가 여교사보다 더 적었다. 가뜩이나 학교 업무로 바쁘고 고단한데 기숙사 당직을 하는 남교사들은 당직하는 날 밤 11시 30분까지 학생들 자습 감독을 하고 당직실에서 불편한 잠을 자야 했고 그다음 날에는 6시 30분에 기숙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상 호출을 했어야 했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던 당직 업무는 거의 1주일에 한 번은 돌아왔다. 피로는 누적되고 젊은 남교사들은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서 불만을 토로하였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립 고등학교에서는 교장의 말이 곧 법이다. 좀 바꾸자는 목소리를 낼 법도 한 나이 많은 남교사들의 묵언과 함께 남교사들의 당직 업무는 계속 유지되었다.
그렇게 2017년, 2018년 2년 연속으로 계속 남교사들 만 기숙사 당직 근무를 하였다. 피로가 누적되다 보니 나이 많은 교사들부터 슬슬 고단함을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켜져 가자 이를 눈치챈 교장은 2018년 여름 방학식날 직원들에게 중대발표를 하였다. 2019년부터는 남교사 여교사 모두 당직을 돌아가면서 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당직을 아예 없애자는 말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가 한 말 덕분에 2019년부터는 좀 덜 피곤하겠지 라는 희망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을 믿은 2018년의 난 참 순진했다. 바꿀 거라면 왜 당장 바꾸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나 믿고 싶은 대로 들었기에 2018년 남은 기간 동안 내 당직 업무를 불만 없이 묵묵히 수행하였다.
2019년 2월 봄방학 전날이었다. 교장은 20명 남짓한 남교사들을 모두 교장실로 호출하였다. 교장실에 있는 ‘ㄷ’ 자형 직사각형의 긴 책상 가운데 교장이 앉았고 그 바로 오른편에는 교감이 왼편에는 교무부장이 착석하였다. 나머지 남교사들은 책상 마주 보는 자리에 함께 않았다. 교장은 말문을 열었다.
“원래 다음 학기부터 여자 선생님들도 함께 기숙사 당직을 하게 하려 했는데 좀 어렵게 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2019년에도 남자 선생님들만 기숙사 당직을 하셔야겠어요.”
자리에 앉은 모든 남교사들 표정이 굳어졌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치만 보았다. 이대로 있으면 또 그대로 교장 의견이 관철되겠지만 뭐 어쩌겠어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난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교장 선생님. 약속하신 것과 다르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지난 2년여 동안 남교사들은 피곤함을 참아가며 당직 업무를 해 왔습니다. 이제 그 순번이라도 좀 천천히 돌아오리라 희망을 걸었는데, 다시 또 그대로 남교사들에게만 이 업무를 전가시키시다니요. 너무 힘듭니다.”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난 항변하였다. 당시 교장실에 모인 남교사들 중에서는 나 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딱 한 명 있었다. 막내 급인 내가 따지듯 교장에게 대드니 다들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교장은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 부드러운 말투로 양해를 구할 때의 표정 대신 꽉 다문 입을 씰룩거리며 불쾌한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였다. 선임(?) 교사들은 뭔가 따질 모양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이도 새파란 게 감히 교장 선생님 말씀에 반기를 들다니. 가만있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누군가 반격의 신호를 날렸다.
“한 선생. 그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니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 베스트 3에 들어가는 기숙사 부장교사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뭐가 무책임하다는 말입니까? 그동안 남교사들만 희생하다시피 해서 이제 공평하게 서로 일을 나눠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기숙사 당직을 아예 회피하자는 말이 아닌데 무책임하다 하시니 당황스럽습니다.”
난 또박또박 대꾸하였다. 기숙사 부장교사는 교장 호출 전까지도 우리들에게는 내년부터는 남교사 기숙사 당직 업무가 줄어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교장실에서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장 편이 되어 날 공격하기에 바빴다.
“교장 선생님이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 너무 심하게 반발하는거 아닌가?”
흥분한 기숙사 부장교사는 나름 공식석상인 자리에서 내게 하대하며 꾸짖었다. 이에 질세라 옆에 있던 교무부장도 날 공격하는 말을 거들기 시작하였다.
“그 한 선생. 너무 혼자만 생각하는 거 아니요?”
교무부장이 따지자 그 옆에 있던 그의 수하였던 수학 선생도 눈을 부라리며 내게 말했다.
“한 선생은 만약 사모님이 기숙사 당직한다면 맘이 놓이겠소? 왜 그렇게 생각 없이 말하는 거요?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 앞에서는 충견이 되는 수학 선생은 학생들 혼내는 것처럼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되어 내게 고성을 질렀다. 난 그의 욕받이가 아니었다.
“제 와이프 입장에서는 제가 기숙사 당직 하는 거는 맘이 놓일 것 같습니까?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함께 잠자던 식구가 밖에서 외근으로 제대로 잠 못 이룬다면 걱정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생각 없이 말하는 것 아니 구요.”
처음보다 목소리 데시벨을 높여 난 따졌다. 아무도 날 지원사격(?) 해 주지 않았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내 말을 이어갔다.
“교장 선생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자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런 작은 약속도 지키지 않는데 다른 약속들은 저희 평교사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거 잘못되었다고 생각들 안 하십니까?
격앙된 목소리로 나는 교장에 대해 비판적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자 또 다른 교사들이 내 얘기에는 이어지지 않지만 교장을 비호하기 위해 날 헐뜯는 말을 뱉었다. 그렇게 5분 넘게 설전이 이어졌다.
참다못한 교장은 책상을 세게 내리 쳤다.
‘쾅. 쾅. 쾅’
그렇게 이어진 교장과 나 사이의 공방전은 몇 분간 지속되었고 남교사들의 만류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남교사들만 감당하는 기숙사 당직 근무는 계속되었다.
2019년 2월 이후, 난 여러 일들로 교장실에 불려 갔고 교장은 내 앞에서 책상 내려치기를 두 번 더 시전 하였다. 그 교장 퇴임 전까지 나는 내 호봉에는 의례히 맡게 되는 부장 교사 보직에서는 배제되었고 성과급을 단 한 번도 S급으로 받질 못했으며 다른 불이익들도 꽤 많이 받았다.
언젠가 유시민 작가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고 싶을 때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 세 가지를 말한 적이 있다.
1. 지금 하고픈 말은 사실에 근거하는 것인가?
2. 그 말은 반드시 지금 해야 할 말인가?
3. 그 말을 친절하게 하고 있는가?
그동안 위의 세 가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바가 적지 않다.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기숙사 건으로 교장실에서 설전을 벌였던 2019년 2월의 그날, 난 적어도 1번과 2번은 지켰다고 생각한다. 불친절한 멘트를 먼저 날린 쪽은 교장 및 그를 비롯한 왕당파였기에 3번은 잘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또 어찌 생각해 보면 1번과 2번을 잘 지키며 말하는 내 모습이 교장으로서는 더욱 아니 꼬았을 것이다.
‘내가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난 교장이다. 내가 미안한 척하면서 말을 바꾼다 한들 니들이 어쩔 건데?’
그렇게 자신을 제왕이라 생각한 사람이 자기를 따지고 드는 말을 들었으니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분노는 허약함의 표시이다. 특정 직함 뒤에 감추고 있던 열등감이 큰 인간일수록 자신의 허약함이 들통날 때의 고함소리는 더욱 크다. 안타깝게도 내가 겪은 사립 고등학교의 교장, 교감들 중에서는 마음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관리자들이 있는 학교의 평교사와 학생들의 멘털이 평화롭게 유지되기는 어렵다.
오늘도 다른 사립 고등학교 2학년 부장교사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2학년 학생들의 야간자습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교사들 다 모인 자리에서 지네 교감으로부터 호통을 들었다고 한다. 하.
도대체 어디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