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늦었지만 여러분들의 졸업식을 온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그런데 졸업식 날 제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졸업식 전 주에 허리를 다쳐서 회복이 되질 않아서였습니다. 허리 통증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바람에 얼굴에 나타난 감정 변화를 숨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몸과 마음이 불편했다 해도, 졸업생들에게 밝은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졸업식 이후 집으로 돌아와 허리 찜질을 하면서 자꾸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다 보니 고통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부족한 글로나마 마지막 맺음말로 몇 자 적습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 고통은 필수입니다.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죠. 저는 여러분들이 졸업한 학교에서 10년도 훨씬 전부터 근무하였습니다. 근무 초창기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전에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경험한 학생들보다 너무 거칠고 인지능력이 낮은 학생들이 많아서 수업, 생활지도, 학급 경영 모두가 어려웠거든요. 학교에서도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한 그 어떤 교육적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았어요. 몇 명의 젊은 교사들에게만 과중한 업무와 어려운 학생들을 던져두는 학교 관리자들이 너무 미웠습니다. 학교에 출근해서 머무르는 시간이 모두 고통스러웠어요. 험악하면서도 짜증 나는 표정으로 우리 반 학생들을 대했습니다. 입에는 학생 욕, 특정 교사 욕, 학교 욕을 달고 살았고요.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대략 3년간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깊은 절망의 감정에 빠졌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어떤 철학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시작으로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철학자와 인문학자들이 어떠한 가르침을 남겼는지 살피며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얼마나 못난 인간인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를 잘 통제한다.’는 인식이나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받기도 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제가 타인에게 많은 고통을 제공하였음도 알았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인생 자체가 고통의 연속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숱한 고통 속에서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시점부터 저는 이 학교 근무 초창기의 저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2025년에도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 탓하느라 정신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제 마음에 앙금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대부분 그리 되었습니다.
삶이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자꾸만 추락하는 느낌이 들 때에는 욕을 뱉습니다. 날 괴롭힌다 싶은 누군가에 대한 앙심을 품은 채 귀한 시간을 보내며 성깔의 독기를 키워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역경은 나를 더 강하게 단련시키는 훈련 장치입니다. 인격이 고매한 이들은 막강한 상대를 만나면 그 덕분에 자기 머리가 썩지 않게 되었다고 감탄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삼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아주 많은 여러분들에게는 기쁨보다 고통의 순간들이 훨씬 더 자주 많이 찾아올 겁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제대로 겪으면 의식 수준의 상승이라는 보상이 옵니다. 우스갯소리로 여러분들에게 많은 연애를 하라고 말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혹독한 이별을 배우고 나면 나와 세상을 보는 시야가 깊고 넓어집니다. 고통 속에서도 이를 통해 배우려는 의식을 놓지 않으면 내면의 성장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자유란 제 감정에 휘둘려 멋대로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특정한 감정이 나를 지배할 때,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하는 힘이 바로 자유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이 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세요.
‘아. 드디어 내가 성장해야 하는 순간이 왔구나.’
고통의 순간에도 감정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세요.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만났던 모든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