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증발
오랫동안 근무한 학교에서 처음으로 학년 부장 교사 역할을 맡았다. 아직 3월이 되려면 한 달이 넘게 남았는데도 내가 1학년 부장 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학교의 선배 교사들은 하나 같이 위로의 말을 내게 건네었다.
“지옥문으로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년이 지나자마자 신학년 업무에 관한 문자 메시지가 물밀 듯 밀려왔다. 교감 선생님은 내게 수시로 전화하여 신입생을 맞을 준비에 만전을 다 하라는 지시를 거듭하였다. 방학 중인데도 오늘은 학교에서 신임 부장 교사 워크숍까지 개최하였다. 와이프는 수술로 입원해 있고, 아이들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며칠 전부터 매우 심란한 상태였다. 하지만 처음 맡은 역할에 대한 중압감에 굴복하고 나이 든 모친에게 아이들을 맡긴 채, 나는 학교로 향하였다.
워크숍에 참석한 교장, 교감, 그리고 신임 부장 교사들은 학교의 새로운 과제, 결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나누었다. 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대화 시간을 할애했던 얘기 주제는 두 가지였다.
1. 학생들의 생활 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2. 학생들을 학교에 오래 남길 방법은 무엇인가?
더욱 돋보이는 대학 입시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방안. 그게 전부였다.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나?’ 같은 논의는 교육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였다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학 성적을 내기 위한 방안이라 제시하는 것들도 하나 같이 늘 하던 것들(정확히 말하자면 할 줄 아는 것)뿐이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은 사실상 수업의 내실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 수업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는 워크숍이 진행되는 6시간 동안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교사들이 수업 이외로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똑똑히 뇌리에 새겼다.
입대할 때와 달리, 내가 알고 있는 지옥으로 향한다는 마음에 무거운 좌절감을 느꼈던 14박 15일 군대 휴가 복귀할 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가족 일 같은 개인 사정일랑 내팽개치고 업무가 득실거리는 개미굴을 향해 앞장서야 할 운명이 내게 왔음을 직감했다.
‘이래서, 그 선배 교사들이 지옥문 입장이라 한 거였군.’
집으로 와서 장염이 걸린 아이 둘을 돌보다 불을 끄고 함께 누웠지만 활성화된 교감 신경 탓인지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책 방으로 가서 불안하면서도 헛헛한 마음에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저서가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책을 펼쳤다. 두려움, 공포, 우울, 좌절.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문 내 현재 상태를 보던 아우렐리우스가 내게 건넨 말이 있었다.
너의 전 생애를 마음속에 떠올리며 마음을 어지럽히지 마라. 어떤 고생을 겪었고, 얼마나 많은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마음속으로 한꺼번에 추측하지 마라. 오히려 하나하나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관련해서 자신에게 물어보라. (눈앞에 벌어진) 이번 일에서 견디기 어렵고 또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을 너는 부끄러워할 테니까. 다음을 스스로 상기하는 것이 좋다. 너에게 짐이 되는 것은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항상 현재라는 것을. 하지만 현재도 그것만을 떼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작은 일이 되고 만다. 또 그런 가벼운 것에도 맞서지 못할 경우에는 자신의 마음을 탓하고 나면, 결국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고 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 267p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하던 나의 아저씨 드라마 속 이선균 형의 말이 떠올랐다.
이게 생각났다는 것은 현재 내 상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