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지만 다른 두 사람. 디오게네스와 뫼르소를 나란히 생각하다.
그들은 같은 태양 아래 있었다.
디오게네스는 통나무통에 기대앉아 있었고,
뫼르소는 알제리의 해변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둘 다 햇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냈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세상의 빛을 맞았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쪽팔림 없이 산다는 건, 정말 자유로운 일일까?"
디오게네스는 철학자다.
그는 자발적으로 집도, 소유도, 권력도 버렸다.
길에서 살았고, 시장 한복판에서 자위했으며,
알렉산더 대왕 앞에서도 당당히 말했다.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다오."
그는 부끄러움이란 인간이 만든 껍데기일 뿐이라 여겼다.
인간은 본래 동물이며, 본성을 숨기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그에겐 예의, 체면, 명예 같은 건 가식일 뿐이었다.
뫼르소 역시 쪽팔림을 모른다. 아니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여자 친구에게도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특별한 죄책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회가 원하는 감정.
슬픔, 회한, 감동, 부끄러움 따위엔 응답하지 않는다.
그에겐 모든 게 의미 없는 사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인다.
세상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으며,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자기 삶을 선택한 사람들.
하지만 딱 하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디오게네스는 삶을 사랑했고, 뫼르소는 삶에 무심했다.
디오게네스는 인간을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리려고 했다.
그는 웃었고, 화냈고, 농담했다.
그의 냉소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유괘한 저항이었다.
반면 뫼르소는 어떤 감정도 붙잡지 않았다.
그는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살아서 뭘 하든 결국 죽는다는 부조리한 진실에 잠잠히 동의했을 뿐이다.
같은 태양 아래,
디오게네스는 살기 위해 벗었고,
뫼르소는 살아도 의미 없다고 느낀 채 눈을 찡그렸다.
태양의 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그 빛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마다 다르다.
요즘 나는 어떤 쪽에 가까울까.
의미를 창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의미가 없음을 외면하며 살고 있는가.
쪽팔림 없이 솔직한가,
쪽팔림조차 잊은 채 무심한가.
태양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친다.
하나는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하나는 말없이 세상에서 멀어진다.
나도 지금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