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이해는 느리게 온다. 가르치며 배우기

by 뫼르바

요즘 나는 누군가에게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공을 모서리로 보내는 감각,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 복식 칠 때 빨리 빠지고 들어오는 것 등.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그 사람에게는 마치 집 한 채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힘들어 보였다.


나는 운동을 잘했다.

학교 다닐 때는 반에서 항상 1등, 전교에서도 손에 꼽혔다.

뛰고, 던지고, 치는 일에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래서였을까,

운동을 못하는 사람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느리게 반응하는 몸, 삐끗하는 발, 엇박자 나는 리듬을 보며 답답함부터 앞섰다.


예전에 조기 축구팀에서 감독을 맡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신입 회원이 들어왔었는데

공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하는 운동 신경이 전혀 없는 사람.

일명 '개발'이었다.

솔직히 짜증이 났다.


나는 경기를 뛸 때는 수비수였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간신히 공을 빼앗아서

그 사람에게 패스하면 바로 상대에게 뺏겼다.

미칠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저런 사람이 축구를 하겠다고 들어온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의 벽을 쌓았다.


그날 운동을 마치고,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갔다.

그 신입 회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첫 소절이 시작되자, 나는 멈췄다.

그는 음을 가지고 놀았다.

흔들림 없는 음정, 감정이 살아있는 목소리.

거의 가수 수준이었다.


놀라고, 감동했다.

나도 모르게 해맑은 표정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전교에서 손꼽히는 음치였다.

노래를 부르면 친구들이 웃었다.

지금도 친구들은 나에게 "너목보(너의 목소리가 보여)" 음치 편에 나가보라고 놀린다.

한 번은 친구의 여자 친구가 내 노래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음 높낮이를 맞추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나는 박자를 맞추는 건 집 한 채를 들어 올리는 만큼,

음을 맞추는 건 지구를 들어 올리는 만큼 어려웠다.


왜 어렵냐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한테는 모든 음이 똑같이 들리니까, 그냥 똑같이 부를 뿐이지...


지금 나에게 탁구를 배우는 사람.

자세를 낮추고, 리듬을 찾고.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고,

공을 모서리로 보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말하려 한다.

당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겠다고.

그리고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부부 사이도, 친구 사이도,

우리는 같지만 다르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서로 다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일이다.


이해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태도를,

가르치며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