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1등을 해서...

하지만

by 뫼르바

수억 개의 정자가 달렸다.

나는 그중 가장 먼저 들어왔다.

나머지 정자들이 모두 나를 향해 박수를 쳤다.


그때는 몰랐다.

문이 열리면 세상이라는 경기장으로 직행이라는 걸.

그리고 그 경기장은 24시간, 무제한, 종목 변경 자유라는

무서운 규칙을 가진 곳이라는 것을...


1등의 대가


모두가 "너는 이미 승자"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치열한

곳에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첫 호흡을 하자마자 시작되는 울음 경쟁, 기어가느냐 못 기느냐로

결정되는 주도권 싸움.

학교에 가면 성적, 체육, 인기

예전에는 심지어 도시락 반찬까지 은근한 승부의 대상이 된다.


살다 보면 깨닫는다.

1등을 하면, 합격을 하면, 그다음 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판은 점점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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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았다면

가끔은 생각한다.

"차라리 그때 2등 했으면, 지금 이렇게 아등바등 안 해도 됐을 텐데."

물론 그런 상상은 공허하다.

이미 이 게임에 입장했고, 리셋 버튼은 없다.


그래도

이왕 들어온 경기라면, 룰에 휘둘리기만 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내가 직접 종목을 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때로는 경기를 잠시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게 '괜히 1등을 해버린 인생'에서 나만의 승리 방식을 찾는 방법일 것이다.


1등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순간의 선택(혹은 운)이 내 인생의 첫 번째 경기

결과였다는 사실

그다음 경기는 내 몫이다.


태어나기 전 수억 명 중 1등을 했던

그 힘찬 꼬리 힘으로

세상을 멋지게 살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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