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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Dec 28. 2023

연말 싫어

  나는 연말이 싫다. 신년을 기다리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풍날이 정해지면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이 나고 못 견디겠는, 그런 꼼지락거리는 마음이랑 비슷하다. 내게 연말은 마무리의 시기라기보다 정해진 이벤트까지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다. 크리스마스에도 그다지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그냥 종교 기념일 정도로 느껴진다. 캐롤도 조명도 트리도 마음을 들뜨게 하지 않는다. 연말 파티나 회식도 굳이 왜라는 생각만 든다. 정확히 말하면 연말에 특별함을 느끼지 못한다. 신년 파티나 신년 회식은 또 괜찮은데, 도파민 중독 인간이라 끝보다 시작을 더 좋아하는 걸까?  웬만한 기념일에 의미를 두지 않지만 새해 첫 곡은 늘 신경 써서 고르긴 했다.(올해는 자우림의 카운트다운 콘서트에 가니까 새해 첫 곡이 뭐가 될 진 모른다. 뭐 내가 고를 수 있다면 kill the president가 좋을...아닙니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데 뭘 마무리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살던 대로 살 거다. 인생에 마무리가 어디 있나? 중간 점검의 연속이지. 새 다이어리를 12월부터 적으면 12월에 시작하는 기분을 낼 수 있을까? 사실 다이어리도 잘 적지 않는다. 학생 땐 스케쥴러를 많이 썼는데 이젠 정리할 일정이 많아서 그냥 정리를 안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 엄청난 회피형 인간 같다. 어차피 회피할 거라면 비난까지 회피해야지, 슉슉슉 피했지롱.


   날이 추워지면 뜨개질한다. 특별할 것 없는 연말을 평범하게 뜨개질이나 하며 보낸다. 사치스러운 취미이다. 지금 뜨고 있는 스웨터만 해도 엄청난 품이 들어갔다. 마르크스적으로 계산하면 이 스웨터 하나에 60만 원의 가치가 있다. 그냥 사 입으면 3만 원이면 해결될 것을. 하릴없이 세월을 낭비한단 점에서 사치스럽기 이를 데 없다. 돈이 많이 드는 명상 같다. 단조로운 동작을 반복하면서 머리를 비운다. 얽히고설키며 형태가 갖춰진다. 어쩌면 뜨개질로써 일 년을 완성하는 걸지도 모른다. 새해가 되어도 여전히 추울 테고 뜨개질도 계속 이어지고. 나만의 속도로 완성되는 편물들은 날짜와 상관없어 마음이 편하다. 완성된 양말과 모자와 니트를 보며 다음에 무엇을 뜰지 고민한다. 28일, 29일, 30일, 31일이 지나갈 테지만, 평범하고 느릿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날이 따뜻해지고 뜨개질을 멈추면 그때 또 글을 쓸 테다.


  그래도 모두에게 포근한 연말이길. 한 해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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