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생기부의 계절이다. 평균적으로 인간은 하루에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생기부를 쓰는 지금, 과장 좀 보태서 하루에 2만 번의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뭘 해도 피곤하고 뭘 안 해도 피곤해서 영양제만큼은 열심히 챙겨 먹는다. 추석에 생긴 구내염이 아직도 낫질 않는다. 지금은 그 좋아하던 취미들도 약간 의무처럼 느껴진다. 번아웃은 아니고 그냥 피곤해서 집에 가면 잠만 자는 상태 정도? 계절성 인간이라 날이 추워지면 잠이 더 많아진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종합하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나름 소소하게 즐거운 동태눈깔 직장인의 삶.
사람이 사람에게 근황을 묻고 답하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어떻게 살았는지 그닥 궁금하지 않지만 그 사람의 안녕을 기리기 위해 일단 묻는 거다. "어떻게 지내?", "뭐 별일 없지 너는?" 사실은 별 일이 있어도 잘 지낸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인간이 조금 귀여워진다. '최근 좀 힘든데 말을 하면 걱정하겠지, 설명하기도 뭐 하고', '뭐 진짜 별 일이야 있겠어, 일단 물어보는 거지 뭐' 이런 마음이 교차해 인간관계가 뜨개처럼 예쁘게 얽힌다.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아주 고독하다. 쓰는 것은 독백이요, 읽는 것은 습득일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오직 병든 자만이 책을 읽는다는 말처럼, 글을 쓰고 읽는 자들은 외로움에 병들어 있는 거다. 옛 선인들이 자연에 은거하여 즐기는 것도 병이라 했다. 뭐 비슷한 느낌이다. '글' 정도면 아주 건전한 취미니까. 그래서 말인데, 가장 외롭지 않은 글쓰기는 편지가 아닐까?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묻고 마음으로 답하는 행위라니, 정성으로 간을 한 인생 묶음이 오고 간다.
가끔은 글을 올리면서 생각한다. 일기장에 쓴 글과 이곳에 올리는 글은 무엇이 다를까? 나에게 쏟아붓는 편지와 불특정 소수를 향한 편지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날것과 정제된 것의 차이, 정신없지만 감정이 범람하는 글과 나름대로 질서정연하나 감정이 덜한 글의 차이? 나와 비슷한 처지들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공개된 공간에 글을 올린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 수신인이 적히지 않은 편지이다. 조금 외롭기도 한데 원래 글은 외로운 것이니까, 내가 읽은 외로움들을 내가 쓰는 외로움으로 갚아나간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위안을 얻어 글을 쓴다면 누군지 모를 불특정 소수가 또다시 위안을 얻겠지. 글쓰기는 고독한 행위이나 동시에 따스한 이들만이 행하는 일이다.
내가 올리는 모든 글을 편지로 여겨야겠다. 조금이라도 덜 외롭고, 조금이라도 더 정성을 기할 수 있도록.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글은 나의 천성이다.
추신 1. 천성이라고 잘하는 건 아니다.
추신 2. 편지와 관련한 글쓰기 프로젝트를 기획 중인데, 바빠서 시작을 못하겠다. 연초에나 가능하려나?
추신 3. 그래서 어떻게 지내신다고요? 홀로 열심히 근황을 묻고 근황으로 답할 테니, 다들 아늑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으리라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