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육공 Oct 29. 2023

일회용품 인생

  많이 울었다. 삶이 늘 버겁다고 느꼈고 이제 이유를 알았다. 사는 데 너무 열중했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고작 살아가는 데’ 왜 이리 많은 힘을 쏟아야 했을까. 삶이 평등하지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평범한 삶도 아니고 평범하게라도 보이는 삶을 살기 위해 지독히도, 지독히도.


  가장 지독한 건, 앞으로도 아등바등 살아있어야 할 시간이 너무 길다는 거다. 객관으로 보면 시간이나 내겐 세월처럼 느껴지는 막막한 미래. 세상에 발 붙이기 위해 얼마나 더 발악해야 하나. 어느 순간부턴 이를 악 물고 잠드는 게 버릇이 되어 이에 금이 가고 두통이 심해졌다.


  살아갈 날이 막막해요. 이미 모든 힘을 다해 버텨왔어요. 그런데도 눈앞엔 견뎌야 할 나날들이 남아있어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괜찮게 흘러갈 생은 언제쯤에나 찾아올까요. 십 년 뒤엔 괜찮을까요. 당장 자신이 없는데 찾아올 미래를 기약해 봐야 무슨 소용이죠. 숨이 턱턱 막혀요. 전 이미 너무 지쳤어요.


  괜찮다고 말해주진 않는다. 괜찮다고 말해주더라도 믿지 못한다.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평생 눈앞에 바짝 들이댄 엿같은 현실만 보아왔는데. 맘껏 울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운다고 달라지는 게 없단 생각이 먼저 눈물샘을 막아버려 삭막하게 눈꺼풀 안 쪽의 어둠만 응시한다.


  ‘난 내가 일회용품이면 좋겠어’라는 가사를 듣고 공감하던 때가 언제인가. 돌이켜보니 나는 일회용품이 맞았다. 일회용품이 아닌 생은 없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회용품인 몸과 혼으로 각자 다른 경험을 감내하며 비슷한 시간을 견뎌낸다. 나는 이미 방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인, 젖을 대로 젖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겨우겨우 형체만 유지하는 종이컵이다. 있는 힘껏 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늘 긴장해야만 한다. 이러다 습기 먹은 종이컵이 형체도 없이 물풀이 되어 사라진다면, 그럼 그때엔 사무치게 후련할까.


  비유를 쏟아붓는 나쁜 버릇은 글을 많이 써도 나아지지 않는다. 내 생도 남의 생처럼 바라보는 게 습인 사람에게는 비유가 그나마 스스로를 만질 수 있게 하는 매개일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노력해서라도 울어야겠다. 달라지지 않을 생의 버거움과 그걸 버텨낼 나를 위해 나라도 울어줘야지.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오늘 상담 선생님도 날 위해 울어주었다. 여전히 막막해도 0에서 0.01만큼의 연료를 얻었다. 어쨌든 살아가야지. 이 악물고 발악하며 어떻게든 세상에 발 붙여야지. 십 년 뒤엔 오늘의 나를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으면 좋겠다. 다 지나가버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지쳐있던 내가 가엽고 사랑스럽다고 그렇게만 느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 인생은 계속 불행하기만 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