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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Oct 13. 2023

선생님, 인생은 계속 불행하기만 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아이들이 어느덧 15살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땐 웃음도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는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제는 넷이서 포레스트 검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라는 대사에 공감하냐고 묻자, 세 아이 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근래에 즐거웠던 일이나 웃었던 일이 무엇이냐니까 한참을 고민하며 대답하지 못한다. 반대로 힘든 일이 무엇이냐니까 줄줄이 대답이 나온다. '월화수목금토일 학원에 가요.', '시험공부가 힘들어요.', '그냥 매일이 피곤해요.', '게임을 해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모두 비슷한 결의 이야기다. 성적이 잘 나오면 잠깐 즐거울 수도 있을 것 같단다. C가 '인생은 전부 고통이에요. 계속 시험을 준비하고 대학에 가서도 준비하고.'라고 말하자 B가 이어받는다. '취직하면 또 돈 벌어야 해서 고통이죠.'


  인생이 전부 고통뿐이라면 왜 살아야 하냐고 물었다. C는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죠.'라고 답했다. A와 B가 맞장구친다. 자신들의 초콜릿 상자는 10개 중 8개가 피망맛 초콜릿이고 겨우 두 개 정도가 일반 초콜릿이라 하는 15살들을 보며 마음이 서글퍼졌다. 불행을 중화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말해보자니까, 한참 고민하다가 너무도 소박한 희망이 나온다. A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고, B는 1주일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C는 맘 놓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한다. 15살이 고작 저만큼의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세상이다.

  

  "얘들아, 이게 맞아? 15살이 불행하다고 하는 이 사회가 제대로 된 게 맞아?"

  A와 B와 C는 허탈하게 웃으며 아니라고, 힘들다고 답한다. 눈빛이 공허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일 뿐이라는 대답은 15살 아이들에게 너무 이르다.


  올해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인생이 괴롭단 이야기를 자주 한다. 반 아이들의 대부분은 일주일 내내 학원에 간다. 어른인 나도 5일을 일하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아이들에게는 휴일이 없다. 사교육에서 공교육으로 자리를 옮긴 건 아이들을 고문하는 데 일조하기 싫어서였다.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왜 아이들이 끊임없는 경쟁에 놓여야 하는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스스로 덜떨어진 인간이 될 거라 믿는지. 전부 어른들의 가스라이팅 때문이다. 가스라이팅 당하며 큰 어른들이 자식을 낳아 다시 불행한 삶을 물려주었나 보다.


  어린이가 불행한 나라 한국, 유독 우리가 그렇다. 빡빡하게 정도(正道)를 정해놓고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손가락질한다. 보호자 상담을 하면 아무도 자식이 불행하길 바라진 않는다. 그런데 자식들의 우울과 불행에 대해서는 험담을 늘어놓는다. 지가 열심히 하지 않고서 그렇다는 둥, 부쩍 잠이 많아져 놓고 자꾸 아프다고만 한다는 둥,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기 위해 거짓으로 우울을 호소하는 거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내 눈에는 너무도 불행하여 뭐 하나 할 기력도 안 남은 작은 존재만 보이는데, 신기한 노릇이다. 상담을 오는 아이들은 자신의 혼란과 불행을 털어놓곤 '엄마한테는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덧붙인다. 아빠는 그냥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하는 허수아비다. 가족들은 어차피 이해해주지 않을 거니까 말하면 오히려 피곤함만 가중될 뿐인 거다. 간혹 '걱정하실 거다'라는 아이도 있지만, 정작 보호자는 걱정하지 않으며 엄살 취급할 때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누가 알기나 할까?


  어린이가 행복하지 않은 곳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그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알려면 아이들을 보면 된다. 나 하나의 노력으로 어떠한 것도 해결되지 않아 씁쓸하다. 내가 괜찮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치열하게 살아야지만 미래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세뇌당한 세상이다. 정작 '정말로 미래엔 행복할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아니라고 답한다. 뭐가 이래.


  ‘인생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야'가 말버릇이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고통까지 전부 감수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소소한 일상에 즐거워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고, 그래도 돌아보면 행복한 날들이 콕콕 박혀있는 그런 평범함을 영위하거라. 그러니까 백 명, 천 명의 아이들이 인생에는 오직 고통뿐이라고 이야기해도, 나는 백 번, 천 번이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대단한 방법도 모르고,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 애들이 불행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할 거다. 그들의 삶에 피망맛 초콜릿보다 그냥 초콜릿이 더 많아져서, 매번 상자를 열 때엔 설렘을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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