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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Jul 03. 2023

어부바

  나는 달팽이와 거북이 중 무엇이 될지 고민한다. 거북이는 오래 사는 대신 따개비라는 침입자를 쫓아낼 수 없고, 달팽이는 비 오는 날 밟혀 죽을지 모른다. 옥탑과 반지하라는 선택보다 어려워 한참을 골몰한다. 언제까지 고민할 수 있는지 묻자, 상관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시 태어날 죽은 것들은 대개 금수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금수가 되려 한다면 표범이나 이리 같은 포식자를 택하고, 그도 아니라면 고래나 새 같은 자유로운 존재를 상상한다. 아예 식물이나 단세포 생물을 염원하여, 수동적일지언정 고통받지 않고 단순하게 사는 삶을 바라기도 한다. 지칠 마음조차 소모한 게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하필 거북이와 달팽이를 고민하나, 원대했던 나의 소망 때문이다.


  내게는 세 명의 동생이 있다. 있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젊어서 죽은 나는 아직도 그들의 체온을 기억한다. 좁아터진 방바닥, 낡은 이불, 간신히 생존만을 담보하는 평수. 여름에는 강도 살해를 당하는 것보다 열사병으로 죽는 게 빠를 것 같아 문을 열고 잠들었고,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밥을 지어 수증기로 방을 덥혔다.


“구석기시대에는 동굴에서 집단생활을 하였다.”


  교과서에 적힌 한 줄이 마음을 파고든 때가 있다. 적어도 그들은 월세가 밀렸다며 소리치는 집주인을 보지 않았겠지, 적어도 친구들이 어디 사냐 물을 때 말을 얼버무릴 필요가 없었겠지,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글쎄 그게 과연 집이긴 할까, 그런 뜨거운 말들이 목구멍을 치며 올라온 때가 있었다. 꾸역꾸역 감정을 삼키며, 언젠가 어른이 되면 내 집을 가지리라,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의 보금자리를 얻으리라, 그걸 생각했던 때의 나이는 기억나지 않고 그때의 몸무게만 기억난다. 그때 나는 23킬로였다.


  대학을 갔느냐 하면 가지 않았다.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내 생의 절반은 수치를 참는 일이었고, 남은 절반은 생존을 고민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은 그날의 날씨보다 더 알기 쉬운 문제였다. 나를 손가락질하는 사람과 동정하는 사람, 아예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이들을 쌓으면 태산보다 높았겠지만 정작 나를 도와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악물고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라는 명제는 나의 선택지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내 삶의 문제는 언제나 답이 하나뿐인 주관식이오, ‘집’이라는 한 글자의 욕망으로 끝날 문제였다. 수년의 시간과 돈을 소비하며 공부를 할 바엔, 빨리 돈이라도 벌어서 허름할지라도 나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동생 중 누군가는 대학을 꿈꿨던 것 같다. 그게 둘째였는지 셋째였는지 막내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온갖 곳에 이력서를 넣으면서, 내가 1순위로 고려한 요소는 언제나 거리였다. 남들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으려 할 때, 행여라도 집 없는 초라함을 들킬까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직장을 기웃거렸다.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던 내게 직업이란 것이 생겼고, 어쩌면 나는 그때 가족의 터를 떠날 수도 있었다. 엄마 아빠를 버리는 건 너무 쉬웠지만, 나와 같은 눈을 한 동생들을 버리는 게 왜 그리 어려웠는지, 어차피 20년 버틴 거, 조금 더 버티면서 둘째라도 데리고 나가자. 아니 그러면 셋째와 막내는? 그런데 나, 이 돈으로 넷이 살 집을 구할 수나 있나? 고작 백오십 언저리의 월급을 받으며 애초에 혼자 살 곳이라도 얻을 수 있나? 일단은 해보자. 퇴근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어느 예민한 동물보다도 적은 잠을 자면서, 그래. 집을 상상하고 미래를 꿈꿨다. 뒤이어 성인이 된 둘째와 함께 꿈을 꾸기도 했다. 응, 우리 이렇게 일하다 보면, 동생들을 데리고 나와 살 집이 생길 거야. 걔들도 성인이 될 거잖아. 넷이 돈을 벌면, 겨울에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밥을 짓지 않아도 돼. 여름에는 서로의 체온 때문에 집의 온도가 오르지 않을 거야. 우리가 지금 좀 부서져라 일하면, 조금 뒤엔 행복할 그때가 올 거야.’


  그리고 내가 부서진 건, 막내가 막 성인이 된 겨울이었다. 이때의 몸무게는 생각나지 않지만 서른에 죽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남긴 돈까지 하면, 남은 셋은 더 빨리 행복해지지 않을까? “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미련의 뒷맛을 애써 떨쳐내 본다. 다음 생엔 집을 짊어지고 태어나야겠다. 서러워서라도. 다시는 집 때문에 비참하지 않으리라. 어릴 적 토하지 못한 뜨거운 울분을 이제 와 뱉어내며 거북이가 될지, 달팽이가 될지 고민한다. 어쩌면 조가비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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