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더니 코가 시려운 거 있죠. 어렸을 때 캠핑을 자주 갔는데, 겨울 캠핑의 묘미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코는 시리고 몸은 따땃한 그런 상쾌한 기분으로 맞이하는 아침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네요. 여름에 에어컨 틀어놓고 담요 덮기와는 또 색다른 느낌의 좋음입니다. 점심을 먹고 가만히 앉아 노래 듣고 있었더니 고모가 샤인머스켓을 던져주고 가셨어요. 저는 샤인머스켓을 먹을 때, 절반은 그냥 먹고 절반은 얼려먹어요. 통에 담아 물기를 좀 묻혀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몇 시간 뒤에 샤베트같은 샤인머스켓을 먹을 수 있어요. 밖에 눈이 엄청 오는 중이에요. 노래를 들으면서 우린 차와 함께 먹었습니다.
새벽에 눈 소식이 있었는데, 오후쯤 되니까 조금씩 내리더니 거의 눈보라가 치네요. 슬슬 쌓이는 것을 보아하니 내일이면 거의 눈으로 뒤덮일 것 같아요. 오늘 뗄 장작을 가지러 가다 눈을 조금 치운다던 게, 어느 순간 기분이 들떠있는 제가 있습니다. 소복이 쌓인 흰 밭에 발자국 찍는거. 언제쯤 이런 거에 설레지 않게 될까요. 눈 내리는 날. 벚꽃이 날리는 것과는 다른 고요한 설렘이죠. 생각해 보면 저는 겨울마다 꼭 눈사람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왜 사람은 자신들과 비슷한 크기의, 그럼에도 너무 인간 같지 않은 동글동글한 눈사람을 만드는 걸까요.
눈사람의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오래된 기록으로 18세기에도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어렸을 때 자신이 만든 눈사람이 살아 움직여 고요한 밤하늘을 함께 날아다니는 내용의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고전 그림소설이죠.
-한 가지 재밌었던 사실. 눈사람의 대표적인 형태는 동서양이 서로 다르대요. 동양은 몸통을 크게 만들고 그 위에 머리 하나를 올린 후, 돌과 나뭇가지로 얼굴을 장식합니다. 서양에선 머리, 가슴, 배, 3단을 쌓아 만드는 게 기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한 방식이라던가,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한다던가, 여러 이야기는 많은데요. 저는 그냥 계절을 충분히 즐기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눈을 춥고 녹으면 보기 안 좋고 그렇게 바라볼 수 있지만, 매해 이런 재밌는 이벤트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씩 특별하다고 느껴지게 될 거예요. '아 겨울이 오면 눈 구경을 가야지, 눈이 오면 이번에 산 눈오리틀을 써봐야겠다.' 이런 기대감을 가지면서.
눈사람을 만들다가 갑자기 떠오른 궁금증. 눈사람에도 황금비율이 존재하는가? 게임 ‘동물의 숲’에선 비율을 잘못 만들면 눈사람이 화를 냅니다. Omni Calculator (세상의 모든 계산기)라는 3500여 개의 공식을 모아둔 사이트에선 완벽한 눈사람을 만드는 계산기까지 있습니다. 야기에우워대학교수학 박사에 따르면, 눈을 뭉치기 위한 최적의 수분 함량은 약 3%이며, 피보나치수열을 기반으로 한 비율(1:2, 2:3, 3:5, 5:8)이 최적의 비율입니다. 이 사이트는 무려 쌓인 눈의 높이와 덩이를 굴릴 수 있는 면적, 원하는 비율, 기온에 따라 눈덩이의 크기와 눈사람의 수명까지 알려줍니다.
저도 올해 첫 눈사람을 만들었는데요. 사실 계속 숙이면서 만들다 보니 허리가 아파서 본의 아니게 소두눈사람이 되었네요. (워매-! 이걸 우쨔쓰까잉!)
다음날
시골의 눈 온 다음날은 귀여운 발자국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마을은 고양이가 정말 많이 살아요.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면 해가 잘 드는 명당이 있는데요, 거기에 항상 고양이가 5마리씩 줄 지어 앉아있어요. 오늘 아침에 나와보니까 집 앞까지 발자국이 있는 거예요. 눈 오는데 어디서 지내나 했는데 비닐하우스랑 창고 아래 틈에 들어가서 자나봐요. 조그마난 발자국을 따라 산책을 합니다.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덮인 눈이 참 부지런히도 왔네요.
오늘은 집을 내어준 아빠가 내린 특명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꽁꽁 싸매고 나왔어요. 바로 데크에 쌓인 눈 치우기. 그래야 수명이 오래간다고 하던가요. 그나저나 동물도 사람도 비슷한 행동을 하나봐요. 저희 집 뒤에는 고모가 키우시는 염소가 살고 있는데요, 이른 아침부터 소리가 들려 봤더니, 철장에 쌓인 눈을 핥아먹고 있는 거예요..
오늘 빨리 움직인 이유는 사실 시내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저녁에 마제소바를 해 먹고 싶은데, 다진 고기를 본가에 두고온 거예요. 다행히 이곳은 버스가 없진 않은 곳이에요. 한 30분에 한 대씩 오는 것 같아요. 대신 돌아올 때가 힘들어요. 8시에 막차가 끊기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늦장 피우다가 한 시간 기다려서 막차 타고 들어왔어요. 평소의 삶보다 한 칸씩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온 이유가 조용히 잠 푹 자고 뒹굴거리려고 했던 건데, 어째 평소보다 더 부지런해진 것 같아요. 생활패턴도 돌아오고. 최소한의 불편함은 있어야 하는 걸까요. 배고프면 집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오고, 버스 실시간 정보를 보며 딱 맞춰 나가고, 새벽 내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뇌를 맡기고. 그러나 이곳엔 그런 '편리하고 빠른 것'이 없죠. 아빠가 언제 '먹고 따뜻하게 자고 싶으면 몸을 움직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요. 조금 살았다고 그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쿠키: 오늘의 레시피 - 초간단 에그인헬과 딸기소주스무디 / 마제소바
<에그인헬>
- 달걀, 소세지, 치즈, 토마토소스, 다진마늘
1. 소세지를 한입크기로 썰어준다.
2. 다진 마늘을 볶고 소세지를 볶아준다.
3. 토마토소스를 넣고 소스가 자작해지게 물을 조금 추가.
(사실 저는 매운맛을 더하기 위해 불닭소스를.. 전에 먹었을 때 치즈까지 있으니까 조금 느끼했어요)
4. 달걀을 넣고 치즈 뿌려서 그대로 익힌다!
바게트 위에 올려먹고 남은 소스로 리조또도 해 먹었습니다.
<딸기소주스무디>
- 냉동 딸기, 소주, 올리고당/꿀
1. 믹서기에 냉동 딸기와 소주를 2:1 정도 넣어줍니다. (취향껏 술 조절!)
2. 꿀은 대충 두 바퀴 넣어줬던 것 같습니다.
3. 잘 안 갈리면 물 조금씩 넣으면서 딸기를 완전히 갈아줍니다.
학교 앞 주점에서 먹었던 딸기소주가 너무 맛있어서 따라 해봤는데요,
이거 진짜 너무 맛있어요. 그리고 은근히 취합니다.
<마제소바>
- 우동면, 부추, 파, 김, 다진 고기, 달걀노른자(꾸밈용)
- 두반장, 간장, 설탕, 다진 마늘, 굴소스
1. 부추와 파를 썰어서 준비해 둡니다. 파는 파기름 낼 때도 사용합니다.
2. 팬에 기름을 두르고 파와 다진 마늘 반 숟가락을 볶습니다. (기름이 너무 많으면 고기에서도 나오는 기름이 있어서 느끼해집니다.)
3. 기름 낸 곳에 다진 고기를 볶습니다.
4. 간장 2, 설탕 1, 굴소스 1, 두반장 1.5를 넣고 볶아줍니다. 간을 보면서 입맛에 맞게 설탕이나 굴소스를 추가했습니다.
5. 우동면을 삶아줍니다. 간장을 조금 넣어주면 간이 밴다고는 하는데 사실 잘 안 느껴집니다.
6. 우동면을 찬물에 살살 씻어줍니다. 너무 차가우면 별로입니다.
7. 원래 면에도 양념을 조금 해주지만 양념고기가 많으면 안해도 됩니다. 양념은 대충 간장과 설탕 섞은 걸로 해줬던 것 같습니다.
8. 그릇에 우동면을 넣고 부추와 파, 김, 가운데에 양념고기로 덮어줍니다. 노른자는 (솔직히 잘 안 느껴지지만) 데코를 위해 올렸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맛은 아니지만 슴슴한 맛이 꽤나 매력적인 마제소바입니다. 면 다 먹고 밥 비벼먹는 건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