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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윤 Jan 25. 2022

<그것만이 내 세상>

장애, 사람, 음악을 되돌아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이복형제인 진태와 조하의 이야기이다.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진태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한편, 조하는 한물간 복싱 챔피언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살아온 인물이다. 이렇게 다른 둘은 조하와 어머니의 재회 후, 진태의 콩쿠르 입상을 목표로 고군분투한다.


장애

  엄마의 가난에 대한 걱정에도, 성당에서 핸드폰을 보지 말라는 잔소리에도 줄곧 ‘네’로만 대답하는 장면에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진태가 매우 멀게 느껴졌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비’ 차이에만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가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사람들은 그가 장애가 있음을 인식하고는 동정심에 전단지를 받아준다. 하지만 이 장면은 이러한 모습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길거리에서 피아노를 발견해 연주하는 장면이 잇따른다. 그의 연주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연주가 끝나자 큰 박수갈채가 그를 웃게 만든다. 이때 사람들의 박수갈채는 동정심이나 연민이 아닌 최고의 공연을 보게 된 사람들의 감사였다. 그는 콩쿠르 때도 피아노에 앉기까지 엽기적인 행동을 보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만, 피아노를 치는 순간 피아노를 지배하였다. 그 음악을 듣는 사람까지.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때 가장 멋진 법이다. 단, 진태와 같은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때가 아니기에, 비장애인들보다 어눌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장애’라고 치부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못난 부분이 있는 우리도 똑같이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람이 잘난 부분, 못난 부분이 있는 만큼 장애인들에게 차별의 시선으로 그들의 장애에만 주목하지 말자는 뜻이다.

  한가율이 조하를 친 교통사고 이후 그 합의금과 관련해 식당에서 만났을 때, 한가율은 교통사고 당시 자신의 심정을 말해준다. 날개가 달리는 듯이 하늘을 날게 되고 싶었다고. 장애를 가진 뒤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이었던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어 느낀 허무함과 자신을 속박하던 장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사람

  조하는 자신 대신 어머니와 상대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아온 이복동생 진태를 보면 항상 ‘저 자리가 내 것이 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해 아파한다. 또한,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라는 생각과 합해져 동생을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어머니께서 병상에서 조하에게 형으로서 진태를 보살필 것을 마지막으로 부탁하자 진태를 질투의 대상, 원망의 대상 대신 형으로서 보게 된 것 같다.


 조하와 어머니의 관계는 평범한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가 아니다. 조하가 어머니에게 말을 하지도 않고, 겉으로 밀어내기만 하는 이 관계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원망하는 조하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듯 어머니는 조하를 ‘버리고’ 집을 나온 것이 아니라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그날 집을 떠난 것이었다. 조하에게 이 사실을 변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조하에게 한참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다시 태어나면 너만 챙겨줄게.’ 어머니가 아들 조하에게 하는 말이다.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온 그 마음이야 편했으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독자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조하도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에게의 반항은 단지 자신의 불행 삶에 대한 고통의 몸부림이다. 조하가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대면하는 모습에서 모든 자식의 마음이 대변되는 것 같다. 한순간은 자신을 질책하는 어머니가 밉더라도 나를 위해 희생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억장이 무너지는 그 마음 말이다.


  모든 등장인물, 주인공이 아니었던 인물들까지 모두 현실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모두 ‘선’과 ‘악’인 이분법적인 사고로 규정되는 인물이 아닌, 개개인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모두 나름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조하의 실수로 올림픽 나갈 기회를 날려버린 첫 장면의 복싱선수는 조하를 원망할 것이고, 조하를 친 한가율의 가족은 하나의 실수가 자신들의 인생에 흠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한, 주인집 아주머니는 집주인과 전세 간의 갑으로 처음에는 나쁜 사람으로서 등장하지만, 결국 돈은 많아도 술집을 운영한다는 콤플렉스로 자신이 억새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피아노 콩쿠르 주관 심사위원도 안정하지 않은 자신의 자리에서 단체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할 사람을 뽑는 것은 어려운 인물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와 같이 각자만의 힘든 삶이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작품의 현실성이 높아진 것 같다.



음악

  한가율이 진태를 돕게 된 직접적인 계기의 연주가 있다. 이에 음악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교통사고 이후 피아노를 절대 가까이하지 않겠다던 피아니스트 한가율을 뒤돌아보게 만든 진태의 연주로 두 사람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피아노 연주로 대화를 한다. 대화 이상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THE MISSION> ost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THE MISSION>에 해당 곡이 사용된 부분은 주인공이 원주민들의 공격을 오보에 연주를 통해 해소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이 오보에를 부는 태도는 살아서 빠져나가겠다는 다급함에서 나타나는 ‘추함’이 아니라 모든 공격에 초연한 듯한 태도로 감동을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태도 ‘이 곡을 연주하면 한가율이 자신을 도와주겠다’라는 의도를 가지고 연주를 한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뒤바꿔 놓은 것이다.


  콩쿠르에서는 ‘저 심사위원은 이걸 싫어해’라고 심사위원들의 입맛을 맞추는 술책 같은 것은 제쳐두고 오로지 피아노 연주 실력 만으로 승부를 보는 진태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하지만, 피아노 콩쿠르에서 이길 줄 알았던 진태는 아무 상도 수상하지 못한다. 이런 점이 진부하지 않지만 진부한 내용이 되는 것 같다. 영화상에서는 주인공이 상을 수상하지 못한다는 전개가 진부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용인되었던 진부한 사실이라는 뜻이다. 요즘 공무원 시험, 수능, 사법고시 시험이라고 하면 그에 맞는 학원, 맞춤형 문제 풀이 전략을 알려주는 일타강사들이 존재한다.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것만은 안되고 ‘그 시험에 맞추어’ 공부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음악이라고 해서 그것이 다르지 않음을 몰랐기에 이 영화 속에서 진태의 우승을 예상했던 것이다. 나의 순수한 어리석음, 오산이었다. 콩쿠르도 ‘피아노의 입시’로 진태는 화려한 용모와 잘 갖추어진 집안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떨어진 것이다.      


  진태의 갈라콘서트 연주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어주었다. 그래서인지 몇 분 되지 않는 연주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이 자리, 진태의 갈라콘서트가 성사된 배경에 대해 생각하였다. 진태를 떨어뜨린 심사위원이 그보다 ‘갑’의 자리에 있는 한가율의 엄마의 협박 속에 진태를 갈라콘서트 연주자로 만들어주기로 한 장면에서 그의 비굴함에 통쾌함도 느꼈지만 안타까움도 존재했다. 이 또한 진태를 구렁텅이에 빠뜨린 철저한 계급사회가 아닌가? 이 모습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현대사회의 자본주의 ‘갑’이 필요했다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진태 본래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갈라콘서트에서 공연할 자격이 있겠지만, 진태의 능력이 아닌 후원자의 협박으로 성사된 기회라는 점에서 한계를 느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 이 힘든 오늘날의 모습을 혹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본다면 진태의 천재적인 능력, 노력과 더불어 진태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그런 인연과 운도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진태의 공연을 보기 위해 달려온 가족들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태는 인터뷰에서 ‘불가능이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이다’라는 조하의 좌우명을 언급한다. 이를 보게 된 조하는 미국 이민의 기회를 포기하고 가족 옆으로 돌아온다. 이에 동생이 있는 나의 경험이 생각났다. 싸울 당시에는 동생이 밉다가도, 동생이 무얼 잘해서 부모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을 때 ‘누나가 가르쳐줬다’고 하는 것을 들으면 미웠던 마음이 싹 가신다. 조하도 그런 기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태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 자신이 가장 잘난 순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당연하기에 그의 중요한 순간에 형도 엄마도 와준 것은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태권도 대회에 자주 나갔었는데, 이때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 꼭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앞에서는 가장 잘하고 싶던 마음에 긴장해서 막상 잘 되지 않았던 경험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음악영화이기에) 진태의 갈라콘서트 음악을 감상하며 그가 오케스트라와 멜로디를 자유자재로 주고받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느꼈다. 진태의 ‘네’ 밖에 모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음악으로의 대화에는 능수능란한 그의 면모를 다시 한번 모여주었다. 또한, 영화 속 나오는 피아노 곡은 갈라콘서트에서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콩쿠르에서의 쇼팽 즉흥환상곡뿐만 아니라, 진태와 한가율의 브람스 헝가리 무곡으로 많이 들어봤던 곡들이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클래식, 피아노곡 문외한이라도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클라이맥스를 찍고 잔잔해지는 분위기 속 진태, 조하의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이 가장 슬픈 순간에도 길거리의 피아노를 힘없이 치고 있는 진태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슬픔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떠올려지는 행동이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슬픔 표현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진태의 어머니는 진태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천사’ 같다고 했었다. 진태의 연주가 꼭 어머니에게 전달되어 괴로웠던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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