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정치범으로 죽었다 - 교회와 탄핵 그리고 정치

마가복음 12장에서 예수가 보여주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개혁의 의지

by Bluesuhm

마가복음 12장 38절-44절에서 예수는 자기 생활비를 전부 털어 성전의 헌금함에 돈을 넣은 가난한 과부에 대해 얘기를 한다. 하지만 예수가 이 얘기를 한 이유는 "이 과부를 본받아 니 통장 빵꾸나더라도 헌금 스킵 노노"라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당시, 가난한 과부의 돈까지 탈탈 털어먹던 당시 예루살렘 성전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었다. 예수는 같은 본문에서 "율법학자란 인간들이 대접받기만 좋아하고 소외된 자들을 털어먹을 궁리만 한다!" 라며 성토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뒤이어 13장에서는 아예 "성전이 무너질 것이다" 라며 복음을 통한 체제의 개혁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기존 이스라엘의 기득권층의 입장에서 예수는 "체제전복을 획책하는 불순분자"였다. 실제로, 예수는 예루살렘 입성 후 난장판이 된 성전을 문자 그대로 뒤집어 놓으며 구체제의 개혁,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에 입각한 하나님 나라"를 삶을 통해 선언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기득권층은 그를 로마에 반역자로 몰아 정치범으로서 그를 빌라도에게 넘긴다.


그렇게 빌라도(당시 로마에서 파견한 이스라엘 총독)에게 넘어간 예수는 결국 정치범으로서 처형을 당하게 된다. 기존의 비윤리적이며 하나님의 정의와 멀어진 사회시스템을 가난한 이들도 소외받지 않는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가 실패했다. 권력의 순응하고, 그 비호아래 비정상적 성장을 거듭해 온 한국교회는 이번에도 불의한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에 침묵하거나 동조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배경에 두고 복음을 논하지만, 정작 그들은 예수를 넘긴 과거 이스라엘의 기득권처럼 본인들의 체제유지에만 집착하며, 예수가 꿈꾸던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아니, 그 하나님 나라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는 소외받는 이들 없는 공의로운 사회를 꿈꾸다가 정치범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복음이라는 새로운 삶의 길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현 사태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주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원한다."라는 주기도문을 매주 같이 읽으면서도, 그들은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최대한 유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주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없는 교회는 예수를 매개로 한 교회공동체로서의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생명력 없음"은 현명한 대중들이 가장 빨리 알아채기 마련이다.


예수는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땅에 실현시키기 위해 세상으로 나섰다. 대중들과 함께 화내고 웃었고 싸웠다. 예수였다면, 불의한 대통령에 항거하기 위해 거리로 떨쳐나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야광봉을 흔들며 함께 불렀을 것이다.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지켜주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위해 불의한 시스템에 항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정치범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 죽음을 통해 오히려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다. 이제 교회가 예수처럼 죽을 차례다. 권력의 겁박에 사로잡히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서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과 불의한 정권에 시민들과 목소릴 함께할 때, 교회는 새로운 생명력으로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예수가 꿈꾸던 세상이, 그가 사랑하던 민중들이 원하는 세상을 교회공동체로서 동참할 수 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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