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따라 떠오른 겨울의 기억

추억 속 엄마의 마음

by 이연화


오늘은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양 볼을 스치고,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이 가지에서 파르르 떨리다 떨어졌다.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잎이 나비처럼 춤을 추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문득 오래된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향긋한 흙냄새가 배어 있는 시골집 마당.
겨울이 오기 전이면 집 앞 은행나무에는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엄마는 늘 그러셨다.
넓고 파란 비닐을 나무 아래에 먼저 펼쳐놓고,

기다란 대나무(장대)로 가지를 털었다.

‘우두둑, 후드득—’
은행열매들이 비처럼 떨어졌다.
껍질이 터지는 순간 퍼지는 독한 냄새에 우리는

“으악, 똥냄새!” 하며 달아났다.
엄마는 늘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똥냄새가 나도 맛은 최고지.”

그때 40대였던 엄마는 이제 8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주름은 깊어지고, 까맣던 머리칼도 하얗게 변했지만 엄마의 손길은 여전히 같다.
허리가 굽어도, 밤마다 무릎이 쑤셔 끙끙거리셔도
아침이 되면 언제 아팠냐는 듯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
그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된다.

어느새 엄마의 나이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도 따라갈 수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아마 평생을 살아도, 생을 다하고 나서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처럼, 깊고도 넓었다.

바람이 불어오던 오늘,
엄마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모습이
선명하게 마음에 내려앉았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시간이 흘러서야 더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의 하루에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 숨어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말이 없어도
묵묵히 이어져 온 작은 손길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오늘 바람이 스쳐간 자리처럼
당신의 마음에도 오래전 누군가의 온기가 조용히 머물기를 바란다.
그 따뜻함이 다시 당신의 삶을 지켜주는 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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