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uilty pleasure
웹툰 김성진 - 앵무 살수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법
일찍 죽어도 명이 짧은 것은 아니라네
어제저녁 함께 사람이었더니
오늘 아침 귀신이 명부에 있구나
혼은 어디로 흩어졌는가
마른 몸만이 빈 나무에 걸쳐 있어라
사랑스러운 아이는 아비를 찾아 울부짖고
친한 벗들은 나를 쓰다듬으며 우는구나
득도 실도 알지 못하거니 옳고 그름은 어찌 알 수 있으랴
천년만년 지난 후라 해도 영화와 치욕을 그 누가 알까
세상에 있을 적 오직 한스러운 것은
술 마심이 족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네
도연명 만가挽歌
처음 무협지를 읽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중화권에서 신필이라 칭송받는 김용의 영웅문을 우연한 계기로 접한 후 그 재미에 빠져 한동안 유명하다는 책은 다 찾아보았습니다. 무협이란 장르를 접하기 전 부정적이었던 이미지가 바뀌는 데는 사실 영웅문을 읽던 그 짧은 며칠로도 충분했습니다. 드래곤 볼을 좋아하던 어린이가 자라 무협지를 좋아할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던 거죠. 다 큰 남성이 장풍을 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력에 대놓고 열광하기는 좀 창피한 일일까요. 용이 등장하고 지팡이에서 불을 뿜는 서양의 판타지보다 중국의 무협지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이 더 쑥스러운 이유는 절대적으로 여성 팬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따라서 한 분이라도 이 글을 통해 무협이라는 남자들의 장르물에 호기심이라도 생긴다면 한밤 중에 흰소리를 써 내려가는 제 수고로움에 의미가 생길 것 같습니다.
guilty - pleasure 길티 플레져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일에 죄의식을 느끼지만 그것을 좋아하며 즐기게 되는 심리를 의미하는데, 막상 떠오르는 예가 없어 주변에 물어보니 인상 깊은 대답이 있었습니다. 제 동료는 밤에 애들을 재우고 즐기는 온라인게임에 기쁨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하더군요. 저는 온라인게임에는 취미가 없지만 공감이 되는 걸 보니 다들 사는 게 비슷한가 봅니다.
생각해 보니 저의 길티 플레져는 만화를 보는 것이더군요. 물론 만화는 게임보다는 덜하지만 제 윗세대분들은 만화에 종종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십니다. 불온서적의 대표라는 만화책을 쌓아놓고 벌어졌던 화형식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까요, 미술교육에 업이 있는 저조차도 한가한 시간에 웹툰이라도 보다가 누군가에게 발각이라도 되면 민망함을 느낀다는 사실은 저 역시 그 세대의 기억을 이어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는 통용되지 않을 이야기지만 사람은 쉽사리 바뀌기 어렵습니다.
만화도 장르에 따라 선호도가 매우 다릅니다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성 마니아 층이 탄탄한 정통 무협만화 앵무살수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정통과 아님을 구별하는지는 천천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앵무살수는 2020년부터 연재된 김성진 작가의 메이저 데뷔작입니다.(기존의 작품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봐도 찾기 어려운 것을 보니 필명을 썼거나 개명을 하지 않았다면 놀랍게도 이 작품이 처녀작입니다) 글을 쓰는 현재 3부작까지 나와있으며 완결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 노소하는 장강 하류의 뱃사공으로 살아가지만 그의 실상은 암살자입니다. 그것도 보통 암살자도 아닌 구파검법이라는 일자전승 무공의 후계자이죠. 암살자인 노소하가 의뢰를 접수하는 방법은 조금 특이합니다. 살인을 요청하는 의뢰인이 장강 하류에 의뢰서를 흘려보내면 조댕이라는 애완 앵무새가 주인공에게 물어와 전달받는 구조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철저한 비대면으로 진행이 됩니다) 앵무살수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온 것이죠. 하지만 주인공은 아무나 죽이면 안 됩니다. 죄질에 따라 선택적 살인을 한다는 설정이 노소하라는 캐릭터가 어떤 여정을 하게 될지 잘 보여줍니다.
'칼에 피를 묻힌 자 장강의 하류를 건너지 마라'
장강의 하류엔 귀신이 산다는 말이 돌 정도로 노소하의 일처리는 뛰어납니다. 하지만 이는 전대의 살수이자 스승인 이종보 덕분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며 그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한다는 검술의 천재라는 소릴 들은 살수였습니다. 자세한 모습은 나오질 않고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제자인 노소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시작부터 복잡한 설정으로 작가는 독자들의 애간장을 타게 만듭니다. 주인공은 조댕이와 함께 나름 정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여느 무협지가 그러하듯 예상하지 못한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시황제가 만들었다는 불노불사의 신비가 담긴 선근경을 찾으려는 무리들과, 어쩌다 보니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긴 노소하와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이 만화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나갑니다.
굳이 무협이라는 장르의 원류를 찾아보자면 청나라 때 만들어진 삼협오의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정통무협이라는 말을 쓸 때는 대체로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중심으로 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만큼이나 김용은 유구한 전통을 잘 정리하였으며 대중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소설 영웅문은 대협 곽정과 동사서독의 이야기인 사조영웅전, 비운의 주인공 양과와 소용녀의 이야기인 신조협려, 장무기라는 주인공을 앞세운 의천도룡기로 나뉘어 있습니다. 신필이 쓴 이야기답게 흡입력도 상당하지만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무림 문파와 그를 대표하는 무공이 총망라되어 백과사전 같은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무협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해 왔지만 아무래도 원조의 맛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퓨전 음식에 지친 미각을 원조의 맛에서 회복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원조의 맛을 충실히 따라가는 앵무살수의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 번째로는 작화에 그 매력이 있습니다. 김성진 작가는 빼어난 실력을 발휘해 모노톤으로 동양화의 장점을 시각적으로 잘 구현해 냈습니다. 일본에는 배가본드의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붓펜으로 절정의 원숙미를 보여주는데,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견될만한 작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절제된 대사의 매력입니다. 작화가 뛰어나다 한들 상황을 전달하는 대사에 깊이가 없다면 종이장보다 가벼운 만화가 되기 쉬운데, 김성진 작가는 오래 머금은 듯한 대사를 통해 만화에서도 소설 이상의 여운을 줍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대사를 통해 멋이라는 게 흘러넘칩니다. 세 번째로는 스토리입니다. 익숙한 배경에 익숙하지 않을 인물들을 등장시켜 긴장감을 늦추질 않습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완급을 조절하는 작가의 완급능력에는 감탄사도 나옵니다. 촉망받는 정파의 후예, 사문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문파의 장로, 불치의 병을 유전으로 이어받는 이민족 등의 스토리가 다음화를 손꼽아 기대하게 만들죠.
무협지에는 잊혀진 가치들이 있습니다. 아주 당연했지만 이제는 더는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이죠. 약한 사람을 대가 없이 돕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지키려는 의로운 마음, 힘을 가진 집단이 지켜야 할 가치, 불의를 미워하며 선을 행하려는 신념 등이 우리를 감동하게 만듭니다. 흔한 클리셰지만 음모와 배신에서도 역경을 이겨내는 영웅의 서사는 지겨울 틈을 주지 않습니다. 덤으로 절세미남, 미녀의 사랑도 있으니 가히 종합 선물 세트라 부를 수 있겠죠. 웹툰 앵무살수는 이 전통적인 무협의 가치를 잘 담고 있습니다. 물론 정석대로 흘러가는 만화는 아니지만 영웅문의 서사를 슬쩍 걸칠 줄 아는 센스 있는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좀 길었지만 어떠신가요?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생기셨다면 저와 함께 노소하가 과연 구파검법을 완성하는지 같이 지켜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한동안 배우 김보성 씨가 '의리'라는 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신념을 아직까지 지켜나가는 사람을 보는 신기함이 먼저였을 겁니다. 뒤쳐지면 패배자가 되는 현실의 우리에게 의리라는 정의로운 말은 놀림감 또는 우스갯소리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왕년의 유명한 액션배우라는데 웃기고 조금은 부족한 사람처럼 묘사되어 젊은 층의 관심이 모아지자,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방송들이 나타났습니다. 어수룩한 말투로 그가 꿋꿋이 지켜나가는 인생의 가치가 설득력을 넘어 묘한 감동을 자아냈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김보성 신드롬의 전말입니다. 저처럼 약아빠진 사람들이 놀림감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결국 우리가 더 바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으니 이보다 더 훌륭할 교훈은 없었겠죠. 그런데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런 얘길 썼을까요? 그건 바로 의리입니다. 무협지에 의리가 빠지면 무협지가 아니죠.
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