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8 국립중앙박물괸
어제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10시 오픈런을 시도했으나 시작부터 늦었다. 신림동을 들러 한강대교를 건넜다. 가장 바깥차선을 우회전 차량이 가득 메웠다. 아직 박물관까지 몇 킬로는 남았는데 벌써부터 막히나 싶었다. 다행히 그 차량들은 강북강변도로로 빠지는 줄이었다. 마음을 놓고 다시 엑셀을 밟았다. 600미터 남았을 때부터는 완전 가다서다, 한 시간 지나 주차했다. 12시가 넘어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배고픎을 예술에 양보해야 했다. 사유의 방은 줄이 끝이 없었다. 다음 기회로 넘겼다.
올해 미국의 미술관을 몇 군데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것도 그 기억에서 비롯됐다. 남의 예술만 보며 내 것은 모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곳에서는 마네, 뭉크, 고흐의 작품을 봤다. 유리도, 차단선도 없었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도 있었다. 위엄있는 정복을 입은 시큐리티 요원이 곳곳에 있긴 했다. 이 정도 보안이면 ‘진품일까?’ 의심이 스쳤다. 설마 국립 미술관인데, 명문대 뮤지엄인데 복제품일까, 두 생각이 머릿속에서 부딪쳤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유리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작품을 보았다. 우리의 예술은 조금 굴절되어 다가왔다.
사람이 덜 모인 곳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기증관. 재벌 회장의 기증품은 그럴 수 있다 여겼다. 여유 있는 이들의 취미이자 사회적 지위의 부속물쯤으로 생각했다. 약간의 감사로 갈음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이 있었다.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의 기와 기증관, 그리고 그에게 자극받은 한국인 유창종의 전시관이었다. 기와검사 유창종은 이우치의 남은 소장품 절반을 사들였고, 직접 수집한 기와까지 더해 박물관에 기증했다. 두 사람의 뜻을 기려 두 전시관은 나란히 놓였다고 했다.
두 사람의 재산 규모나 삶의 전모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수집과 기증 덕분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름을 남기려고 했을까. 그보다 무언가를 돌려주고자 한 마음이었으리라.
기증, 그리고 기부.
이 단어들을 생각했다. ‘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바꾸는 나눔, 그리고 속한 집단에 구속되지 않는 균형감. 어제, 국중박은 그 두 가지를 함께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