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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뿔 Jan 18. 2021

4. 생각의 도구들

형상화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마음의 귀로도 들으며 냄새와 맛과 몸의 느낌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감감을 통해 형성되는 것들은 상상이나 이미지의 전달과 관계가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눈으로 관찰을 한다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낼 것이고 우리가 손을 써서 관찰한다면 손의 위치, 손의 움직임에 대한 이미지와 함께 촉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코로 관찰한다면 냄새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인데 이것은 과학적 발명과 예술적 발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컨대, 우리는 관찰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통해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생각의 탄생 p 92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모양이나 질감 무게를 갖춘 대상을 머리속으로 소환하는 일입니다. 소환하고 나서는 마치 프로그램이 인식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시키는 것처럼 머리속에서 편집할 수 있는 형태로 구동할 수 있게 됩니다. 


숲속의 작은 집을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사이로 쪽길이 나있고 그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너른 언덕이 나오고 그 너른 언덕 한켠에 통나무집이 자리잡은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언덕의 비탈에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고 그 풀잎들 사이로 드문드문 들꽃도 앙증맞게 피어있습니다. 세살 남짓한 아이가 나비라도 쫓는 것인지 언덕위로 달려갑니다. 옛날 텔레비젼에서 본 '초원의집'이라는 미국드라마가 생각날수도 있겠습니다.(아주 오래전 일이라 다들 모르실 듯합니다만 ~~) 


이처럼 우리는 머리속에서 삼각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삼각형이 모양을 가진 심상으로 되는 것에도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능합니다.

삼각형을 늘여서 삼각기둥으로 만들고 원뿔로 변형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바꾸는 것은 조금 더 힘이 듭니다.


정사면체에  구멍을 내고 3D처럼 위아래 사방으로 돌려보면서 관찰할 수있는 능력 그러니깐

"직경이 2인치인 쇠막대기에 드릴로 2인치짜리 구멍을 내서 반으로 자른다고 할 때 깎여나가는 쇠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 라는 문제를 그려보지도 않고 암산으로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천재들은 이런 훈련이 필요한 과정을 나면서부터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훈련으로도 터득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과정을 순간에 머리속으로 그려낼 수 있습니다.

음악은 이런 천재들의 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음감이란 어떤 소리를 들어도 그 소리의 음계를 정확히 짚어내는 감각을 말하지만

이런 감각과 더불어 악보를 보고 음을 머리속에 재생하고 심지어는 수많은 악기를 연주하는 교향곡을 머리속에서 재생하고 편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술과 과학 이 두 분야에서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천재들이 많은 것은 시각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생산적인 사고가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상상력은 재능입니다.

하지만 천재가 아니라도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이겠죠.

우리가 관찰한 것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시각적인 상상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청각적이고 촉각적인 상상등 몸과 감각기관을 통한 상상이 모두 심상과 연결되어 보다 생산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색으로 사고하지 않고는 그림을 칠할 색을 고르지 못할 것이며, 소리로 사고하지않고서는 피아노 건반위의 선율을 짚어낼 수 없다."


이전같으면 이 책에 쓰인 수많은 형상화의 사례를 읽으면서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짜르트나 베토벤, 아인쉬타인과 리처드파인만같이 잘알려진 사람들 뿐 아니라 찰스 스타인메츠와 같이 비교적 잘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일화를 보면서 천재니깐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의 사고는 그이상 나아가지 않고 멈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천재들의 일화에 감탄하기보다는 이 책의 흐름에 집중하면서 읽다보니

관찰-형상화-추상-패턴인식-패턴형성-유추-몸으로생각하기-감정이입-차원적사고

-모형만들기-놀이-변형-통합등의 13가지단계로 생각법을 제시합니다. 관찰이나 형상화 하나하나에 그치지 않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빠지지 않고 거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상력이란 쓸수록 더 강화되고 업그레이드되는 마음의 근육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을 근육이라고 하고보면 쓸수록 더 효율적인 사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 근육을 너무 쓰지 않고 현상이나 사물을 우리에게 주어진 대로 사용하는데만 우리의 심상을 고착시켜온 것이라는 자각이 듭니다.


창작의 전제는 상상이지만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창작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운좋은 발견이 필요할지도 모르나, 이 발견을 온전히 현실화하는 것은 창작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반드시 구체적인 형태를 지녔다고 할 수 없으며 실체를 가진다고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창작은 실행과 분리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법. 고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창조적인 상상이다. 그것만이 우리를 관념의 단계에서 현실의 단계로 나아가게 해줄 것이기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음악의 시학)중에서



책을 읽어내는 힘에는 관찰에 이어 내가 읽는 내용을 형상화하는 역량이 깔려있습니다.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려보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시인이 알아서 형상화를 시켜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각적인 형상은 물론 청각적인 형상과 짚단냄새까지 코끝에 아릿해지도록 그리운 감정을 자아냅니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걔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다들 잘아시겠지만 이 시는 정지용시인이 일본 동지사 대학 재학시절에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먼 이국 땅의 낯선 환경속에서 유년시절의 추억과 가족들, 그 모두를 싸안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일 것입니다. 이 시구를 떠올리기만 해도 일상에서는 그렇게나 밋밋하고 감흥이 없던 언어들이 곧바로 생명력을 가지고 시구의 구릉에 따라 스스로의 모습으로 마음 한켠에 자리잡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제되고 압축된 시어가 가지는 힘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와는 달리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들은 형상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독해의 핵심은 연상력이라고 했는데 그 연상력의 큰 부분을 형상화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휘에서 부터 문맥에 이르기까지 구태의연한 문장과 저자가 힘주어 자신만의 주장을 피력하는 문장을 구분하고 조금은 낯설수도 있는 단어의 배열을 주시하면서 저자의 주장이 선뜻 와닿지 않을 때 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형상화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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