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에도 레벨이 있다.
회사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서너 해 후배가 입사를 했는데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마찰이 생겼습니다.
딱히 인성이 나쁘지도 않은데 이야기를 하면 그때 뿐이고 잘 듣지를 않는 거였습니다.
나뿐 아니라 직속상사의 이야기도 듣는 척만 할 뿐 나중에 보면 자기 생각대로만 일을 추진하는 거였습니다.
답답해져서 그 후배의 직속상사랑 후배랑 세 명이서 술을 한잔 하면서 터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이야기를 하면 늘 핑계만 대고 변명만 하고 일은 결국 본인 뜻대로 하고 그럴려면 혼자 일하지 왜 같이 일하냐?"
술자리가 그렇듯 둘이서 조금 몰아붙인 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친구가 책을 샀길래 무언가 하고 제목을 봤더니
퍼실리테이션 기법, 설득을 잘하는 법 이런 류의 책인 거였습니다.
순간 유체이탈하는 줄 알았습니다.
'와! 제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했더니 설득하는 책을 샀네?'
그러니깐 자신이 설득력이 부족해서 자신을 어필하지 못했다는 걸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좀더 나쁘게 생각하면 핑계나 변명을 설득력있게 못했다고 생각했던 건가 라는 ㅋ
과연 설득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로는 베풀 설, 얻을 득으로 말을 해서 얻는 것이 설득인 셈입니다.
말만 해도 얻는게 있으니 너도나도 말만 앞세우고 남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보험사 직원이나 자동차회사영업맨이나 할 것없이 누구라도 설득을 잘하면 얻는 게 생깁니다.
심지어는
남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기만해도 인플루언서라고 해서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지요.
그래서 인지 설득에 대해 시중에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설득을 잘하는 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설득을 할 때 보다 설득을 당할 때가 더 많습니다.
설득을 하는 것도 건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것저것 가진 거 없다면 어차피 설득하기보다는 설득받고 살 것인데
설득당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득에도 레벨이 있습니다.
내가 세치혀를 놀려서 상대를 감복시키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하면
상대도 얻는 것이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란 어렵습니다.
피동적으로 받는 것에 대해서는 신뢰감이 떨어지기에
반복되다보면 이해득실관계에 대한 의문도 들고
(쟤는 도대체 얼마나 남길래 저렇게 열심이람?)
자꾸 끌려다니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마저 들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설득의 고수는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입니다.
제갈공명은 본시 유비를 만나기전부터 천하삼분지계를 품고있었습니다.
천시는 조조에게 지리는 손권에게 그리고 인화는 유비에게 돌아가게 하여
마침내 천하를 삼분하여 안정을 꾀하고 나아가서 북벌을 통해 한실을 중흥한다는 것이 그의 평생 목표였습니다.
제갈공명은 원래 강남의 재사로 형주에서 수학한 바 있습니다.
서서와는 그 때 안면을 텄을 것입니다.
당대최고의 학자인 사마휘를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하면서
후일 복룡과 봉추를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을만큼 성장합니다.
한편 유비는 한실의 종친으로 명분과 인망이 높고 관우와 장비를 비롯한 용장을 거느렸지만 송곳하나 꽂을 땅이 없이 쫒겨다니는 처지였습니다.
서서를 통해 책사의 필요성을 절감한 유비에게 서서의 한마디는 결정적이었을 겁니다.
유비가 공명을 삼고초려하게 된 배경에는 공명의 밑밥이 깔려있다는 이야기지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득하러 나타난 유비를 세번이나 돌려보냅니다.
심지어는 낮잠을 잔다고 한시간을 기다리게 하지요.......
그리고 유비를 만나 첫마디가 '장군은 어떤 뜻을 지니셨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공명은 이미 한황실의 부활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세우고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유비를 선택했습니다.
손권에게 가기는 늦었고 조조는 이미 주위에 사대부가 널려서 중히 쓰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갈공명은 먼저 속을 보이지 않고 유비를 시험해봅니다.
삼고초려를 보면서 유비의 낮춤의 미덕과 인재를 구하려는 유비의 인내심을 말하지만
사실은 제갈공명이 연출한 드라마였던 겁니다.
과연 내 포부를 실현시킬 수있는 주군인가하는 것을 알고싶었던 겁니다.
그 자질은 결코 명석함이나 용맹에 있지 않습니다.
20살이나 어린 자신을 홀대하지 않고 한결같이 대하는 모습에서 믿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또 시험만이 아닙니다.
장차 유비의 권속이 되었을 때 자신의 위치, 즉 포지셔닝을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공명의 선례에서 얻을 수 있는 설득당하는 사람의 원칙을 찾았습니다.
첫째 내가 얻고싶은 것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둘째 설득하는 사람을 다양하게 시험하고 평가한다.
세째 설득당하고 난 연후에 나의 위치를 미리 선점한다.
애초에 설득하려는 말 속에 내가 얻을 것이 없다면 일고의 돌아볼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상대가 설득하려고하는데 굳이 내가 먼저 얻고싶은 것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상대가 왜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지 금전적인 이득인지, 친목도모의 수단인지, 따져보고
평소 상대의 행실을 되짚어 믿을 수 있는 언행을 보였는지를 곰곰히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심인데
얻을 것이 있고 상대는 믿을 만한 사람이며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이 된다면
그 정도에서 승낙할 것이 아니라 승낙이후에 내 위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설득하는 것이랑, 설득당하는 것이랑 그리 다르지 않게 보여집니다.
결국 설득이란 나 이외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법이고 어쩌면 인간관계의 시작일 것입니다.
화장품 광고도 설득이고 프로포즈도 설득입니다.
면접을 보는 것도 설득이며 책이나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되는 것도 설득의 힘입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하는 것도 내가 먹고싶은 곳으로 이끌려고 한다면 설득을 해야 합니다. 아니면 설득을 당해야 하죠....
요즘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찌라시 수준에서 sns에서 떠도는 괴담이나 유투브에서의 각종 현란한 새로운 소식들은
누군가의 흥미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생하는 생물체와 같습니다.
과연 무엇이 팩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려고 하는 게 순진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가짜뉴스나 찌라시도 결국은 설득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설득하느냐 설득당하느냐의 세상에 살고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