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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뿔 Sep 06. 2022

불량독자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피상적으로 봐도 독서는 정신집중을 요하는 일인데, 정신을 풀어놓으려고 책을 읽는다는 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정신을 분산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중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무엇을 느끼건 간에 온 힘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하물며 독서는 더욱 그러하니. 제대로 된 책이라면 언제나 복잡다단한 현상들의 단순화, 응축과 함축을 표현하고 있기때문이다. 아무리 짧은 시 한편에도 인간의 감정이 단순화된고 집약된 형태로 담겨져 있다. 주의를 집중해 이 감정들에 적극적으로 몸을 맡기고 함께 겪고자 하는 뜻이 없다면, 불량독자인 것이다.

불량독자들이 시나 소설에 끼치는 부당함은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잘못된 독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부당하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에게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러니 금방 잊어버릴 게 뻔한 일에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며, 일절 도움도 안되고 소화해내지도 못할 온갖 글들로 뇌를 혹사하는 짓 아닌가?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p11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뜨인돌 발매2006.10.28.

 

데미안에서 부터 싯다르타, 수레바퀴밑에서, 지와사랑, 황야의 늑대, 유리알 유희... 어쩌면 김용 다음으로 같은 작가의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작가가 헤르만 헤세입니다. 독일의 관념론과 신비주의를 곁들인 그의 인문적인 태도는 젊은 날의 나를 들뜨게 하고 상심케했던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오늘 문득 도서관에서 헤세의 수필집을 발견했습니다.

가볍게 읽기 시작한 그의 책에서 회초리를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불량독자였던 겁니다.

온전히 집중하고 읽기는 커녕 시간을 보내기 위한 깜냥으로 읽은 책이 얼마나 많았던지.....

헤세가 만약 요즘 킬링타임으로 책을 읽는 풍토를 접한다면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충격을 받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정신을 풀어놓으려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꼭 불량독자라는 딱지를 붙일 일인지는 생각해볼 일입니다.


헤세가 이 글을 쓴 1911년도와 2022년은 너무 떨어져 있어서 서로의 잣대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거라는 건 염두에 둬야죠.


아무러나 참 곧고 바른 양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헤세의 작품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에일싱클레어와 데미안이 그랬고 고타마와 싯다르타(고타마 싯다르타인데 헤세는 이를 두사람으로 만들었죠.), 골드문트와 나르치스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늘 빛이 옳거나 그림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결같이 과연 이 빛과 그림자는 하나일 수 없는지를 추구하는 구도자였습니다.


18877년에 태어났으니 이 글을 쓴 1911년 은 헤세가 34세가 되던 때 쓴 글입니다.

연보를 보니 둘째아들이 태어난 해이고 거침없이 세상속으로 걸어들어가던 시기인 것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으로 접하던 때와 달리 타협이 없이 자신의 신념을 내비치는 듯도 하지만

전생애에 걸쳐서 닦았던 헤세 특유의 진지함과 바른 것에 대한 추구가 이때도 이미 충만해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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