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도구들

5. 패턴의 끝에서

by 무뿔

카프카의 『변신』에서 가장 낯선 장면은
사람이 벌레로 변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 이상한 것은
그 이후에도 일상이 거의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출근 시간은 여전히 문제이고,
상사는 찾아오며,
가족의 반응은 서서히 굳어진다.
비정상적인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세계는 쉽게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읽다 보면 독자는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변신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반복 그 자체라는 사실을.


패턴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다.

눈에 띄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형식 속에서.


황량한 폐허 속에 서 있는

마탑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주인공은 아무 생각 없이 탑을 오른다.
1층에는 그림이 있고,
2층에도 그림이 있다.
3층, 4층까지
그림은 계속 이어진다.

그림들은 연결되고,
의미를 이루며,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그러다 9층에 이르렀을 때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그 순간 주인공은 멈춘다.
새로운 그림을 본 것이 아니라,
무의식속에서 기대하였던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동일한 것이 끊임없이 되돌아 오다가

불현듯 그 리듬이 멈출 때

우리는 침묵속에서

이제까지의 반복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변신』의 세계에서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반복이 끝나지 않는다.
마탑의 마지막 층에서는
반복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비어 있는 자리로 남는다.


두 이야기 모두
패턴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패턴이 어떻게 감지되는지를 보여준다.

반복이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를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읽기를 이어가는 것이다.


설명이 뒤따를 것이라 기대하고,

예측을 유지한 채 다음을 기다린다.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상태에서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구조 전체를 한 번에 바라보는 쪽을 택한다.


"지금까지 무엇이 일어난거지?"

라는 의문을 던진다.


이때도 읽기는 중단되지않는다.

다만 사유의 방향이 바뀌고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된다.


결국 패턴을 인식한다는 것은
반복의 주기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그 반복 전체를
한순간 홀깃 보게 되는 지점에
잠시 서는 일에 가깝다.


여기서 홀깃 본다는 말은
영어 glimpse가 지닌 의미에 가깝다.
glimpse는 오래 바라보거나 붙잡아 이해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전체가 한순간 스치듯 드러났다가
곧 사라지는 경험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와는 분명히 다르다.
다시 설명을 덧붙이기 전,
해석이 개입되기 전,
우리는 이미 전체를 보았다는 감각을 지니게 된다.

바로 그 지점이
이 글이 말해온 패턴 인식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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